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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정] 철도와 근대 서울(2018)

독서일기/교통

by 태즈매니언 2022. 7. 29. 0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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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니는 직장이 한국교통연구원인데 교통에 대한 지식이 부족하다보니 적어도 교통사나 문화사 정도는 숙지하고 싶어서 <거대도시 서울철도>에 이어 보게 되었습니다.

책값이 7만 원이지만 컬러 지도와 그림들이 별책으로 제공되고 700페이지가 넘는 벽돌책을 국학연구원이 아니면 과연 출판해줬을까 싶어서 감사하네요. 마찬가지로 올해의 책 명단에 올릴 책입니다. 역시 페북의 독서가 페친들이 많이들 추천하는 이유가 있었습니다. 순서상으로는 이 책을 먼저 읽어서 한국 철도사 지식을 쌓은 다음에 철도정책과 철도계획을 제안하는 전현우님의 책을 읽는 게 좋을 것 같네요.

복식부기는 이탈리아 상인이, 주식회사는 네덜란드에서 만들었지만 실제로 일반 사람들이 근대 시대를 체험하게 된 것은 철도의 확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영국에서의 철도건설 버블 때 온갖 주식회사들이 난립하고 투자금을 조달하면서 자본시장, 회계, 민간투자사업의 제도들이 급속히 발전했으니까요.

평생을 철도사에 천착한 학자 정재정님께서 은퇴 후 정리한 필생의 역작이지만 철도 문외한인 제가 감명받은 것은 조선반도에 철도가 처음 들어오면서부터 해방이 될 때가지 철도라는 교통시스템이 조선시대를 살던 조선인, 특히 서울 바깥의 지방사람들을 어떻게 근대인으로 바꾸었는지를 너무나도 잘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만약에 일본이 조선반도를 제국의 나들목이자 대륙병참기지로 낙점하지 않고 서구 열강처럼 원자재의 수급처 정도로만 취급했다면 주요간선철도들을 단기간에 완성하기 위해 이렇게 자원을 투입할 이유도 없었고, 궁벽한 조선반도에서 근대문명을 체험할 기회는 부산이나 서울주민들 이외의 조선인들에게는 그다지 없었을 겁니다. 물론 일본의 선의가 아니었다는 건 당연하지만요.

한국인들이 철도청을 중심으로 철도를 기억하는 것과 달리 이미 백년도 전에 경인선과 경부선은 지금의 민간투자사업 BTO 사업 모델로 건설 및 운영되었고, 장항선과 경춘선, 충북선은 지금의 신분당선과 같은 민자철도(사철)이었다니 놀랐습니다.

일본인들이 미국인 모스로부터 경인선 부설 및 운영에 관한 특허를 인수하기 위해 경인철도인수조합을 결성하고 이후에 합자회사 설립 후 일본정부의 대부금까지 받아내는 과정, 1939년 경춘선의 경우 도청을 철원에 넘겨줄 위기에 처한 춘천지역 유지들과 시민들이 중심이 되어서 자본을 모아 회사를 설립하고 총독부 청원과 여론전을 통해서 재조선 일본인과 조선인들의 자금을 모아 수요예측을 해서 당초 약속한 7%의 주주배당을 주는 등 성공적으로 운영했던 민간투자사업이라는 사실도 처음 알았네요.

지금의 광대한 용산 코레일부지가 경부철도주식회사와 통감부가 최대한 철도부지를 확보하려고 했던 노력의 유산이라는 것도요.

지역이기주의와 정치공방 끝에 오송역이라는 희대의 쓰레기역을 이용하고 있는 입장에서 참 부럽고, 식민지 시대라고 치부해버리긴 어려운 당시 조선의 역동성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일반교양서로 읽기엔 다소 전문적인 책이지만 필요없는 부분을 훌훌 넘기고 본다면 한국의 인문학 저자가 출판한 최상의 교양서라 관심있는 분들에게 추천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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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쪽

경인선을 차지한 일본은 1899년부터 1945년까지 한반도에서 6,400여km의 철도를 건설했다.

127쪽

일본이 한국정부에 빌려준 토지보상비 총액은 27만 6천여 원이었다. 이것은 경부철도 건설비 총액의 0.9%에 지나지 않았다. 당시 일본 국내의 철도건설비 중에서 토지수용비가 차지하는 비중이 13%였음을 고려하면, 한국에서의 철도용지의 수용이 얼마나 값싸게 이루어졌는지 알 수 있다. 수용이라기보다는 강탈에 가까웠다.

292쪽

1939년 6월말, (경경선:중앙선) 열차가 우보에서 영천까지 달리게 되자 20리가량 떨어진 소학교에서는 점심을 싸 와서 단체로 기차를 구경했다. 부인네들은 눈정기가 좋아진다고 하며 고무신을 벋어서 기관차에서 떨어지는 물방울을 받아 눈을 씻었다. 또 달리는 열차를 만져보려고 궤도 안으로 뛰어드는 사람이 많아 기차가 진행할 수 없었다. 어느 노인은 궤도에 걸터앉아 '양반이 앉아 있는데 누가 내 앞을 지나가'라고 하며 호령하여 뭇사람을 웃겼다. 열차에 시승한 기자는 이런 모습을 보고 경경선 연선의 문화수준이 경부선 연선에 비해 10년 이상 뒤졌다고 촌평했다.

320쪽

해방 당시에 (조선총독부) 철도국은 10만 7천여 명에 달하는 종사원을 거느렸다.(1945년 기준 조선인 비중 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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