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권을 다 읽은 다음날 바로 읽을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오늘에서야 한 권을 더 읽었다. 도심재개발에 대한 내 지식이라고는 철거에 대한 도시빈민의 저항에 대한 심정적 동조밖에 없었는데 눈동냥을 많이 했다. 무력하지만 해야할 잡일은 엄청나게 많았던 당시 공무원이 바라본 서울 도심부 재개발 사업과 외자유치라는 이름으로 벌어진 특혜 부분이 2권의 주요 내용이었다.
매입과 환지 등의 토지수용절차와 세입자 및 주민등록말소자 등에 대한 이주대책, 상인들의 영업권 보장 등의 문제를 간단한 원칙과 말도안되게 촉박한 추진일정을 던져놓고 단숨에 밀어부친 군사정권과 그 수족이었던 서울시 공무원의 업무처리. 그에 대해 분개하는 게 예전 내 생각에 비춰보면 맞을텐데 빠르게 도시가 팽창하던 당시 그런 식으로 도심 재개발을 추진하지... 않았더라면 과연 지금처럼 4대문 안이 고층빌딩이 밀집될 수 있었을까? 세계각국의 실패 사례에서 보듯 소위 민주적 추진과정에서 구도심은 방치되고 슬럼화되지 않았을까? 과연 그렇게 했을 때 서울의 모습이 다수의 사람들이 바라던 바일까?
그리고 서울의 도심 재개발이 대규모 지구지정 형식으로 추진되어 대기업자본을 배불린 것을 비판하며 일본 형식의 소규모 주택재개발조합 위주의 사업추진을 이야기하지만 6~70년대 당시 서울 건물주들의 영세한 규모와 자금조달기법, 행정처리의 낙후성 등을 감안할 때 이들을 주축으로 한 소규모 도심재개발이 추진되었더라도 과연 성공적이었을까?
서울 강북의 요지에 롯데타운을 건설하도록 온갖 혜택을 부여한 김종필 등 군사정권의 결정에 대해서 손쉽게 특혜시비라고 재단하기 전에 당시 일본에서도 상당한 부자였던 재일교포 신격호씨의 자산 중 상당 부분을 한국에 투자하도록 각종 인센티브를 부여할 수밖에 없었던 상황도 좀 더 고려해야하지 않을까? 물론 특혜가 지나치긴 했지만 모험적인 투자에 높은 수익률이 따랐다는 사실 자체에 너무 색안경을 낄 필요는 없는 것 아닌지.
원세개(위안스카이)가 집무를 보는 건물을 총리아문이라고 불렀다. 지금의 명동 중국대사관 자리였다. 총리아문은 중국인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기 위한 수단으로 을지로 입구 네거리 서남쪽에 큰 건물을 지어 청국경찰서라고 했다.
168쪽
이 여행에서 그들은, 첫째 국민경제의 발전에 따라 도시는 재개발되어야 한다. 둘째, 도시재개발은 20층 이상 40~50층에 달하는 고층화로 추진되어야 한다. 셋째, 재개발사업은 자기들과 같은 중소상인들이 관여할 일이 결코 아니다를 체득하고 돌아왔다.
172쪽
막대한 수의 고객으로부터 긁어모은 돈을 안전하게 굴리는 방법 중 견실한 부동산에 투자하는 것마큼 현명한 방법은 없다. 그리하여 서울의 도심부 재개발은 몇몇 보험회사들이 선도하게 된다.
서울 재개발에 가장 먼저 뛰어는 보험회사는 동방생명 즉 오늘날의 삼성생명이었다. 동방생명의 경우 아무리 많은 공간을 창출해도 삼성의 계열회사가 입주해줄 터이니 결코 빈 공간이 생길 염려가 없었다. (중략) 동방생명에 의한 재개발사업의 착수 성공은 순식간에 다른 보험회사에도 파급되었다. 크고 높은 건물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바로 보험회사 자체의 경제력과 신용도를 광고하는 행위이기 때문이었다.
240쪽
당시의 신격호가 사실상 일본인과 다름없었고 일본 부인 몸에서 난 두 아들이 자라고 있었기 때문에 그의 재산이 거의가 당연히 일본에 귀속될 처지에 있었다. 당시 한국정부 요인들 입장에서는 그가 일본에서 모은 막대한 재산의 일부만이라도 모국에 투자하게 하고 모국에 부동산의 상태로 남겨두게 하려는 속셈이었다.
258쪽
결국 건설부는 새 도시계획법과 새 건축법을 공포한 지 2년도 채 안된 1972년 12월 30일자 법률 제2434호와 동 2435호로 건축법과 도시계호기법을 개정하여 각각의 법률에 '특정가구정비지구'라는 것을 새롭게 규정하는 한편, 재무부와의 합의 아래 같은 날짜 법률 제2436호로 <특정지구개발촉진에 관한 임시조치법>이라는 엄청난 특혜법률을 시한법으로 발표했다.
268쪽
호텔롯데의 총투자액 1억 4,500만 달러는 경부고속도로 건설비와 맞먹을 정도의 거액이었다. 그것은 제1,2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 기간인 1962~1971년의 10년 간에 이루어진, 외국인 투자총액 9,500만 달러를 50%나 상회할 정도의 거액이었던 것이다.
304쪽
결코 대통령이 "그 사업 잘봐줘라"고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것 잘되어가나" 혹은 "그 사업 필요한 게지" 정도의 암시만 있으면 관계장관 서울특별시장에서 실무국장, 과장에 이르기까지 동물적 감각에 충실한 하수인이 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숱한 하수인들에게는 겨우 점심식사 정도가 한두 번 제공되었을 것이다. (중략) 마침 내가 이 글을 쓰고 있을 때 한보철강 부도사태가 나서 전 현직 산업은행 총재, 시중은행 행장들이 줄줄이 불려가고 구속되기도 했다. 자기은행 본점 건물 하나 제대로 지키지 못하는 자리에 있으면서 몇 천억원에 달하는 거액을 자기책임 하에 융자해줄 수 있었다는 것은 결코 믿어지지 않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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