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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표] 대한민국은 무엇을 축적해왔는가(2024)

독서일기/한국정치

by 태즈매니언 2024. 7. 13. 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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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희정씨가 충분한 자질이 있었으나 몰락한 정치인이라면 지난 21대 후반기 국회의장을 지내고 30년의 기재부 공무원 생활과 20년의 정치인 활동을 마치고 올해 은퇴한 77세의 김진표씨는 성공한 정치인입니다.
저는 민주당이 수권정당으로 인정받는데 한미FTA 체결 등 이 분의 경제정책에 대한 견해와 역할이 컸다고 생각하지만 당원들이 좋아하는 성향이 아니었고, 두 번의 경기도지사 선거에서 경선과 본선에서 패하셨죠.
정치인이 선거용으로 급조한 책이 아니라 회고록의 성격이기에 책은 초임 사무관으로 일하며 겪었던 박정희 대통령부터 국회의장으로 겪은 윤석열 대통령까지 흥미를 유발할 가십거리는 배제하고 국가를 이끄는 지도자가 갖춰야할 덕목을 중심으로 진중하게 이야기합니다.
 
그런데도 말미에 나오는 윤석열 대통령의 이태원 참사가 조작된 것이라는 의구심에 대한 언급 부분만 언론에 부각되서 아쉽네요. 2016년에 송민순 전 장관의 <빙하는 움직인다>에서 '북한에 물어보면 되지 않냐?'는 발언과 판박이죠. 국가의 경영에 핵심적으로 참여했던 이들의 회고록에서 겨우 그런 것밖에 들추지 못하는지 아쉽습니다.
혹시 이 책을 읽어볼 생각이 없으시다면 제가 올린 270페이지 한 쪽이라도 꼭 읽어보시길 권합니다.

 

