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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하하하프렌즈] 우리는 언제나 과정 속에 있다(2023)

독서일기/도시토목건축

by 태즈매니언 2024. 9. 14. 0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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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청 똑똑하고 지혜로운데다가 행동력도 좋아서 옆에서 말과 행동을 보면서 많이 배우게 되는 친구가 있습니다.

건축과 도시공간에 대해서도 관심이 많은 친구인데, 제가 농막생활 도전을 준비하면서 건축과 공간디자인에 대한 책들을 좀 읽었다고 아는 체를 좀 했죠. 평소에 배우기만 했으니 빚을 갚고 싶은 맘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친구가 40대 중반의 나이가 건축주로는 어려보일 정도인 크기의 건축 프로젝트를 하면서 엄청 고민하고, 수많은 건물들을 직접 찾아가보더니 저한테 이 책을 선물해줬네요.

2013년에 설립한 푸하하하프렌즈(이하 'FHHH')라는 경쾌한 이름의 건축사무소 구성원들이 지난 10년을 돌아보며 각자 쓴 다양한 스타일의 글을 모은 책인데, 대부분 자기 개성들을 솔직하게 듬뿍 드러내서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초기 프로젝트 중에 인테리어건이 많은 걸 보니 젊은 건축사들이 시장에서 자리잡기가 정말 쉽지 않다는 걸 체감할 수도 있었고요.

그간 많이 읽었던, 건축주들에게 한 권씩 들려주며 자기를 소개하기에 적절한 건축사들의 에세이와는 좀 다르게 날 것 그대로의 생동감과 아집으로 보일 수 있는 뾰족한 소신이 담긴 글들이 대부분이었거든요.

한승재 건축사님의 글에 가장 공감을 많이 했고, 유려한 문장들에 매료되었지만, 이 분하고 같이 일을 하는 건 개피곤할 것 같아서 극구사양하고 싶습니다. 제가 일을 시키는 입장이라면 최고겠지만요. 제가 동료 혹은 부사수로 선택하고 싶은 사람은 온딘성(본명 : 온진성)이었습니다. 그가 쓴 <S빌딩 사건일지>는 건축사 업무의 간난신고를 느끼게 해준 진지한 글로 사람을 빵터트린 꽁트였습니다.

FHHH의 홈페이지도 독특한데 매장이나 건물을 직접 보고 들어가보기도 해야 제대로 알 수 있겠지만, 저는 흔해빠진 못난 다세대주택 건물을 리모델링한 <스페이스 깨>(2017), <콜렉티보>(2017), 이를 상업용 건물에서 시도한 <엑스포럼>(2019) 같은 프로젝트가 가장 인상깊었습니다. FHHH가 경험을 쌓고 더 큰 사이즈의 프로젝트를 하게 되면서 내놓은 <바온하우스>(2022)나 <빈 모서리 집>(2023) 같은 건물이 눈을 훨씬 호강시켜주긴 하지만요.

엔지니어 중에서 가장 가난하고, 예술가 중에서는 가장 부자라는 건축가라는 직업은 역시 매력적입니다. ㅎㅎ

 

https://fhhhfriend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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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9쪽 (전중섭)

디자이너 혹은 건축가들은 이기적이게도 기술자들의 개별적인 성취가 드러나지 않도록 계획하는 것처럼 보인다. 건설기술자는 자기가 맡은 일을 훌륭하게는 하지만 그것은 전체에 투영되지 못한다. 특히나 미니멀한 척은 건축가가 들인 설계노동만을 돋보이게 한다. 그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호화로움을 느낀다는 것은 궁극적으로 긍정적인 감정이기에, 그 많은 노동력이 모두 가려지는 계획은 손해임이 분명하다. 그렇게 계획된 장소들을 가보면 지리멸렬한 수많은 시간이 느껴진다.

259, 263쪽 (온딘성)

내가 그리는 도면 속에서만큼은 의뢰인도, 시공사도, 심지어 같이 일하는 소장보다도 저에게 우선 결정권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반드시 이런 생각으로 도면을 그려야만 한다고까지 믿습니다.
(중략)
한 가지 확실한 점은 자신이 주인이 되어서, 자기가 끌리는 대로 그린 도면은 반드시 티가 난다는 것입니다. 그 도면에는 무언가 그린 사람의 즐거움같은 것이 묻어 있습니다.

371쪽 (한승재)

싫어하는 것에 대해 말하는 진짜 목적은 자신과 대상의 다름을 알리는 것에 있다. 내가 싫어하는 것은 내가 달아나고자 했던 곳에 여전히 머무르고 있는 것들이다.
(중략)
나는 그들과 다름을 알리기 위해서 누가 물어보지 않았는데도 싫어하는 것에 관한 이야기를 꺼낸다. 그들과 내가 다르지 않다면, 그래도 내가 무엇은 인지하고 있는지, 그들과는 다른 사소한 부분은 무엇인지, 확대해 보여 주려고 하는 것이다. 나와 조금도 닮지 않은 누군가를 미워하는 건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다.
싫어하는 것에 대해 말하는 것이 잘못된 행동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진짜 문제는 싫어하는 대상을 나로부터 분리하는 태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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