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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네자와 호노부] I의 비극(2019)

독서일기/일본소설

by 태즈매니언 2025. 4. 9. 2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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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 박사님 덕분에 알게된 일본의 미스테리 소설가 요네자와 호노부의 작품인데, 먼저 읽었던 <흑뢰성>보다 더 낫네요. 제 올해의 소설 후보로 올려봅니다.
서장이 'I의 비극'이고 1~6장 이후 종장 'I의 희극'이 나오는데, 반전의 빌드업도 훌륭했고 마무리가 좋았습니다.
고지식하고 성실한 지자체 공무원이 주인공으로 나오는 소설이 참 재미있는 건 제가 공공기관 직원이라 그럴까요? ㅎㅎ
일본소설을 보면서 한국에 닥칠 미래의 모습을 어깨너머로 미리 본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는데, 이 작품도 딱 그랬습니다.
인구감소를 겪는 지자체에서 폐촌이 된 산골마을 빈집들을 시가 임대료를 보조해서 도시민 귀촌희망자에게 무료에 가깝게 제공하는 프로젝트를 슬슬 한국도 하고 있죠.
그런데 과연 이렇게 귀촌인들을 유치해서 외딴 마을을 유지하는 것이 그 농어촌 지자체의 존속에 도움이 되는 것인지에 대해 말미에서 묵직한 메시지를 던지면서 독자들에게 생각하게 만드네요.
행안부에서는 지방재정365를 통해서 지자체 주민 1인당 세출예산액 비교표 통계를 제공합니다. 2024년에 경북 울릉군이 2,834만 원이고, 울릉군이나 옹진군 같은 낙도 사례를 빼더라도, 영양군도 2,197만 원이나 됩니다.
자치행정의 모범사례로 칭찬이 자자한 정원오 구청장이 있는 성동구의 숫자가 1인당 253만 원에 불과한 것과 비교해보면 차이가 심하죠.

 

https://www.lofin365.go.kr/portal/LF5110000.do?pdtaId=E8CLIL7H1FHQ3F38ON5W225441&rdIncrYn=Y&frstParamYn=Y

즉, 지자체장과 각 지방공무원들의 능력에 따른 차이를 감안하더라도 땅이 넓고 인구가 부족한 시골지자체와 각종 인프라가 잘 구축된 대도시 지자체가 주민들에게 법에 따른 행정서비스를 제공하는데 필요한 비용과 역량은 차이가 클 수밖에 없습니다.
문제는 그나마 우리나라는 과거 이촌향도 세대의 부채감정으로 인해 지방교부금이 후하게 교부되어왔고 지방소멸대응기금까지 편성되서 부족한 지자체의 재정자립도를 지원해왔지만, 앞으로는 인프라 유지보수 비용은 급증할 것으로 예상되고 농어촌 지자체의 인구들은 더 드문드문 거주하게 될 것으로 보입니다.
이러니 행정서비스가 지속가능한 범위로 영역을 축소하자는 '컴팩트 시티' 시도가 나오고 있고요. 결국 우리나라도 이렇게 가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미 지자체들이 청년귀농은 환영하지만 은퇴를 앞둔 귀촌인들은 환영하지 않는 것에서도 보여지죠.
전용면적 84제곱미터 '국평' 아파트로 상징하는 한국사회의 표준압이 빚어내는 인간형에 맞지 않는 사람들이 귀촌을 선택하는 경우가 많을텐데, 이들을 끌어오려는 지자체 공무원과 지원사업들에도 불구하고, 표준압에 질려서 귀촌을 택한 사람들 중에는 참 다양한 사람이 있다보니, 이들이 시골마을에 잘 안착하게 하는 일이 쉽지 않다는 것도 에피소드들을 통해 보여줘서 좋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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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9쪽
시청에는 '공무원은 상행 2층, 하행 3층까지는 계단을 사용해야 한다'라는 불문율이 있다. 이 불문율을 어긴 자는 무릎을 다쳤든 목발을 짚었던 절약정신에 어긋난 사람으로 무언의 비난을 받는다. 얌전히 계단을 쓰기로 했다.
282쪽
제설은 시 행정과 관련해 최대 문제라고 할 수 있다. 쓰레기 수거도 도로 보수도 물론 시민 생활을 영위하는 데 필수적이다. 그러나 제설은 예산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중지했다가는 사람이 죽는다. 일도 할 수 없고 식료품을 사올 수 없기 때문이다. 어느 쪽이 더 심각한지 비교할 만한 것까지는 아니지만 지금까지의 강설량을 볼 때 제설작업이 멈출 경우 그 위험성은 정전이나 단수와 맞먹을 것이다. 토목과에 예산이 부족하다는 것은 안다. 예산이 윤택한 곳은 어디에도 없다. 다리도 수도관도 사용 연수를 훌쩍 넘겼고, 중앙공원 수로의 물은 말라버린 채고, 도서관은 상근 사서를 고용할 수도 없고, 소생과 사무실에는 외풍이 불어닥친다. 하지만 제설은 해야 한다.
331쪽
평소 관용차를 탈 때는 음악을 틀지 않지만 휴일 출근 때 정도는 상관없으리라는 생각에 좋아하는 록 음악을 들으며 차를 몰았다.
343쪽
"네, 여기는 좋은 곳이에요."
그렇게 말해 주는 것은 감사하지만, 이 고장 사람으로서는 어디가 그리 좋은지 잘 모르기 때문에 뭐라 대답하기 어려웠다.
409쪽
"과장님"
목소리가 한심하게 떨렸다.
"저는 이 일을 자랑스럽게 생각했습니다."
상냥한 말투가 돌아왔다.
"얼마든지 자랑하게. 자네는 난하카마 시민을 위해 일했어."
"과연 그럴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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