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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버트 케이건/홍지수 역] 밀림의 귀환(2018)

독서일기/국제정치

by 태즈매니언 2023. 5. 9. 2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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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가 페친님들께서 다같이 극찬한 책이었는데 역시 사람들 보는 눈이 비슷하네요. 겨우 200페이지 남짓의 분량인데 '익숙한 것을 낯설게 보게' 해주는데 아주 탁월한 책이었습니다.

이 책이 나온 2018년에 읽었더라면 국제정치와 지정학을 이해하는 제 시야가 훨씬 빨리 넓어졌을텐데 아쉽기도 합니다. 제가 1998년에 <국제정치학 개론> 수업을 들을 때 현실주의와 자유주의를 국제정치의 두 개 사조로 인식했는데, 앞으로는 자유주의는 옛날이야기로 잠깐 언급하고 넘어가는 정도가 되지 않을지.

미국의 애치슨 전 국무장관이 "법칙도 없고 심판관도 없고, 착하다고 상을 주지도 않는" 세상은 밀림이라고 했다네요. 공산주의라는 라이벌이 있었던 냉전시기를 포함해서 지난 70년은 계몽주의를 수반한 자유주의 국제질서가 폭넓게 받아들여져 온 아주 예외적인 '역사적 행운'의 시기이고, 미국이라는 유례없이 특이한 정원사가 지금까지처럼 공들여 관리하기 버거워하는 상황에서 정원을 훼손하고 압도하려는 넝쿨이나 잡초처럼 뻗어나오는 독재와 민족/국수주의의 물결로 인해 끝나간다는 이야기를 합니다. 지금이야 뻔해 보이지만 그건 이 책이 출간된 지난 5년 동안 저자의 우려대로 상황이 흘러왔기 때문이겠죠.

저는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이 이 책을 읽었다면 어떤 소감 혹은 자신의 판단에 대한 변명을 남길지 궁금하네요. 티핑 포인트의 순간에 자신의 외교정책이 분수령을 만들어버렸다는 점을 저자 로버트 케이건이 낱낱이 지적하고 있거든요.

대외경제와 외교쪽 관료와 정치인들은 이 책을 꼭 읽어줬으면 싶네요. 결국 대한민국이 앞으로 헤쳐나가야 하는 상황이 녹록치 않다는 씁쓸한 생각이 들지만 누군가는 조타수로 키를 잡아야죠.

저같은 사례처럼 자유민주주의 국가는 가정을 이루고 자녀를 가져야할 이유를 제시하지 힘들어하고 있고, 독재국가와 신정주의 국가는 그렇지 않으니 발버둥쳐봤자 뭐하나 싶기도 하지만요.

명민한 표현들이 많아서 인상깊었던 구절들을 메모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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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6쪽

그런데 문제는, 우리가 자유주의 세계질서라는 보호막 속에서 너무 오랫동안 살아온 결과 "있는 그대로의" 세계가 어떤 모습인지를 잊었다는 점이다. 지난 4반세기 동안 미국의 외교정책이 참담한 실패였다고 비판하는 이들은 지난 100년의 기간 동안 어느 4반세기가 가장 마음에 드는지 자문해봐야 한다.

141쪽

지난 30년 동안 보인 모습대로 세계를 본다고 해서 세계를 "있는 그대로" 본다고 할 수는 없다. 그 세계는 미국의 힘과 자유주의 세계질서가 만든 세계다. 미국의 제2차 세계대전 참전과 종전 후에 구축한 자유주의 세계질서는 역사의 경로를 재설정했다. 다른 나라들은 자국의 행동을 미국의 힘과 자유주의 세계질서가 구축한 현실에 따라 조정해야 했다.

148쪽

미국이 러시아 역내에서 러시아의 이익 권역을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들은 러시아의 역사적인 이익 권역은 우크라이나에서 끝나는 게 아니라 우크라이나에서 시작된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러시아의 이익 권역은 발트해 국가들과 폴란드까지 아우른다.

158쪽

(오바마가 2013년 시리아에서 군사력을 사용하지 않기로 결정했을 때) 아베의 한 보좌관이 훗날 말했듯이, 미국이 더 이상 "세계의 경찰" 역할을 하지 않는다면 일본은 더 이상 "미국이 우리를 보호해주리라고 믿을 수" 없었다.

164쪽

민주정체는 사람들이 비교적 안전하다고 느낄 때 가장 잘 작동하고, 불안하다고 느끼거나 불안할 때 가장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 사람들이 자신이 속한 문화와 자신의 삶이 위협받는다고 느끼면 자국민들끼리 서로 보호하고 뭉치게 된다.

179쪽

리버럴은 미국의 힘이 "미국의 국경을 넘어 선한 일에 쓰여왔다"고 믿지만 잘못한 일도 있다는 점을 묵과하지는 않는 반면, 진보주의자들은 "해외에서 미국이 힘을 행사할 때면, 특히 군사력을 행사할 때면, 그 저변에는 거의 항상 악의가 깔려 있다고 전제한다." 그들은 "개입주의와 제국주의가 상당히 다르다는 점"을 보지 못한다.

196쪽

자유 민주정체는 역사상 흔하지 않았다. 자유 민주정체가 인간의 본성에 반하지 않을지는 모르지만, 인간의 본성이 선호하지 않는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자유 민주정체가 우리 시대에 살아남고 번성한 이유는 이를 주도하는 국가들이 안전지대를 구축해 자유 민주정체가 그 안에서 보호받고, 성공을 가로막는 자연적인 장애물들을 극복하게 해주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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