홋카이도 섬 동부에 위치한 가상의 작은 마을을 배경으로 소에지마 가족 삼대의 가족사에 대해 쓴, 2017년에 출간한 장편소설입니다. 드디어 국내에 출간된 마쓰이에 마사시의 소설 세 권을 모두 읽었네요.
낙농업이 성행하고, 내지로 편입된지 그리 오래되지 않았던 시기의 홋카이도의 모습에 대한 묘사가 나오지만 제 생각보다는 지리적 배경에 치중하지는 않았더군요.
가족사소설인데 삼대의 가족들과 그 배우자들 중에 단 한 명도 서로 친밀한 관계를 맺지 못하는 설정이 이 작품의 가장 독특한 점입니다.
또, 삼대째인 세대가 50년대 후반 출생인데도 불구하고 그 윗세대부터 결혼하지 않고 독신을 선택한 여성, 자녀를 갖지 않은 부부가 다수인 점이 우리나라보다 훨씬 앞선 상황인데, 이게 당시 홋카이도에서 특이하지 않게 여겨졌는지 궁금하네요.
400페이지쯤까지 읽었을 때는 스토리들이 정리되지 않은 상태에서 넘어가는 시점들때문에 중구난방으로 느껴졌습니다. 게다가 중간중간 등장하는 물리학, 천문학, 생물학의 이론들도 그다지 어울리지 않은 느낌이라 별로였고요.
그런데, 말미에 나오는 50대 후반의 독신인 손자 하지메가 치매나 인지장애를 겪고 있는 구순의 큰고모, 팔순인 부모와 그 또래인 두 작은고모들의 일상 뒤치다꺼리를 하며 살아가는 모습이 조만간 닥칠 저 혹은 제 주변의 모습이 될 것 같아서 눈에 들어오더군요.
등장인물들 중에서 가장 감정이입이 된 인물은 조산소를 열었던 할머니 ‘요네’, 그 다음은 동네 목사의 아들 ‘이치이’였습니다. 아유미가 삿포로제국대학 시절에 만난 남자로 나오는 ‘슈’(슈테판 김)은 한국독자들을 위한 저자의 서비스 설정같았습니다. 제국시절 홋카이도에서 독일여성과 결혼한 한국인 아버지를 둔 자이니치라기엔 너무 구김살이 없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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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2쪽
기숙사에 들어갈 생각은 없었다. 호기심에 한 번 견학했는데 발을 들여놓기 직전에 기숙사가 규율이 무너진 마을 같은 곳임을 알았다. 이런 곳에 몸을 내던지거나 뛰어들면 혼자 살아서는 만날 수 없는 재미있는 사건이 질릴 틈도 없이 줄줄이 일어날지도 모른다. 하지만 얼마나 주변에 신경 쓰지 않는지를 다투는 분위기에 휩쓸린다면 이번에는 그것에 매이게 되지 않을까. 자유인 듯한 부자유에서 빠져나오기는 한층 더 어려울 것 같았다.
혼자가 되는 시간을 줄일 수 있는 장소에 스스로 속하고 싶다고 생각할 만큼의 불안이 자신 안에서는 발견되지 않았다.
(중략)
혼자 생활하는 것도 아유미의 행동반경을 넓혀주었다. 지리적인 넓이라기보다는 감정적이고 심리적인 넓이였다. 몇 시에 돌아갈지, 뭘 먹을지, 누구와 함께 있을지, 매일 밤 이곳으로 돌아와야 할지, 이 모든 것을 혼자 판단했다. 그 결과를 보는 것도 혼자였다.
482쪽
제출 서류의 ‘본인과의 관계’를 쓰는 난에 몇 번이고 ‘조카’라고 써넣었다. 가까이에 자식이나 친족이 없는 치매에 걸린 고령자는 어떻게 할까 하지메는 처음으로 자신의 삼십년 후에 대한 경고를 구체적으로 받은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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