얇은 문고판이 아니었더라면 20~30페이지 읽다가 던져버렸을 책입니다. 막판에 반전이 있긴 하지만 미스터리 소설이라기엔 당사자들의 장황한 진술들이 개연성이 없을 정도로 길어서 완성도가 높다고 하긴 어렵습니다. 너무 옛날 이야기이기도 하고요.
하지만 1985년에 일본에서 나온 이 소설은 치매노인을 가정에서 부양하는 '자가개호'가 얼마나 미친짓인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줍니다. 아마도 소설가 본인이 자신이 부모를 돌본 경험이 있기 때문인지 디테일이 살아있더군요. 읽는 사람들까지 불편하게 만들 정도로요.
그나마 이 <돌봄살인> 속 가족들은 여건이 많이 나은 편입니다. 노부부가 아들의 단독주택 건축비용을 보태주면서 두 필지 크기의 땅에 본채와 별채를 지어 노부부는 별채에서 거주했고, 태평양 전쟁 때 전사한 두 아들의 유족연금까지 있어 노부부가 경제적인 여유도 있었으니까요. 게다가 80년대 중반의 중산층 셀러리맨 가정이라 아내는 시부모 봉양을 해야할 일로 받아들이는 주부였습니다.
그런 상황에서도 몇 년이 흐른 상황에서 가족 모두가 힘들어지면서, 노부부는 자신들이 어떻게 죽어야할지, 아들과 손자들은 암묵적으로 노인들이 죽기를 바라는 감정과 상황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다보니, 독자에게 자신의 노후와 치매에 대해 절로 생각해보게 만드는게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입니다.
지금은 한국도 치매노인들의 가족에 의한 요양보호도 데이케어센터 등으로 인해, 치매노인의 돌봄을 오롯히 가족에 맡기는 문화는 사라진터라 번역이 너무 늦게 된 것 같긴 합니다. 아마 한일 노인문학에 대한 비교문학 연구를 하시는 번역자가 아니셨다면 보기 힘들었을테고요.
한국의 박살난 인구구조를 보면 어차피 제가 노인이 되었을 때는 노인이 오래 살도록 요양보호에 돈을 많이 쓸 수 없는 사회가 되리라는 게 뻔히 보입니다. 그러니 당연히 존엄사에 대한 문화도 바뀔테고 어쩌면 후속 세대와 사회를 위해 결단을 권장하는 사회가 될겁니다.
일본 만화 <이키가미>에서 나오는 국번 사망과 유사하게 70세 이상 노인은 난수추첨으로 매년 10%씩 사망하는 약물주사를 의무적으로 맞도록 법으로 강제할지도 모르죠.
빨리 기술이 발전해서 스스로 거동을 못하는 사람들은 양액공급으로 뇌만 살아있게 해주거나, 전인류의 아카이빙시스템에 동기화된 단말기로 살다가 죽게 해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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