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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석훈] 내릴 수 없는 배(2014)

독서일기/에세이(한국)

by 태즈매니언 2014. 10. 17. 1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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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석훈씨의 <한미 FTA 폭주를 멈춰라>를 읽었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지금은 그 내용이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의료민영화와 역진방지조항 등의 우려는 그대로일지 몰라도 무관세와 20만원 이하 목록통관으로 인해 해외직구가 활성화되고 국내시장을 독과점하고 있던 기업들이 호되게 경을 치고 있는 걸 볼 때 FTA에 대해 완전히 잘못된 결정이라고 할 수는 없다는 생각이다. 


세월호 침몰로 인한 비극이 시간의 풍화작용에 묻히기 전에 누군가는 이런 책을 썼어야 했는데 우석훈씨가 그 힘든 소임을 맡아 충실한 내용의 책을 써줬다. 세월호에 대해 계속 생각을 하는 것 자체가 너무 힘든 일인데도 불구하고, 사람들과 기관, 매체에 이것저것 끈질기게 물어가며 모은 자료들과 자신의 지식을 정리해서 쓰는 일이 얼마나 힘들었을지. 


인상깊은 구절을을 잊어버리지 않도록 남겨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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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쪽


물론 글 몇 편에 세상이 바뀌지는 않는다. 그러나 10이라는 위험이 벌어질 가능성이 있을 때, 이걸 9의 크기로 줄일 수는 있지 않을까라는 마음으로 최선을 다할 수 있어야 한다. 실제 현실에서 아무 일도 없을 수도 있다. 그러나 벌어지지 않은 일이라고 해도 그 1만큼을 줄이기 위한 노력들이 중요하다. 그리고 그 1의 일을 하기 위해서 자신의 많은 것들을 포기하는 사람들도 있다.


43쪽


우리가 '최소한의 안전 의식'이라고 말할 때에는 '안전 수칙을 잘 지키자'는 정도의 수동적 의미여서는 안 된다. 최소한의 안전의식은 위험한 일은 위험하다고 먼저 말하는 것이다. 일어나지 않았다고 위험하지 않은 게 아니다. 그런데 한국사회에서는 그런 일이 벌어지지 않는다. 그러니 우리는 '탑승하지 않는'게 불가능한 상태가 되는 것이다. 


52쪽


비행기가 아니라 카페리를 타고 수학여행을 가는 게 좋겠다는 교육당국의 노골적인 권유는 2011년부터 그 흔적이 보인다. 2011년 이후 각 교육청에서는 페리 방식의 수학여행을 적극적으로 권유하기 시작했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일까? 외부적으로는 고유가라는 조건이 있었다. 배, 비행기, 발전소 등 외부에서 석유를 공급받아야 하는 산업들의 수익성이 급격히 악화됐다. 게다가 결정적으로 저가항공의 운항이 늘어나고, KTX 노선의 확대 등으로 대형 항공사들도 유지가 어려워졌다. 배도 예외가 아니었다. 실제로 부산-제주 페리노선은 운항을 중지했다.


그런데 정치적으로 대운하는 물론 '아라뱃길'로 불린 경인운하가 진행되고 있었다. 정치권 일부에서는 여러 가지 이유로 크루즈산업 육성이 논의되고 있었고, 대선공약에도 이러한 내용들이 끼어들기 시작했다. 


문제는 1만 톤급 이하의 페리는 유가 상승과 교통수단으로서의 경쟁력 약화 등으로 설 자리가 별로 없어졌다는 데 있다. 승용차 보급의 증가와 함께 페리에 대한 수요가 커지고 있다는 설명도 말이 안된다. 제주를 비롯하여 전국에서 렌터카 시장이 급속도로 커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내 승용차를 실어 갈 수 있다는 단 하나의 장점만으로 그 산업의 수익성을 유지할 수는 없는 상황이었다. 


여기서 다시 한 번 물어보자, 누가 노를 저을 것인가?


여러 가지 이유로 페리에 사람을 태우기는 해야 할 텐데, 도대체 누가 탈 것인가? 정부, 아니 정확히 집권 세력이 원하는 것은 국내 선박산업이 융성해 4대강까지 뱃길이 이어지는 것이므로, 누군가는 배를 타야 하는 것이다. 시간과 비용에 상관없이, 누가 그 배를 탈 것인가?


때문에 고등학생들의 수학여행이 교육 당국의 권유에 의해서 '카페리'에 집중됐다. 그리고 그 수학여행으로 인해 끊겼던 노선이 다시 운행되기 시작했다. 이런 흐름속에서 20년이라는 배의 기술수명이 30년으로 연장되고, 세월호처럼 일본에서는 경제적 수명을 마쳐 퇴역될 배가 한국에 중고로 재도입되는 일이 가능할 수 있었다. 만약 대규모 수학여행에 의한 페리 수요가 뒷받침되지 않았다면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그런 수요가 없었다면 누군가 굳이 이명박정부를 움직여서 페리의 기술 수명을 연장하는 귀찮은 일을 할 필요가 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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