타협을 통한 의사결정이 아닌 팬덤 결집을 통한 정체성 과시에 집착하는 방식으로 변하면서 박근혜, 문재인, 윤석열 이 세 대통령 시기엔 한국이 축척한 가치는 거의 없지 않나 싶네요.
다만, 본인이 문재인 정권의 정권인수위원장 역할을 했는데도 불구하고 캐치프레이즈였던 '소득주도성장'이라는 허깨비에 대해 아무런 언급을 하지 않고 지나간 부분이나, 경제 부총리까지 지냈고 주로 세제실 업무를 했다지만 금융정책실에서도 일했던 분이 왜 정치하는 동안 배당소득의 분리과세 방안이나 소액주주를 불공정하게 착취하는 자본시장 제도 개선에 대해 책에서 한번도 언급하지 않고, 올림픽대로 지하화같은 공약을 강조하시는지는 납득하기 힘들었습니다.
이런 개발시대 관료 출신의 훌륭한 정치인은 자디잔 일들을 하며 소확생을 누리는데 몰두하는 게 미덕으로 여겨지는 시대에는 나오기 힘들 것 같아서 책을 덮으며 아쉬웠고, 앞으로도 은퇴하는 정치인들의 회고록이 많이 나오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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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쪽
국가의 사명은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장할 능력을 갖추는 것이다. 거기서 자기 자식을 낳고 키울 수 있다는 믿음을 주고, 나와 내 가족, 내 자신의 미래를 맡길 수 있다는 안정적인 신뢰감을 주어야 한다. 이것이 언제나 첫 번째다.
그래야만 국가에 대한 귀속의식이 생기고, 애국심이 생긴다.
79쪽
각론에서는 의견이 갈렸지만, 역대 의장들은 각각의 출신 정당과 배경을 다 떠나서 김대중이라고 입을 모았다. 임기 내내 여소야대 국회를 상대하면서도 IMF 극복을 비롯한 여러 성과를 거뒀다는 게 그 총론적인 이유였다.
(중략) 다른 분이 "그럼 두 번째는 누구야?"라고 다시 물었다. 전직 국회의장들이 잠시 생각에 잠긴 뒤 만장일치로 꼽은 인물은 다름 아닌 노태우 대통령이었다.
87쪽
지난 30여 년간 축적되어온 고도 경제성장의 과실이 국민에게 고루 분배돼 중산층이 넓게 형성된 데에는 노태우 정권의 공이 크다. 그는 민주화 이후 거세게 터져 나온 격렬한 노동 시위에도 온건히 대응, 꾸준한 임금 인상을 유도했다. 그런 덕분에 국민의 생활수준은 안정적으로 향상될 수 있었다. 어찌 보면 '보통 사람들의 위대한 시대'라는 정권 캐치프레이즈가 정확히 어울렸던 시기였다.
90쪽
당초 30억 달러를 약속했지만, 이듬해 12월 소련이 붕괴하며 실제로 제공된 차관은 14.7억 달러다. 은행단 현금차관이 10억 달러, 수출입은행의 소비재 차관이 4.7억 달러로 러시아가 한국 기업의 상품을 구매하기로 계약을 맺으면 수출입은행이 해당 기업에 수출대금을 지불하는 방식이었다. 한국 상품 구입을 조건으로 하는 구속성 차관인 셈이다.
이때 제공한 차관 덕분에 오늘날 러시아 시장에서 한국 상품에 대한 인지도는 상당하다.
147쪽
청와대에서 김대중 대통령을 보좌하며 가장 기억에 남는 물건은 대통령의 대학노트 스물여덟 권이다. 그는 재임 5년 동안 모든 연설문과 말씀자료를 자신의 손으로 썼다. 모든 회의에서 그분이 발언한 내용은 직접 써온 것이었다. 대학노트에 파란색 플러스펜으로 또박또박 정자로 개조식 정리를 해오셨다. 한 줄 쓴 다음에 다음 줄은 비워놓고 그다음 줄에 다시 쓰는 식이다. 그 빈 줄이에는 다시 추가 사항이나 수정 사항을 메모했다. 그렇게 써온 노트는 연설 때마다 옆에 두신 채 보지 않고 말씀하셨다. 쓰면서 다 외운 것이다.
157쪽
내가 겪은 노무현은 그 누구보다도 반대 의견을 잘 받아들이는 사람이었다. 오히려 자신의 생각을 반박해주는 걸 기꺼워하고 즐기기도 했다. 그것이 자신을 성장시킨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174쪽
김대중 대통령이 존경받는 리더십이라면 노무현 대통령은 사랑받는 리더십이었다.
206쪽
나는 황우여 원내대표에게 말했다.
"당신이나 나나 원내대표는 1년만 하는 건데, 그 임기 내 나라를 위해서 남는 게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우리 국회가 다른 건 몰라도 정치인들이 서로 치고 박고 하는 건 막아야지요. 국정 운영의 파트너가 될 사람이 서로 다른 의견을 갖고 서로 공격하고 방어하고 토론할 수는 있지만 주먹질을 하는 동물 국회는 전 세계 어디를 찾아봐도 유례가 없으니 우리 이것만은 반드시 해결해봅시다."
이런 내 제안에 황우여 원내대표도 기꺼이 동의했다.
216쪽
나는 경제 운영에 세 가지 변수가 있다고 설명한다. 첫째는 조세, 둘째는 금융, 셋째가 예산이다. 조세는 인체로 말하면 골격과 같다. 뼈대가 비틀리면 몸 전체에 통증이 생기듯, 조세 역시 그 틀을 공정하게 제대로 정립하지 않으면 경제의 구조적 왜곡이 일어난다. 금융은 인체의 피와 같다. 온몸의 각 부분을 잘 순환해 막힘과 걸림이 없도록 해야 한다. 육체의 혈행이 중요한 것처럼 돈의 흐름은 막힘없이 이어져야 한다. 나라의 살림살이 적재적소에 투자돼야 하는 예산은 살과 같다.
251쪽
나는 문재인 정권이 이뤄낸 성과도 패착도 모두 원칙주의를 중시하는 성정에서 비롯됐다고 생각한다. 문재인 대통령은 법과 제도에 의해 절차적으로 완벽하게 완성된 세상 안에서 행동했다. 그의 주장과 행동 기저에 논리적 결함은 없었다. 그래서 타협과 양보도 없었다. 그러나 사람과 사람이 부딪치는 정치는 그런 것이 아니다. 정치에서 이런 태도로 이룰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266쪽
대통령에게 무조건 거부권을 행사하는 것이 옳지 않다는 의견을 직간접적으로 전달하기도 했으나 의미가 없었다. 끝내 21대 국회 후반기에는 야당의 법안 강행, 협상의 의지와 재량이 없는 여당, 거부권을 밥 먹듯 행사하는 정부라는 삼각 편대로 사이좋게 공멸하는 일이 반복됐다.
272쪽
이런 '일관성'을 위해 필요한 것이 바로 개헌이다. 아이를 낳고 이르는 데 필요한 보육, 교육, 주거는 나라가 책임지겠다고 헌법에 못 박는 것이다. 조문도 추상적이지 않도록 구체화해야 한다. 구체적으로 적시해야 국가가 지켜야할 의무가 되고, 이를 지키지 않는 정권은 탄핵에까지 이를 수도 있다는 강력한 의지를 보여줘야 나라에 대한 신뢰가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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