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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상철] 몰락의 시간(2023)

독서일기/한국정치

by 태즈매니언 2024. 7. 11. 15: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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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은입니다>를 읽으면서 봤던 '문 선배'라는 익명의 이름으로만 알았던 문상철님. 정치인 안희정과 2011~2017년까지 7년의 시간을 보냈고, 본인도 수행비서로 일을 했었던 그 분이 쓴 이 책은 꼭 읽어보고 싶었습니다.
분명히 훌륭한 정치인이 될 의지와 자질이 있었던 정치인이 지방자치단체장을 연임하면서 점점 판단력과 균형감각을 잃어가는 과정은 반복될 가능성이 높고, 가해자는 또 나오게 될테니까요. 게다가 성리학 탈레반 후조선의 정치인이라는 직업 난이도는 저한테는 불가능한 수준으로 난이도와 스트레스가 높아보이네요.
 
정치인 안희정의 참모로 일해왔던 문상철님이 국민들을 위해서 시민의 명예로운 임무로서 이 책을 남겨준 것만으로도 정치가 왜 중요한지를 일깨워주는 메시지라고 생각합니다.
정치인의 양성을 정당이 맡아주길 바라는 건 가망없는 일이고, 연예인기획사처럼 정치인 지망생들과 계약을 통해 기획과 트레이닝을 맡는 전문 회사가 필요하다고 생각되는데, 아이돌과 달리 공식적인 수익배분을 할 수 없죠.

계속 논의되어 온 로비스트 등록 및 로비활동 공개 법제화를 통해서 도 컨설팅 비용으로 투자비와 초과이윤을 회수해갈 방법을 만드는 것이 불가능한 수도승같은 정치아이돌을 기대하는 것보다 합리적이지 않을까요? 로비제도가 금지되어 있다보니 선거 때만 떳다방처럼 음성적으로 운영되는 것 같습니다.
 
아직도 2018년 3월 15일 저녁 JTBC에서 나온 생방송 인터뷰의 진실성과 대법원 확정판결에 대해 의구심을 가지고 계신 분이라면 한 번 읽어보시길 추천드립니다.
 
