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김승섭] 우리 몸이 세계라면(2018)

독서일기/의학

by 태즈매니언 2024. 11. 9. 21:54

본문

 
만 45세를 지나 저도 드디어 노안이 오고야 말았습니다. 스마트폰의 글씨가 흐릿하게 보이고 초점이 제대로 잡히지 않으니 책을 보기가 전보다 한층 어려워졌습니다.
“이래서 다들 노안 오기 전에 책 많이 보라고 하셨군요.”
의학을 공부하면서 자신이 임상보단 보건을 진로로 택하는 것이 보다 많은 사람을 살릴 수 있는 길이라고 판단한, 보건학자 김승섭 교수님께서 학부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공중보건의 역사> 강의록을 바탕으로 쓰신 책입니다. 2018년에 나와서 11쇄를 찍을 정도로 널리 읽히고 있더 다행이네요.
역학의 역사, 보건정책과 몸의 정치, 과학적 사고와 이중맹검법 등 다양한 내용이 담겨 있는데 고등학생이나 대학신입생들이 읽으면 더욱 좋을 것 같습니다. 저는 보건의료사회학 교양서처럼 봤네요.
미국대선 결과 때문에 비웃음을 사고 있는 소위 진보와 리버럴들이 힙해보이는 트렌디한 잡다한 정책들의 나열이 아니라 이 책의 주제에 집중한 정책들을 주문하고 성공사례를 이끌어 냈더라면 유권자들의 선택이 어땠을까 싶습니다.
이 책의 아름다운 말들에도 불구하고 저는 인간은 유인원과 크게 다르지 않는 동물이라고 생각합니다. 진화의 유산인 본능적인 차별과 혐오를 억제하는데는 꽤 많은 인지 에너지가 필요하고요. 그래서 법률과 도덕으로 사람들을 통제하는게 능사가 아니라 핵심적인 부분을 옥죄는 대신에 오히려 마음대로 하도록 풀어주는 부분도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미국 민주당의 마약정책처럼 이걸 반대로 하면….망하는거죠.
저는 통제를 적게 받으며 일하는 사무직 직장인이고, 출근시간도 20분 이내인데다 텃밭농사로 수확한 야채와 동물복지계란으로 아침마다 아내가 차려주는 건강식을 먹고 삽니다. 잦은 술자리와 운동을 내켜하지 않는 제 생활습관이 문제일 뿐 보건정책의 그늘을 못느끼고 살았는데, 제가 인류역사에서도 얼마나 호사를 누리는 소수인지 다시금 깨닫게 되었고요.
——————————————-
30쪽
문제는 매뉴얼과 교과서 역시 누군가의 관점에서 생산된 과거의 지식이라는 점입니다. 그리고 그 지식의 생산 과정에는 과거의 편견과 권력관계가 스며들어 있습니다.
137쪽
가난은 대뇌 회백질과 해마를 모두 축소시킵니다. 일상적인 스트레스를 감당해야 하는 저소득층 아이들의 뇌는 가난으로 인해 자신의 잠재적인 역량 자체를 발휘할 기회를 박탈당하고 있는 것입니다. 가난의 문제에 국가가 적극적으로 개입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153쪽
가난하다는 이유로 살아가는 시간이 더 짧아지고 아프고 병드는 일이 더 자주 반복된다면, 그것은 부당한 일이라 생각합니다.
건강은 사랑하고 일하고 도전하기 위한 삶의 기본 조건입니다. 건강이 누구에게나 평등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226쪽
지난 30년간 의학의 발전으로 인해 HIV감염은, 20세에 HIV에 감염되더라도 평균 70세까지 살 수 있고 약을 꾸준히 먹어 체내 바이러스 농도가 일정 수준 미만으로 떨어지면 콘돔 없이 성관계를 해도 상대방에게 전염되지 않는 관리 가능한 만성질환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오늘날 한국의 HIV 감염인은 AIDS 합병증이 아닌 자살로 죽고 있습니다. 한국의 HIV 감염인들의 자살로 인한 사망은 동일 연령 비감염인에 비해 10배 이상 높습니다. 질병에 대한 비과학적인 낙인과 혐오 때문입니다.
327쪽
대학이 지금과 같은 지식 생태계를 가지게 된 데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현 시스템으로 인해 어떤 연구자와 어떤 연구가 배제당하고 있는지는 고민이 필요합니다. 한국사회의 고유한 문제를 한국어로 고민하고 쓰는 연구자들이 오늘날 대학에서는 가장 살아남기 어렵습니다. 이러한 어려움은 특히 한국사회의 사회적 약자에 관해 연구하는 경우 더욱 도드라집니다.

관련글 더보기

댓글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