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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하] 말하다 talk 言(2015)

독서일기/에세이(한국)

by 태즈매니언 2015. 4. 18. 2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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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김영하의 강연과 대담을 모은 <말하다>. 소설가로서의 인생과 글쓰기에 대한 나름의 생각들이 인상깊어 그의 요즘 소설보다 마음에 들었다. 한달쯤 전에 읽었던 하루끼의 <잡문집>과 느낌이나 내용이 비슷한 것은 아마도 던져진 질문이 비슷했기 때문일수도.

특히 소설가와 독자와의 소통, 남과 그 경험을 공유할 수 없는데도 책을 읽는 이유, 한국문학의 세계화에 대한 시각이 신선했다.

 

...

 

43쪽

지금까지만 보면 스마트폰은 인간을 스마트하게 만들었다기보다 스마트하게 인간을 구속하게 된 것 같습니다. 스마트폰이라는 기계는 인간이라는 입력자/조작자를 필요로 합니다. 그런데 이것이 너무 일상화되면 인간과 스마트폰이 하나의 기계로 일체화됩니다. 흘러가는 정보의 노드로만, 혹은 그것의 컨트롤 패널로만 기능하는 것이지요. 정보를 받아서 확인하고 다른 데로 보낸다. 이것은 봇(bot)들도 능히 할 수 있는 일입니다. 이것을 인간에게 시키는 이유는 간단합니다. 인간만이 돈을 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102쪽

 

그러나 딱 한 가지 믿는 것은 있어요. 그것은 이야기라는 것의 영속성이에요. 인간은 영생하지 않을 것이고 세상의 끔찍함은 바뀌지 않을 테지만 저는 이야기가 영속한다는 것은 믿어요. 예를 들어서 유대인이든 탈레반이든 어떤 오래된 이야기들의 숙주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유대인들은 구약성경이라는 이야기에 따라서 평생을 살아가잖아요. 안식일을 지키고 유월절을 모시고. 그 명절이라는 것이 이야기의 물화된 형태고요. 그렇다면 유대인이라는 존재는 결국 성격이라는 이

야기의 숙주로서 살아가면서 계속해서 일종의 문화적 유전자인 이야기를 후대로 전승하고 있는 거지요.

 

155쪽

 

영화나 연극에도 인물이 있고 그들 역시 우리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기곤 합니다만, 소설의 인물들은 다른 방식으로 우리에게 각인됩니다. 소설 속 인물들에겐 많은 것이 비어있습니다. 그러므로 독자들은 어느 정도는 그 인물을 창조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자기가 창조했기 때문에 소설 속 인물의 일부는 독자 안에 존재한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162쪽

 

독자와 작가가 소설을 통해서 소통을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저는 소설을 통해서 메시지를 전달하려고 하지 않아요. 소설을 쓰는 동안에 저는 오직 제 소설과 소통을 합니다. 제가 창조한 세계에서 그 인물들과 대화하면서 사건들을 함께 겪어나갑니다. 그렇게 해서 소설이 완성되었다고 생각하면, 저는 나오는 거죠. 이제 그 공간에는 제가 아니라 독자들이 들어오게 됩니다. 그때부터는 소설과 독자 간의 소통이 시작됩니다. 거기 제 자리는 없습니다.

 

165쪽

 

작가에게 전작보다 못한 작품이라는 건 없어요. 이해 못할지 모르겠지만 자기 인생의 스토리이기 때문이에요. 제가 쓴 소설들은 제 인생의 각 단계별로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어요. 그런데 그게 출판이 되어 시장으로 나가면 그 연속성을 잃고 그냥 떨어져 나와서 상품으로 존재하게 돼요. 다음 상품일 뿐이거든요. 전작보다 좋네 나쁘네, 이런 점이 좋아졌네 나빠졌네, 그런 이야기들은, 작가가 작품을 그냥 갖고 있을 때에는 안 들어도 되는 거죠. 저는 작품을 발표하지 않고 금고에 넣어뒀다는 샐린저를 이해해요.

 

180쪽

 

한 권의 책과 그것을 읽은 경험은 독자 개인에게만 고유한 어떤 경험으로 남습니다. 그렇다면 누구와도 나눌 수 없는 독서를 왜 할까요? 그것은, 누구와도 나눌 수 없다는 바로 그 점 때문입니다. 우리가 사는 시대는 거의 모든 것이 공개돼 있습니다. 우리의 일상, 하루하루는 시작부터 끝까지 공유되고 공개됩니다. 웹과 인터넷, 거리의 CCTV, 우리가 소비한 흔적 하나하나가 다 축적되어 빅데이터로 남습니다. 직장은 우리의 영혼까지 요구합니다. 모든 것이 '털리는' 시대. 그러나 책으로 얻은 것들은 누구도 가져갈 수 없습니다. 다시 말해 독서는 다른 사람과 뭔가 공유하기 위한 게 아니라 오히려 다른 사람들과 결코 공유할 수 없는 자기만의 세계, 내면을 구축하기 위한 것입니다.

 

232쪽

 

한국이 1996년 베른협약에 가입한 이래, 중복 번역이 사라지고 번역 작품도 저작권보호를 제대로 받게 되자 출판사들은 번역에 본격적으로 투자를 하기 시작하고, 그 결과 번역의 질이 높아졌습니다. 이에 따라 한국의 작가들은 전면적 시장개방 상태에서 해외 작가들과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 소설시장에는 '무역장벽'이 없습니다.

 

237쪽

 

한국문학의 세계화라는 게 만약 실현된다면, 그 주인공은 아마도 한국의 정서를 잘 살린 문학이 아니라 이상한 것, 어지럽게 뒤섞인 것, 도저히 우리가 한국문학이라고 받아들일 수 없는 어떤 것일 가능성이 큽니다. 그러니 만약 우리가 정말로 한류를 지속시키기를 원한다면 더 열심히 하는 것보다 더 이상해지는 것이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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