독후감에 붙이는 사진은 항상 책표지로 시작하지만 오늘은 <빨간머리 앤>의 석판으로 대갈통('머리'라고 하면 맛이 안살아서...) 내려찍기 사진을 먼저 붙였습니다.
다 읽고 나니 작가 남수혜님이 왜 빨간머리 앤의 이 사진을 프사로 사용하시는지 이해가 됩니다. 캐나다의 작가가 1908년에 쓴 소설(원작이 앤 셜리의 노년기까지 다뤘고 완역본이 12권에 달한다는 건 처음 알았네요)이 어린 남수혜님에게 깊은 영향을 줬고, 무럭무럭 자란 남수혜님이 쓰신 이 책이 지금의 한국에서 살고 있는 성인들을 위한 헌정한 '번외편'같다고 느꼈습니다. 몽고메리 선생님도 무척 좋아할 것 같아요.
결혼을 할지 말지, 결혼하면 애를 가질지 말지가 선택사항이 된 시대에 고민하는 여성분들에게 유용한 옆집 언니의 조언들이 가득합니다. 계산이나 전략같은 건 전혀 없고요. 경험해본 실전팁들로 채워져 있어요.
제가 살아보지 못한 다른 사람들의 인생을 흘긋 들여다보고 싶어서 에세이를 보는데, 주부나 맞벌이하는 엄마가 쓴 생활 에세이를 본 적이 있던가 떠올려 봤는데 기억나는 게 없네요.
대신에 육아, 결혼으로 인한 친인척 관계, 부부관계, 살림, 요리, 출산여성의 커리어 등등에 대해서 제가 알지 못했던 많은 부분들을 페북에 글로 남겨 공유해주시는 분들 덕분에 많은 걸 얻었습니다. 특히 저는 아이가 없이 맞벌이하는 주말부부인지라 주변사람들이 자녀를 키우는 부모의 역할을 하며 하는 경험들을 알고 싶었거든요.
그간 놋그릇, 코스트코 쇼핑팁, 가성비 좋은 밀키트, 시간을 단축하면서도 맛을 보장하는 조리법과 함께 남들은 불편하게만 생각하지만 굳이 귀찮음을 무릅쓰고 말해주지 않는 팩폭까지 선사해주시는 남수혜님의 포스팅을 즐겁게 봤었는데, 강물처럼 어어어 하는 사이에 떠내려 가버리는 페이스북 타임라인에서 과거 글들을 건져 올려서 정리한 걸 모아서 보니 재독의 즐거움이 있고, 스틸 컷들이 모여 초당 24프레임으로 영상이 된 것처럼, 아직 만나보지 못한 분을 이미 만난 느낌이 드네요.
책을 덮으니 쾌활하고 씩씩한 저자와 한껏 수다를 떨고 난 것처럼 목이 타고 기분도 업되서 평소에 즐기지 않는 혼술을 하려고 막걸리를 꺼냈습니다. 한 병이래봤자 보르도 잔 두 잔이니 금방 비우네요. 유통기한이 3주 지났지만 멀쩡하고 맛만 좋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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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상대가 필요한 일을 해주는 것이다. 반짝이는 보석도 화려한 옷도 이제는 지나간 연인 같은 것. 생활인으로서 어른에게 필요한 것은 집 안의 먼지를 모아둔 먼지통이다. 내 품을 팔지 않고 로봇이 스스로 채운 먼지통을 바라보면 그 뿌듯함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자신이 만든 쓰레기를 정돈하는 것, 주변을 정돈하는 것은 타인에 대한 배려와 사랑이다. 먹던 과자 봉지를 휙 두고 가버리거나 음식을 먹고 그릇을 정돈하지 않으면, 성인이 되었을 때 다른 사람들로부터 존중과 사랑을 받지 못한다.
(중략)
살림하는 부모의 고단함을 알아주는 것, 청소의 어려움을 아는 것 또한 사랑이다. 아이들을 사랑이 많은 사람으로 자라게 하고 싶다. 그 사랑이 타인을 향한 관심과 이해로 확대되기를 바란다. 이런 관심과 이해가 배려심 많은 따스한 사람으로 자라나게 할 것을 믿는다. 내 남편이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인사를 굳이 왜 해야 하는 것인가? 아이들을 통해 배운다.
인사를 건네며 타인에게 관심을 갖고 따스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것, 그것이 인간관계의 시작이며 소통의 시작이다. 관심을 가지면 타인의 감정과 처지에 공감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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