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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미소] 언어가 삶이 될 때(2022)

독서일기/에세이(한국)

by 태즈매니언 2022. 4. 13. 1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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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가 삶이 될 때>, 김미소(2022)
일본에서 영어를 가르치면서 광둥어를 배우는 한국인 미소님.
벨트 컨베이어에 올려진 것처럼 한국의 초중고대 학제를 그대로 따라갔던 저와는 다르게 여러 언어와 함께 여기저기 ‘낑겨’ 보낸 경계의 경험으로 빚어낸 자아와 삶의 이야기들을 한 권의 책에 담아내셨네요.
미소님과 페친이긴 하지만 첫째 장의 서두에 나오는 <세계화는 끝과 끝에서 1,2>에서 훅 치고 들어오는 가정사는 몰랐고, “정말 제목을 잘 지었구나.”라고 생각하며 정신없이 읽기 시작했습니다.
넷째 장 <지속가능한 영어 공부>에서는 언어학 연구들과 자신의 체험, 수업의 경험들을 통해 모국어가 아닌 언어를 통해 새로운 세계를 접하고 자아를 확장시키는 외국어 학습의 태도를 조언해주십니다. 상업적인 의도로 오용되는 영어학습 마케팅에 대한 안타까움에 공감했고, 연구자이자 교사로서 해주시는 조언들이 영어학습에 대한 의욕이 사막처럼 메말라버린 제게도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혹시 지금도 빅보카와 영어독립으로 영어공부 하시는 분들은 제발 이 책을 보셔야... ㅠ.ㅠ)
분명히 선택의 기회가 있었는데도 20대의 저는 모국어로 쌓아올린 성인의 자아를 깨고 외국어로 새로운 자아와 세계를 맞이하는게 두렵고 피곤한 일로 느껴졌습니다. 시골에서 광역시로, 다시 서울로 옮기며 적응하는 것도 피로했거든요.
그래놓고선 지금은 “20대에 1년 이상 외국에서 살아봐야 했는데 그렇게 하지 못했던 게 후회된다.”는 말을 하는 사람이 되었네요.
10대의 저는 제2외국어로 프랑스어를 배우다가 가수 Elsa가 좋아서 고교생 외국어경시대회 준비를 했고, 알퐁스 도데 단편선을 원서로 보기도 했었는데. 20대 초반 군복무를 마치고 몽골여행을 할 때는 러시아 프루공을 타고 며칠간 사막 여행을 하면서 같은 합승버스에 탄 몽골주민들과 TSR을 타고 넘어온 프랑스 여행자들 사이에서 통역 비스무리한 역할도 했었는데 말이죠.
간결한 단문들에 담긴 읽는 이에게 전달되기 위해 공들여 깎아낸 조각품같은 생각들과 챕터를 마무리 짓는 주제의식이 담긴 우아한 문장들을 읽으며 행복하면서도 제가 쓰는 문장들이 부끄러워서 어디 숨고 싶어지는 단점도 있는 저의 올해의 책입니다.
읽으면서 제가 알고 가깝게 지내는 외국에서 살았고 학위과정을 마쳤던 분들, 그리고 시대와 환경은 달랐어도 왠지 비슷한 경험과 고민을 하시면서 언어를 자신의 진로에 놓으셨지 않을까 싶은 앤아버의 페친님 생각이 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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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용하고 싶은 문장들이 너무 많아서 추릴 수가 없네요. 이렇게 된 거 딱 구절만 골라봅니다.)
136쪽
(전략) 내 말의 하찮음을 견디는 만큼 내 말그릇이 넓어진다.
이 모든 걸 전부 아는데도, 다 큰 성인이 하찮음을 견디기란 보통 쉬운 일이 아니다. 자신의 자아가 이미 자기 키만큼 성장해버린 성인에게, 겨우 한 뼘 되는 외국어 자아로 살아가라고 하면 절망스러운 게 당연하다. 어제도 하찮음, 오늘도 하찮음, 아마 내일도 하찮음. 이걸 어떻게 견디라는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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