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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아] 끝내주는 인생(2023)

독서일기/에세이(한국)

by 태즈매니언 2025. 2. 7. 0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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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만에 읽게된 이슬아 작가님의 산문집입니다. 작가님의 초기의 작품들이 제게 참 강렬하고 신선했었습니다. 40대 아재가 20대 여성들이 어떤 생각과 경험들을 하는지 간접 체험해보는 기회기도 했고요. 그러다가 글을 쓰는 작가라기보단 종합 엔터테이너 느낌이 들어서 관심이 줄었었죠.
PPL 의뢰를 받아 쓴 것 같은 애매한 글도 있었고, 이 산문집에 실린 글들이 고르지 않다는 느낌이었지만, <젊은이와 어린이>, <요가원에서>, <판권면의 얼굴들>은 예전에 제가 좋아했던 느낌의 글들이더군요.
이슬아 작가님은 이미 인기작가이니 출판권 설정계약을 할 때 인세를 높게 받으시겠지만 그래도 다른 매체에 비할 바가 아닐 겁니다. 출판사들이 책을 제작하는 비용이나 도서시장의 규모가 감당할 수 없으니까요. 출판은 많은 작업들이 전문적으로 분업화되어 있고 아웃소싱이 가능해서 1인 출판사도 가능하다고 합니다. 그래서 저자도 스스로 출판사를 설립해서 자기 출판사에서 책을 내셨던 거겠죠.
어릴 적부터 단련된 아르바이트 생활 등 경제활동으로 인해 금전 감각이 좋은 저자가 자기 출판사가 아닌 다른 출판사에서 연달아 책을 내고 있는 건 결국 자신과 잘 맞고 인정하는 편집자의 조력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주네요.
울림의 편차가 큰 글들 중에 어떤 글에 편집자의 의견이 더 많이 들어갔을지는 모르지만, 편집자와 계속 이야기하며 작가님도 조금씩 바뀌어갔을테니 구분하는 건 의미가 없어 보입니다.
이런 편집자들의 역할마저도 다양한 월이용료의 작가 스타일 파워팩 옵션으로 판매하는 AI 편집 서비스들이 대체하는 세상이 올지. 그렇게 될 때 책의 편집면에는 어떤 이름이 기재될지 궁금합니다.
저도 ‘끝내주는 인생’을 살기 위한 마음가짐으로 충남대병원에서 연명치료(거부) 사전의향서를 전자문서로 작성하고 왔습니다. 혹시 제가 사고나 나거나 급성질환으로 스스로 판단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닐 때, 가족들에게 부담을 지우고 싶지 않아서요.
(나중에 언제든지 마음 바꾸셔도 되니 추천합니다. 지정된 의료기관이나 건보공단 큰지사에 방문하시면 대기만 없다면 10분 내외로 끝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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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쪽

내게 반해버린 타인의 눈으로 나를 바라보는 일. 남의 힘을 빌려서 겨우 자신을 사랑하는 일. 그런 구원이 좋은 연애에서는 일어난다.

92쪽

생일 알림 기능을 끄지 않으면 카톡은 하루 종일 내 프로필 사진 옆에 케이크 이미지를 띄워놓을 테고, 애매하게 친한 친구들과 친척들이 기프티콘을 보낼 테고, 그 기프티콘 내역을 보며 나는 우리가 새삼 얼마나 서로를 모르고 있는지 실감할 테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친절함에 감사를 표하기 위해 열심히 답장할 것이다. 답장을 쓰면서 우리가 서로를 얼마나 오해하고 있는지도 실감할 것이다.

161쪽

몸에 힘을 풀고 있어도 뱃가죽이 딴딴한 느낌. 그건 매일 운동을 해놓은 자의 감각이다. 지난 십 년간 이 느낌과 함께 살아왔다.

197쪽

책의 맨 뒷장을 판권면이라고 부른다. 편집자들의 이름은 그곳에 적혀 있다. 작은 글씨로 말이다. 나는 그 글씨의 크기가 언제나 너무 작다고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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