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에는 아쿠아리움이나 동물원에 가는 걸 참 좋아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정도 나이가 들어서는 가끔 동물들을 보고 싶어져서 찾아가더라도, 열악한 사육환경을 볼 때면 수용소나 교도소를 보는 것 같아 마음이 좋지 않더군요. 그나마 이런 공간이 있었기에 직접 동물들을 볼 수 있었던 감사함을 잊고 싶지도 않았기에 애매한 마음이었습니다.
그런데, 얼마 전 국내에서 최초의 동물복지 동물원이라는 평가를 받는다는 청주시립동물원(2021년에 천연기념동물 치료소로 지정)에 대해 알게 되었고, 유툽 영상을 통해서 그 기틀을 세우신 김정호 수의사님과 사육사 및 동물복지사분들을 알게 되었습니다.
찾아보니 최근에 합류하신 변재원 수의사님께서 올해 내신 책이 있길래 빌려왔지요. 수의대를 졸업하고 대기업 계열사의 아쿠아리움에서 수생동물 수의사 겸 사육사로 일하시다가 일반 동물병원을 거쳐 청주 시립동물원으로 오셨더라구요.
부족하다고 보시는 분들도 많겠지만 1991년에 제정된 동물보호법 제정법률의 조문은 12개에 불과했고, 제12조의 벌칙은 동물 학대행위에 대해 최고 20만 원의 벌금 등을 부과할 수 있다고 규정했었습니다. 현행 동물보호법은 101개조문에 동물 학대행위에 대한 벌칙도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천만 원 이하의 벌금'으로 훨씬 강화되었지요.
저는 <침팬지와의 대화>나 동물들의 지능에 대한 동물행동학자들의 책들을 보면서 인간과 동물은 어차피 같은 동물이고 지능과 생활방식의 진화경로를 다르게 택했을 뿐이라고 생각합니다.
어차피 인간들을 위한 전시 수용소라는 본질을 부정할 수 없다면, 우리네 사촌들에게 가능하면 쾌적한 삶을 제공해줬으면 싶고요. 동물원 설치와 운영이 신고제에서 허가제로 바뀌었고 사람들의 인식 수준이 계속 높아지고 있으니 이 부분은 점차 좋아지리라 생각합니다.
수의대의 교육과정에 대해 몰랐는데, 제가 앵무새와 같은 조류 사육에 대해 관심이 생겨서 좀 찾아보니 조류를 전문으로 진료하고 치료할 수 있는 동물병원과 수의사가 무척 한정되어 있어서 깜짝 놀랐거든요. 가축이나 개/고양이가 아닌 동물들의 담당하는 수의사분들은 여전히 선구자의 길을 걷는 어려움을 겪고 계실듯요.
청주시립동물원이 6~8월말일까지 정비를 위해 휴관 중이라 9월 이후에야 찾아가볼 수 있을 듯 한데, 한 번 가보고 싶네요.
---------------------------------------
43쪽
대개 대학의 수의학과 조류 관련 강의는 흔히 '가금'으로 불리는 닭이나 오리 같은 축산업 동물의 진단을 골자로 하고 그 중에서도 전염병 진단을 중심으로 커리큘럼이 짜인다.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그래서 증상이나 부검을 통해 전염병을 진단하는 방법과 기술에 대해서는 배울 수 있지만, '치료 방법'에 대해서는 깊이 배울 수 없다.
74쪽
동물 중개상과 판매상에게 동물은 그들의 상품이기에 상품 배송 중, 혹은 배송의 여파로 동물이 폐사하게 되면 판매상은 다른 상품으로 교환해 주어야 할 의무가 있다. 이 같은 계약 조항은 중개인이 교환분을 대비해 더 많은 수의 동물을 무리하게 반입하는 이유가 되고, 그렇게 케이지 내 밀도가 높아지면 이동 중 부상이나 폐사 가능성은 더 커진다. 악순환이다. 심지어 이동 중 부상이 발생하지 않으면 교환 신청분으로 넉넉하게 들여온 여분의 동물이 갈 곳을 찾지 못하는 상황이 벌어지기도 한다.
