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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경] 서른 살엔 미처 몰랐던 것들(2010)

독서일기/에세이(한국)

by 태즈매니언 2014. 3. 17. 2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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빤한 제목의 이 책을 읽게된 이유는 고마운 옛사람이 반가워서였다. 군시절 활자가 찍혔으면서 시각 공해가 아닌 종이에 걸신들린 내게 매달 보급되던 생수같은 책이었던 <좋은 생각>. 그 잡지의 편집자가 펴낸 책이라길래 우선 눈길을 끌었다이.

그리고 그 편집자가 성공하고 나서 내놓은 책이 아니라 자기 잡지사를 시도했다가 망하고 나서 펴낸 책이라는 점도 마음에 들었다. 성공을 했을 때는 누구나 남들 앞에 자랑하고픈게 많지만 실패하면 동굴을 찾아 들어가고 싶은게 인지상정이라 궁금하더라. 

천천히 곱씹으면 좋은 책을 너무 급하게 읽은 듯 하지만, 나도 그렇고 내 주변의 사람들도 삶의 속도를 높이고 애들도 키우고 하느라 옆에 있는 사람들과 두런두런 수다떨 여유도 없어지다보니 가끔은 이런 주제의 책이 종종 땡기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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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쪽

작가 앤드류 매튜스는 말했다. "사랑하는 사람들이 자신을 함부로 대하는데도 가만히 있는다면 당신은 결국 그것 때문에 그들을 미워하게 될 것이다."

73쪽

김제동씨가 어느 대학 신입생 환영회 사회를 의뢰받고 갔을 때다. 좌석을 가득 채운 학생들이 기다리는데 그는 무대에 오르지 않고 있었다. 학생 대표가 자신을 겜돌이라고 소개했기 때문이다. 김제동 씨가 정정해 달라고 하자 소개자는 '사회자 김제동'으로 고쳐 불렀다. 그러나 이번에도 나가지 않았다. '사회자'가 아닌 '사회사'라고 해 달라고 요구한 것이다. 결국 '사회사 김제동'이라는 소개를 받고서야 무대에 올랐다. 껄끄럽게 요구한 만큼 그는 혼신의 힘을 다해 진행했다. 

자신의 일에 대한 자부심과 자존심, 김제동 씨가 굳이 '사회사'로 불러 달라 고집한 이유다. 그는 법원 앞에 즐비한 변호사 사무실을 볼 때마다 "내가 저 옆에 반드시 '사회사 김제동' 사무실을 내겠다."고 다짐한 적이 있다. 억울한 사람을 법으로 구제하는 일도 위대하지만 수많은 사람에게 즐거움을 주는 직업도 위대한데 왜 그런 사무실 하나 못내겠냐고 그는 생각했다. 

145쪽

잊어버리고 싶은 기억이 많다는 것은 그만큼 열심히 치열하게 살았다는 소리다. 안도현 시인은 "삼겹살을 구울 때 고기가 익기를 기다리며 젓가락만 들고 있는 살마은 삼겹살의 맛과 냄새만 기억할 수 있을 뿐이다. 하지만 고기를 불판 위에 얹고, 타지 않게 뒤집고, 가스레인지의 불꽃을 조절할 줄 아는 사람은 더 많은 경험을 한 덕분에 더 많은 기억을 소유하게 된다."고 말했다. 

226쪽

"그래 맞아. 그래서 나는 내 몸 내가 챙겨. 내가 좋아하는 거 해먹고 운동도 열심히 하고 병원도 알아서 내 발로 가고 말이야. 남편하고 아이에게 쏟은 에너지 이젠 나한테 써야지. 남편도 힘들고 자식도 사느라 정신없는데 거기다 대고 내가 아프다 어쩐다, 나 좀 봐달라, 하면 반갑겠어? 괜히 나만 서운하고 속상하기나 하지. 내가 상처받을 일을 왜 스스로 만들어! 내가 다리가 없나? 입이 없나? 알아서 병원가고 안 아프도록 해야지. 나에게 잘하는 게 알고 보면 자식 위하고 남편 위하는 거야. 그게 내가 살 길이야!"

229쪽

<배꼽을 위한 연가5> - 김승희 

인당수에 빠질 수는 없습니다
어머니,
저는 살아서 시를 짓겠습니다

공양미 삼백 석을 구하지 못하여
당신이 평생 어둡더라도
결코 인당수에 빠지지는 않겠습니다
어머니,
저는 여기 남아 책을 보겠습니다

나비여,
나비여,
애벌레가 나비로 날기 위하여
누에고치를 버리는 것이
죄입니까?
하나의 알이 새가 되기 위하여
껍질을 부수는 것이
죄일까요?
그대신 점자책을 사드리겠습니다
어머니,
점자 읽는 법도 가르쳐 드리지요

우리의 삶은 모두 이와 같습니다
우리들 각자가 배우지 않으면 안 되는
외국어와 같은 것
어디에도 인당수는 없습니다
어머니,
우리는 스스로 눈을 떠야 합니다

233쪽

가수 예민은 10여 년 전부터 '분교 음악회'를 열어 왔다. 일주일에 한 번 전국의 초등 분교를 찾아가 음악회를 한다. 학생이래 봤자 많아야 열댓명이다. 어느 때는 딱 한 명의 어린이 앞에서 노래를 하고 마술을 했다. 그는 이 무대에서 가장 긴장하고 떨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산골 학교라지만 아이들은 텔레비전과 인터넷으로 유명 가수의 노래를 듣고 춤을 따라한다. 화려한 가수의 모습에 익숙한 아이들은 예민에게 이따금 묻는다. "아저씨 가수 맞아요?" 곧 사라질 학교에서 고작 몇 명의 아이들을 위해 자기의 모든 걸 펼쳐 보이는 공연이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느냐는 물음일 것이다. 
"먼 훗날 아이들이 어린 시절을 더듬어 보다가, '아! 그 때 그 가수가 왜 작은 시골 학교에 와서 공연을 했지?'하고 의문을 가진다면 그걸로 만족합니답니다."

241쪽

"죽을 날 다 되어 남한테 물 한 잔 얻어먹는 것도 조심스럽다. 물 한잔이라도 못 갚고 죽으면 어쩌겠나? 자식도 마찬가지다. 나는 잘 있다. 니들 걱정이나 해라." 
남에게 폐를 끼치기 싫다는 말이다. 절에 다니시는 어머님은 당신이 받은 것은 꼭 다른 사람에게 베풀어야 속이 풀렸다. 이웃에게 콩 한 쪽 얻어먹으면 콩 한 말로 되돌려 주는 식이었다. 무심코 내쉬는 한숨도 옆 사람 기운 빠지게 한다고 삼갔다. 날아가는 새들이나 산고양이들이 목 축이고 가라고 마당 대야에는 늘 물을 가득 담아 두었다. 평생 자신의 존재가 다른 사람에게 해가 되지 않기를 바라며 살아온 삶이다. 

243쪽

<반성16> - 김영승

술에 취하여
나는 수첩에다가 뭐라고 써 놓았다.
술이 깨니까
나는 그 글씨를 알아볼 수가 없었다.
세 병쯤 소주를 마시니까 
다시는 술 마시지 말자

고 써 있는 그 글씨가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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