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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보라, 박주희, 전혼잎] 중간착취의 지옥도(2021)

독서일기/에세이(한국)

by 태즈매니언 2021. 12. 6. 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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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올해의 책 후보를 만났습니다. 한국일보 특집기사의 문제의식과 100명의 파견직 종사자들의 목소리, 기자들의 취재 일지와 보도 이후의 노력들이 한 권의 책에 담겼습니다.
이 책을 읽고서도 과연 ‘기레기’라는 직업 전체를 매도하는 멸칭을 사용할 수 있을까요? 제가 보기에 이 책에서 한국일보의 이진희 부장, 남보라, 박주희, 전혼잎 기자는 자신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의 노력을 다 했습니다.
근로기준법 제9조의 중간착취의 배제 조항이 용역근로자나 근로자파견법에서 허용한 파견근로자들애게는 이렇게까지 철저하게 무력화되어 있었고, 정부와 국회에서 지난 30년 동안이나 무관심하게 방치했을거라고는 생각도 못했습니다.
노동자 파견제도가 필요한 경우가 있겠지만 노동시간의 유연성 확보를 명분으로 도입해놓고서 임금 착취로 이익을 취하게 방조하다니요.
도급계약에 따른 위탁업체 소속 노동자의 보호와 노무 파견 사업자들과 고용계약을 체결한 파견노동자의 경우를 구분해줬으면 더 좋았겠지만 가사노동 아웃소싱 앱까지 한 권에 담아낸 분들께 과한 바람 같습니다.
불법 파견으로 인한 피해를 관할 노동청에 신고하고 쟁송으로 다투더라도 1심 판결에만 4년이 걸리는 현실과 부당노동행위 혐의에 대한 증거불충분 불기소 처분의 현실을 보여주시는데 씁쓸합니다. 근로자파견법상의 서면고지 의무 위반자로 처벌한 사례가 9년 동안 단 2건 뿐이라는데 법만 제정하면 뭐합니까. 법을 집행할 능력이 이 정도로 없다면 부작용을 감수하고 위반행위 신고 포상금 제도를 도입해야 하는게 아닌지요.
기획 탐사보도로 사회에 반향을 불러왔으니 직업인으로서의 역할을 충분히 했다고 볼 수 있는데, 환노위 소속 14인의 국회의원과 보좌진들에게 법제개정안을 포함한 질의서를 보내고, 의원회관에서 만나서 중간착취 문제의 심각성을 설명한 일, 의안정보시스템을 통해 파견법 제정 이후의 개정노력들을 정리하고, 국회 의사록까지 읽어 본 일, 세종시에서 고용노동부 근로기준정책과장을 만난 일 등 존재하는 불합리한 제도를 바꾸는 노력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그 과정을 얼마나 지난한지를 잘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이혜미 기자의 <착취도시, 서울>도 그렇고 한국일보의 뉴스룸국에서 벌이는 새로운 시도들이 국내 안론사와 기자들에게 좋은 모델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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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5쪽
중간착취 문제가 바로 잡히지 않았던 것은 어쩌면 우리가 자주 말하지 않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이 단어를 자꾸 말하는 것이 가해자에게 책임을 묻는 첫걸음일 수도 있다. 한 언어가 발화되는 순간, 실재하되 보이지 않았던 문제들이 선명히 그 모습을 드러내곤 하니까.
중간착취. 우리는 앞으로도 이 단어를 계속 말할 것이다. 지방자치단체 등 공공부문에서 중간착취를 막기 위한 제도가 제대로 작동하고 있는지 취재 중이며, 국회와 정부가 관련 법과 제도를 어떻게 바꿔나가는지도 계속 지켜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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