103쪽
대체로 반려동물은 몸이 아프면 활력이 크게 떨어지는 반면 아생동물은 사력을 다해 통증을 숨기며 평소처럼 행동하려는 경향이 있다. 아프다는 사실이 천적에게 발각되면 바로 표적이 되는 야생에서는 자연스러운 이치인지 모른다. 하지만 이곳은 동물원인데. 차라리 반려동물처럼 아프다고 가만히 웅크리고 있어주면 좋으련만.
148쪽
수달사에 남은 먹이가 충분치 않은 날이면 왜가리는 물새장의 두루미 근처에서 시간을 보낸다. 그때는 신기하게도 새장 안의 두루미들이 제가 먹고 남은 미꾸라지를 철망 밖의 왜가리 쪽으로 던져준다. 처음에는 철망 밖으로 떨어진 미꾸라질를 보고서도 그 상황이 믿기지 않아서 왜가리가 긴 부리를 이용해 철망 사이로 미꾸라지를 꺼내 먹거나 두루미가 먹으려고 미꾸라지를 집어 흔들다 철망 밖으로 날아간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몇 번이나 반복되는 광경을 보면서 확신하게 되었다. 철망 안팎으로 내가 모르는 그들만의 연대가 있는 것이 분명했다.
170쪽
동물원과 아쿠아리움에 상시 고용 수의사를 둘 수 있도록 수의사법을 개정한 것이 2020년의 일이고 대학의 수의학과가 4년제에서 6년제로 개편되기 전에는 수의사로 고용을 해놓고도 '수의 업무를 볼 수 있는 사육사' 정도로 취급하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181쪽
동물의 입장에서는 그저 최선을 다해 살아남은 것뿐인데, 생존을 위한 분투의 결과가 제거와 퇴치의 대상이 되는 것이라니 씁쓸할 따름이다. 동물원에 사는 야생동물을 어떻게든 살리기 위해 아등바등하는 일상을 보내는 나에게는 동물 밖의 야생동물을 매년 수천 마리씩 죽이고 있다는 소식이 특히나 가혹하게 다가온다.
189쪽
이곳에서는 누구도 무슨 동물이 더 비싼지, 새로 수급하려면 비용이 얼마나 드는지, 안락사와 매매 중 어느 쪽이 더 경제적인지 같은, 듣기조차 싫었던 말들을 아무도 하지 않는다.
204쪽
간혹 몸집이 큰 동물은 사체를 조각내야만 소각할 수 있어 동물과 매일 시간을 보냈던 사육사나 수의사가 이별의 슬픔을 뒤로하고 절단 작업을 도맡기도 한다. 그 몸과 마음의 고통을 다스리는 일까지가 마지막까지 동물 곁을 지켰던 사람의 몫인가 한다.
222쪽
동물원의 먹이 주기 체험 이벤트는 동물이 사람에게 접근해서 먹이를 받아먹도록 하는 영업 상품이다. 동물에게 사람은 천적이다. 천적에게 스스로 다가가도록 하기 위해서는 동물을 더 큰 위험에 노출시켜야 한다. 보통의 굶주림으로는 유도할 수 없는 일이다. 그 속에서 동물은 자유뿐 아니라 생리 현상까지 억압당했다. 동물원은 전시 오락이라는 이기적인 목적으로 시작된 사업이다.
[가와카미 가즈토/김소연 역] 치킨에는 진화의 역사가 있다(2019) (3) | 2025.06.15 |
---|---|
[루시 쿡/조은영 역] 오해의 동물원(2017) (0) | 2024.11.09 |
[나흥식] What am I?(2019) (0) | 2020.11.13 |
[폴 콜린보/김홍옥 역] 왜 크고 사나운 동물은 희귀한가(1978) (0) | 2020.09.28 |
[데이비드 실즈/김명남 역] 우리는 언젠가 죽는다(2008) (0) | 2020.07.29 |
댓글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