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이맘 때, 매일신문의 시니어문학상 수상작 <실버 취준생 분투기>가 몇 달 후에 발굴되어서 타임라인에서 화제가 되었었죠. 이런 글을 써주신 이순자 작가님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졌는데, 당시에 이미 위독하셨고, 머지않아 지병으로 사망하셨다는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그래도 문학의 힘 덕분에 이순자 작가님께서 남긴 원고들이 산문은 이 <예순 살, 나는 또 깨꽃이 되어>로, 시는 <〈꿈이 다시 나를 찾아와 불러줄 때까지〉로 세상에 나왔네요.
예전에는 문학이 다루는 청년과 중년의 인물들에 대해서만 관심이 있었는데 40대 중반이 되다보니 60 이후의 삶이 그리 멀게 보이지 않네요. 읽으면서 제 관심이 요즘 계속 동시대 사람들의 삶에 매몰되어 있지 않았다 하는 생각도 들었고요. 저보다 전세대, 전전세대의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왔는지에 대해 무관심하다보니 그들을 이해하고자 하는 의지와 노력도 부족했다 싶습니다.
<순분할매 바람났네>를 보면서 '햇빛이 소죽 아궁이처럼 뜨겁던 날'이란 표현을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라 기뻤습니다. <실버 취준생 분투기>에서 여성 요양보호사의 어두운 고충이 부각되었는데, <돌봄>은 만성 질환이나 장애를 앓는 재가환자를 수발하며 벼랑에 선 사람들에게 하루 네 시간의 요양보호사 조력이 일상을 지속하는데 얼마나 큰 도움이 되는지 절감할 수 있었습니다. 제가 길거리에서 마주친 추레한 노인이 귀자씨의 남자와 같은 숭고함을 품은 사람일수도 있다는 사실이 위안이 되네요.
가족사가 많이 담긴 이 책을 출판할 결심을 해주신 따님을 비롯한 가족분들에게도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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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8쪽
이들을 보며 돌봄의 정의가 무엇인지 생각하게 되었다. 죽을 만큼 힘들어도 여자에게 손을 떼지 못하는 남자. 하마터면 거리의 부랑아가 됐을 남자를 아무 조건 없이 곁에 둔 여자. 남자가 여자를 돌보는 건지 여자가 남자를 돌보는 건지 모르겠지만, 보도블럭 사이에 핀 민들레꽃처럼 그들의 돌봄은 여전히 진행 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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