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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시마 유키오/양윤옥 역] 가면의 고백(2009)

독서일기/일본소설

by 태즈매니언 2015. 1. 27. 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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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시마 유키오..


그의 작품을 높이 평가하는 이야기들은 자주 들어봤다. 하지만 세상에 읽을 책들이 얼마나 많은데. 군면제자 주제에 자위대 주둔지에 난입해서 할복소동을 벌인 상또라이놈의 소설을 굳이 찾아 읽어야 하나 싶었다. --; 그런 읽을 맛 떨어지는 무식한 띠지를 붙여놨던 덕분에 이제야 겨우 읽었네.


읽고 난 소감은... 훌륭하구나! 거의 같은 나이에 괴테가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썼는데, 미안한 말이지만 비교가 안된다.


작가에 대한 첫인상을 결정하는 작품이 중요한데 <가면의 고백>을 잘 고른 것 같다. 미시마가 전업작가로서 처음으로 펴낸 장편소설이니. 미시마 유키오의 <가면의 고백>은 '어디 네가 만들어낸 설정과 무대장치를 선보여봐~'란 태도로 팔짱을 낀 태도였던 나를 완전히 무장해제시켰다.


다자이 오사무와 조지 오웰의 글을 읽을 때와 비슷한 느낌을 받았는데 생각해보니 셋 다 닮은 구석이라곤 약에 쓰려고 찾아봐도 없구나.


마음을 보는 돋보기를 들고 바람에 날리는 솜털까지 관찰한 듯한 섬세하고 탐미적인 묘사력이라니. 게다가 자신의 성적 취향에 대한 솔직한 고백까지. 그러고 보니 읽어본 게이소설이라고는 단편 소품인 <브로크백 마운틴> 밖에 생각안나네. 이 작품에서 많이 배웠다.


지극한 탐미주의자이면서도 동시에 건조한 이성으로 의젓한 가면을 쓰고 살면서, 가면을 쓴 자신을 비웃는 자신을 풍자하는 인셉션을 보는 재미도 있었다.


그리고 자전적 이야기의 결말을 내는 시점과 상황이 아주 적절했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나저나 미시마 유키오의 삼십대 이후의 사진을 보니 정말 멋있게 잘생겼더만. 후우.. 역시 남자도 운동을 해서 살을 빼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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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9쪽


세상의 경치는 눈 때문에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 음침하게 보였다. 눈은 거리 풍경의 상처를 감추는 지저분한 붕대처럼 보였다. 거리의 아름다움은 상처의 아름다움일 뿐이기 때문이었다.


160쪽


꽃은 이상할 만큼 요염했다. 꽃들의 의상이라고 할 붉고 하얀 장막이며 찻집의 번잡함, 꽃구경 나온 사람들에 풍선 가게며 풍차 장사들이 어디에도 없었기 때문에, 상록수 사이에 저 피고 싶은 대로 피어난 벚꽃들을 바라보는 건 마치 꽃의 벗은 몸을 보는 느낌이었다. 자연의 무상봉사, 자연의 무익한 사치, 그것이 그해 봄처럼 요염하리만치 아름답게 보인 적은 없었다.


185쪽


그것은 진짜 사랑이었다. 나는 질투를 느꼈다. 양식 진주가 천연 진주에게 느끼는 것과 같은 견디기 힘든 질투를. 자신을 사랑해주는 여자에게 그 사랑을 이유로 질투를 느끼는 남자가 이 세상에 과연 또 있을까?


217쪽


하지만 일 년이 지나 우리는 깨달았다. 우리는 어린아이의 방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이미 어른의 방을 차지한 주인이며, 그곳에서는 어중간하게 열린 문은 당장 고치지 않으면 안 되었다. 항상 일정한 너비만 빠끔히 열려 있고 그 이상은 열리지 않는 문과도 같은 우리 사이는 어서 빨리 수리해야 하는 것이었다. 그뿐인가. 어른들은 어린아이처럼 단순한 놀이를 견디지 못한다. 우리가 지나쳐온 몇 번인가의 밀회는 겹쳐보면 네 귀가 꼭 맞는 카드 패처람 모두 같은 크기와 같은 두께를 가진, 마치 판에 박은 듯한 만남에 지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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