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권도 흥미진진했다. 일인당 GNP가 350달러인 나라의 수도에 22만평 규모의 어린이 대공원이 생기게 된 연유, '말죽거리 신화'를 만들어낸 제3한강교 공사가 처음에는 경부고속도로와의 연결이 아니라 제2의 한국전쟁 발발시 강북의 인구를 신속하게 피난시키기 위한 군사적인 목적으로 만들어졌다는 사실도 처음 알았다. 장관도 국회의원도 그런 두려움은 같았기 때문에 6차선 26m 너비로 만들 수 있었단다. 지금의 반듯한 강남의 시가지를 형성한 우리나라 도시설계의 모델인 <잠실지구 종합개발계획>을 통해 일산신도시의 원형을 느낄 수 있었고. 여느 도시와 달리 방사형 노선이 채 완성되기 전에 순환선으로 완공된 서울지하철 2호선의 유래도 알 수 있었다. 88 서울올림픽 개최를 비전으로 생각한 최초의 사람이 전 경호실장 출신 박종규였다는 것도 알게 되었고. 한 때 금호그룹에 다녔던 사람인지라 우리나라 고속버스회사의 간략한 역사도 유쾌하게 읽었다.
요새 토건공화국이라는 말이 아주 부정적으로 쓰이고 있고, 실제로 여기서 더 투자하는 경우에는 90년대 일본처럼 과잉투자의 소지가 높긴 하다. 게다가 SOC사업은 불투명하게 진행되는 부분도 많고. 하지만 독재체제하에서 육군의 병참로 확보와 같은 식으로 도로를 닦고 무리해서 경부고속도로를 깐 것은 병참으로 이긴다는 로마군처럼 한국의 경제발전에서 튼튼한 주춧돌이었다.
공화당 정치자금 마련을 위한 청와대의 강남 토지투기기록 XY문서에 대한 에피소드, 지금의 코엑스와 무역센터 자리가 원래 상공부단지로 계획되었다는 사실, 현대차에 무려 10조원에 강남사옥을 팔았던 한국전력이 당시에는 강북인구억제정책에 의해서 허허벌판이던 영동지구에 정책적으로 이주된 기관이라는 것, 1970년 시안게임을 유치했다가 경기를 치를 역량이 안돼서 반납했던 굴욕적인 기억(그래서 1966년에 이어 방콕에서 두 번 열렸단다.) 등등 역사와 지리, 도시계획행정, 현대사 등을 한꺼번게 접하니 지루할 틈새가 없다. 그리 좋게 보이지 않는 내 윗세대들이 살아온 모습을 이해하는데도 큰 도움을 주기도 하고. 4권은 다른 박사님이 보고 계시니 시리즈의 남은 두 권은 한동안 쉬어갈듯. 그동안 사모아놓고 못읽고 있는 책들이 많은데 그 책들도 좀 봐야지.
읽다보니 이 책은 서울에서도 활동하고 건설이나 재개발 관련 법률에 관심많은 변호사들을 위한 교양서로 아주 훌륭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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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2쪽
잠실계획의 여러 특징 중에서도 가장 특이한 것은 대담한 비환지 수법에 의한 집단체비지의 확보, 그리고 높은 감보율이었다. (중략) 대담한 비환지 수법으로 구획정리사업 시행자인 서울시는 지구 전체면적의 14.4%에 달하는 205만 8천 제곱미터의 체비지를 집단으로 확보했다.
구획정리사업에서의 체비지라는 것은 사업시행자가 사업에 투자한 비용을 토지로 거둬들이는 제도였다.
(전략) 잠실구획정리에서의 또 하나의 특징은 광대한 공공용지의 확보였다. 13만 평에 달하는 종합운동장시설, 9만 4천 평의 호수공원을 비롯하여 각 주구별 근린공원, 17.4%에 달하는 간선도로와 광장, 제방, 시설녹지, 학교, 시장, 동사무소, 파출소, 하천 등 실로 450만 제고미터에 달하는 공공용지를 확보했다. 이 공공용지율은 지구 전체 면적의 40.46%에 달하는 광역이었고 다른 구획정리지구에서의 공공용지율 약 20% 정도와 비교할 때 가히 상식의 범위를 초월하는 광역이었다.
(중략) 대담한 비환지, 광역의 공공용지와 집단체비지, 상식의 범위르러 벗어난 높은 감보율 등은 얼핏 보면 횡포였고 착취였다. 개인소유권에 대한 침해라고도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어떻게 이런 시도가 가능할 수 있었을까. 그것은 이 지구에서 처음으로 평가식 환지계산법이 적용되었기 때문이다.
320쪽
이 아파트지구 계획과 집단환지 작업과정에서 가장 높이 평가할 것은 공공용지, 특히 학교용지를 확보한 일이다. 초등학교는 1주구당 1개, 중학교는 2개 주구당 1개, 고등학교는 3개 주구당 1개씩 정도의 기준으로 적절히 배분하여 그것을 서울시 소유로 해버린 것이다. 결과적으로는 아파트업자가 토지를 매입하여 서울시에 기부채납한 것과 같은 것이었다.
327쪽
구획정리사업보다 몇 배나 강한 효력을 지닌 택지개발촉진법이라는 법률이 생긴 것은 전두환 정권 초기인 1980년 12월 31일자 법률 제3315호에서였다. 건설부장관에 의해서 한 지역이 택지개발촉진지구로 지정되면 도시계획법이니 하천법, 산림법이니 하는 이름을 단 22개의 법률의 효력이 정지되는, 실로 놀라운 위력을 지닌 법률이었다. 개인의 재산권이 크게 제한될 뿐 아니라 생산녹지, 자연녹지, 임야 등을 단시일에 아파트숲으로 바꿔버리는, 실로 공룡과 같은 괴력의 악법이었다.
346쪽
경기고등학교가 강남구 삼성동 91번지에 새로 지은 교사로 옮겨간 것은 1976년 3월부터였다. 화동의 교사와 교정은 새롭게 단장되어 1976년 7월 24일에 공포된 서울특별시 조례 제1058호에 의해 설립된 정독도서관으로 개관된 것은 1977년 1월 4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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