기억하고 싶은 구절들이 정말 많아서 인용이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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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쪽
안 지사는 취임 직후부터 실국장들의 오랜 관록에서 나오는 대면 보고의 압박을 온라인으로 밀어냄으로써 도정의 주도권을 점차 잡아가기 시작했다. 아무 일 없이 집무실에서 생각만 할 수 있는 시간이 점차 많아졌고, 그와 동시에 외부 행사도 줄이기 시작했다.
(중략)
안 지사는 자신의 개인 전화번호를 더 이 상 외부에 공개하지 않았다.
(중략)
일부 참모들은 대통령실을 포함한 주요 정치인들에게만큼은 안 지사 개인 번호를 공유하라고 조언했다. 그러나 안 지사는 기존 방식을 고수하며 알려주기를 거부했다. 일정과 회의 중에 전화에 시달리지 않는 것 이외에도 개인적인 부탁과 감정에 호소하는 연락들에 스스로 에너지를 소모하지 않아 좋다고 말했다.
45쪽
공통적으로 겸손하게 강의를 했던 분들보다 '내게는 답이 있다. 내가 다 안다. 좋은 정책은 다 내게 있다'며 잘난 척했던 분들이 이후 진보 정권에서 상대적으로 더 많이 관직에 오르는 걸 보기도 했다. 스스로를 잘 내세웠던 강사들은 대체로 풍부한 지식과 새로운 관점을 제공하기보다 학습자로 앉아 있는 권력자의 성향에 맞춘 말들을 많이 쏟아냈다. 학자보다는 정무 감각이 뛰어난 정치인에 가까워 보였다.
50쪽
(안희정)"정치권에서 진짜 참모와 정치 양아치를 어떻게 구별하는 줄 아나? 바로 '페이퍼를 만들 수 있느냐'야. 어떤 내용이든 보고할 내용을 흰색 종이에 활자로 정리할 줄 아느냐 모르느냐가 그 기준이지. 정치 양아치가 안 되려면 이 페이퍼를 쓸 줄 알아야 해. 내 주변을 잘 둘러보게. 대부분 말로만 그럴듯하게 이야기하고, 보고서 한 장 못쓰는 사람들이 수두룩하지?"
60쪽
인사 발표가 있을 때면 비서실 공무원들은 도지사에게 보고되는 인사발령 자료를 몇 시간 더 빨리 볼 수 있었다. 이때 의전 라인의 행정 공무원들은 승진하는 공무원들의 이름을 따로 모아 개별 전화를 돌렸다. 내부 시스템에 공식 공지도 되기 전에 확신 어린 말투로 축하 인사를 건네고, 승진 소식을 가장 먼저 당사자에게 알려줌으로써 마치 자신이 승진이나 발령에 힘쓴 것 같은 인상을 주었다.
65쪽
지시는 미세하면서도 복잡했다. 결론적으로 지금보다 더 많은 걸 사전에 검토해서 정치인으로서는 더 돋보이고, 인간으로서는 더 편안하게 다닐 수 있는 방법을 연구하라는 지시였다. 단 티가 나서는 안 된다는 전제가 있었다. 더 많은 관심과 긴장이 요구됐다.
68쪽
결국 수행비서 매뉴얼은 정치인을 더 무력하고, 무능한 사람으로 만드는 근거가 되었다. 더불어 그 어떤 잘못도 허용할 수 있는 빌미를 제공했다. 관선 도지사 시절부터 이어져온 병폐와 개인의 끝 모를 기호까지 담은 수행비서 매뉴얼은 앞으로 사라져야 한다.
112쪽
후원 담당 참모들의 요청은 딱 한 가지였다. 바로 후원자와 후보 간의 만남 또는 전화 통화였다. 후보는 참모 이름을 넌지시 거론하며 관심 가져줘서 고맙다는 정도의 중의적 표현을 하고, 전국 각지의 후원자들은 후보가 직접 건 전화 한 통화로 자신이 후원한 사실을 후보도 알고 있음을 간접적으로 확인했다. 후보 역시 이런 시스템을 선호했고, 정치 자금을 확보하는 참모들은 위험하고 궂은 일을 도맡아한다는 인식과 더불어 캠프 내 높은 장악력을 가지고 있었다.
126쪽
공무원 조직과 비슷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안 지사의 눈에 띄는 사람은 주로 앞에서 관계만을 내세우는 사람들이 많았고, 뒤로 한 발짝 물러나 있는 사람들은 어디에서 뭘 하고 있는지조차 모르는 사람으로 인식되었다.
이름팔이 정치의 가장 큰 폐해는 시간이 가면 갈수록 모두가 자신의 일을 하는 게 아니라 항상 후보의 눈에 띄기만 바랐다는 것이다.
144쪽
대한민국에는 정부의 영향력이 미치는 정말 많은 기관의 자리가 있음을 이 때 새삼스럽게 알게 되었다. 경력과는 무관하게 잠시 캠프를 거쳐갔던 사람들조차 다양한 자리에 임명되었다. 우리 캠프를 통해 문재인 캠프로 우회 상장을 하려던 많은 사람이 전략적 성공을 거두며 사회 곳곳의 높은 자리에 앉았다.
163쪽
가장 가까운 참모로서 파렴치한 범죄가 일어나는지조차 알아채지 못했고, 범죄가 일어난 이 거대한 권력의 성을 쌓는데 일조했다. 또 다른 피해자로 추측되는 후배와 국회 앞 카페로 자리를 옮겨 피해를 당했다는 사실만을 확인한 채 세부 피해 내용은 더 묻지 않았다. 카페에서 대화를 나누는 그 잠깐의 시간 동안 후배에게는 안 지사 주변 사람들로부터 계속 전화가 쉬지 않고 걸려왔다.
174쪽
(안희정의) 둘째 아들은 피해자로 추측되는 사람들을 직접 만나 그 대화를 녹음했다. 그 녹음된 파일 속에는 내가 피해자로 추측했던 한 선배의 절규 어린 목소리도 들어 있었다. 2010년 도지사가 된 이후부터 성범죄 피해를 당해왔고, 주변 사람들이 알면 큰일 날 일이기에 지금껏 비밀로 지내왔다는 맥락의 이야기였다.
189쪽
일반인들은 수행비서가 어떤 업무를 하는지 잘 몰랐기에 사건 자체만 떼어놓고 봤을 때 '성범죄 피해자가 호텔 결제를?', 다음 날 아침 식당을 찾아?'라는 의문을 가질 수 있겠지만, 이는 피해자가 특별하게 한 일이 아니라 오래전부터 이어져온 수행비서의 업무들이었다.
206쪽
외압이 셀 당시에도 정세균 국회의장은 여러 외풍으로부터 날 막아주었다. 그러면서도 내게 작은 티조차 내지 않았고, 듣는 뒷말들에 대해서도 내게 전혀 묻지 않았다. 나중에 정세균 의장의 트위터 계정에 가보니 나를 비난하고, 헐뜯는 수백개의 메시지들이 와 있기도 했다. 그런 상황 속에서도 아무런 말 없이 의원실에서 꾸준히 일할 수 있도록 배려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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