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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성, 이정윤] 작은 책방 집수리(2024)

독서일기/도시토목건축

by 태즈매니언 2025. 1. 18. 2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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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사대문 안 서촌에서 무려 12년 동안이나 작은 북카페 '길담서원'을 유지해오신 책방지기 '여름나무'와 '베짱이뽀' 두 분께서 코로나19 기간 중에 공주시 원도심으로 이사 와서 1년을 지내면서 둘러보시다가 반죽동에 있는 48년된 작은 집을 사고, 둘이서 1년 동안 그 집을 해체해서 취향대로 꾸며 다시 책방 문을 여신 집수리의 기록입니다. '공주+책+건축수선기'라 제 취향의 삼위일체인데 가을에 책으로 나왔더라구요.
저도 남자치고 체력이 약하고, 눈썰미와 일머리가 없기로는, 30년 건축일하신 공주 김선생님께서 '보기 드물다'고 하실 정도로 떨어지는 사람입니다. 그런데도, 두 분께서 옛집을 해체하고 이런저런 시공을 하시는 과정을 읽으면서, 진짜 고생 많이 하셨겠다 싶어, 과연 제대로 마무리하셨을지 조마조마했습니다.
저야 이동식주택 제작 및 배송을 맡겼으니 나머지 잔일에서 일머리가 없어도 돈과 시간을 낭비했을 뿐 크게 망할 일은 없었는데, 제가 옛집을 직접 수선했더라면 아마 이런 후기를 남겼을 것 같다 싶더라구요.
같이 책방을 12년간 운영해온 두 분이셨기에 마무리를 하셨지, 아마 저 혼자서였다면 중간에 포기하고 대출을 풀로 받아서라도 시공사에 맡겼을 겁니다.
엊그제 제가 올린 망한 금융투자 경험글처럼 다른 사람들의 실패담은 성공담보다 큰 도움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한겨울에는 역시 갈수록 극한기후가 되어가는 한국의 기후에서 아파트가 역시 짱이다 싶어 전원주택 생각은 접은 상태인데요. 그래도 50대 초중반쯤 되서 좀 더 시간과 금전적 여유가 생기면, 공주시의 원도심에 아내의 작업실을 마련해주고 싶더라구요. 나중에 학원에서 목공이나 조적의 기초를 배우고 집수리 공부를 좀 하면서, 매물로 나온 작은 구옥을 사고, 쉬엄쉬엄 취미삼아서 고쳐서(이왕이면 한옥같은 중목구조면 좋겠죠.) 아내에게 선물하면 좋을 것 같아서요. 공주 원도심의 '마주안갤러리'를 보고서 매료되고 나서 든 생각입니다.
그런데 저보다 살짝 나이가 많으실 것 같은 이 두 분의 집수리기를 보니, 이게 얼마나 쉽지 않은 도전인지 실감하게 되었습니다. 심지어 이 분들은 둘이서 함께 하셨는데 말이죠.
그래서 나중에 정 이런 집수리를 직접 해보고 싶다면, 전문가들의 도움도 당연히 받고, 두 작가님들보다 먼저 구축을 고쳐서 공주에 독립서점 공간을 만드신 <고마다락>의 민광동 대표님(이 책에도 등장하십니다 ㅎㅎ)같은 체력과 기술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저는 이 수선기를 읽으면서 '건축설계'의 중요성을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건축사의 설계도면은 결국 충분히 훈련되고 경험을 쌓은 전문가가 그 건축물을 신축, 개축/대수선을 어떤 목적으로 어떻게 할지에 대한 모든 계획과 절차, 주의할 점 등을 담은 한 권의 책인데, 아무리 의욕이 넘치고 혼자서 준비를 많이 했어도 부쉬크래프트 수준의 집이라면 모를까, 초심자가 혼자서 한 권의 책 분량인 설계도면에 담겨야할 내용들을 미리 다 준비하는 건 어려우니까요.
책방공간까지 직접 만드신 책방마님들께서는 대수선을 하는 기간 동안에 읽으신 책들 기록도 남겨주셨는데, 제가 읽어본 책은 두 권 뿐이네요. 그만큼 두 분과 제 가치관의 거리도 멀어보이긴 했습니다.
공주에 있는 길담서원, 조만간 한 번 가보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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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쪽
체코 노동자 상해보험회사에서 근무하며 습작하던 소설가 프란츠 카프카는 공사 현장에서 죽어가는 노동자들의 다양한 사례를 보면서 세계 최초로 산업용 안전모를 발명했다. 타인의 죽음이 '마음에 걸려' 만든 결과물이었다. 이 안전모를 발명하여 당시 노동자들의 사망률이 크게 감소했고 그 공로를 인정받아 1912년 미국 안전협회로부터 상을 받기도 했다.
114쪽
우리가 각도 절단기라든지 그라인더, 샌딩기, 타카 등의 공구를 사용하기 시작하자 '구름배' 님이 가까운 응급실이 어디에 있는지 알아두고 늘 휴대폰을 가까이 두고 일하라고 충고했다. 각도 절단기나 그라인더에 손가락을 잘리기도 하고 다리에 타카가 박히는 사고가 난다고 했다.
122쪽
수없이 많은 종류의 도구 중에서 우리 상황에 꼭 맞고 금액도 적절한 도구를 선택하는 일이 무척 어려웠다. 도구를 다루는 방법을 배우고 익혀서 적응하기까지는 더 많은 시간이 들었다. 이 시대의 기술은 손기술이 아니라 도구를 얼마나 유연하게 다를 수 있느냐에 달려있었다.
140쪽
목수인 '먹쇠'님은 화장실에는 건축의 거의 모든 요소가 들어있기 때문에 '화장실을 설계하고 시공할 줄 알면 집을 지을 수 있다'고 했다. 화장실은 작지만 집을 지을 때 필수적인 기술들이 집약적으로 들어가서 그만큼 어렵다는 말이었다.
192쪽
앞 공정을 깔끔하게 하지 않고 넘어가면 다음 공정에서 2배 이상의 시간과 힘이 들어갔다. 작은 거 하나에도 수십 번의 손길과 시간을 요구했다. 일은 점점 디테일을 요구하는데 몸은 지쳤고 정신은 물렁해졌다. 끌은 이가 나갔고 톱은 무뎌졌다. 하루에도 몇 번을 철물점과 건재상을 오가다 지쳐서 하루를 보내야 했다. 마지막 작업이야말로 눈에 보이는 부분이고 디테일한 작업들이라 공을 들여야 했지만 이미 힘을 다 써버려서 마무리하는 데 쓸 여력이 없었다.
249쪽
왜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들 안타까워 했는지, 철거나 기초공사는 전문가에게 맡기고 인테리어만 하라고 했는지, 철거하는 사람을 섭외해뒀으니 말만 하라고 했는지 충분히 이해가 갔다. 이제는 체력이 받쳐주지 않아서 다시 하기 쉽지 않겠지만, 그래도 한 번은 해볼 만한 일이었다. 우리가 몸으로 산다는 게 어떤 것인지 겪어본 시간이고 그만큼 삶의 폭이 넓어졌으며 어른들이 말리는 데는 이유가 있다는 자명한 사실을 확인한 셈이니까. 꼭 스스로 경험해야 그것이 얼마나 위험하고 힘든 일이었는지를 아는 사람이 있는데 그게 우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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