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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기주] 장기보수시대-미처 몰랐던 징후들(2015)

독서일기/한국경제

by 태즈매니언 2015. 7. 16. 2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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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찮은 칼럼을 쓰는 신기주 기자가 <에스콰이어>에 2년 동안 연재했던 기사들을 모은 책이다. 그런 탓에 통일성은 좀 떨어지지만 이번 정권 출범 후 발생한 27개의 사건들을 통해서 시대의 징후를 분석한다. 저자는 '시장의 구멍들', '퇴행하는 사회', '기울어진 미디어', '속물스러운 정치'라는 네 가지 국면을 통해서 한국사회가 이미 구조적인 보수화의 경로에 접어들었다고 진단한다.

 

짧은 칼럼의 틀에서 많은 걸 설명하려다보니 논리의 비약도 있고, 견강부회 격으로 터무니없어 보이는 설명도 있긴 하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호기심이 많고 통찰력이 있는 글쟁이라 눈이 썩어버릴 것 같은 헛소리는 없어서 마음에 들었다. 올해 2월에 찍어낸 책이라 시사성도 있고. 커피 한잔 값으로 지난 2년 동안의 일들을 간단히 돌이켜 보는 기회를 얻은 정도?

 

아래의 꼭지들이 특히 괜찮았다. 땡땡이 다음은 내가 붙인 설명. 이 저자의 <사라진 실패>도 한번 보고 싶은데 중고매물로 안나오네.

 

- 인간 부품이 필요없어진 시대 : 기업의 이끌어갈 10%의 정예를 골라내기 위해 90%를 도태시키는 혹독한 경쟁을 시키는 대기업
- 지식기반 하청경제 : 제조업과 건설기반의 하청경제의 논리로 지식기반산업에서 이뤄지는 하청방식으로 인한 폐해
- 서울대 해체 국면 : 공동체의 이익을 추구하는 똑똑이인 엘리트가 아니라 사적 이익을 추구하는 똑똑이만 만드는 서울대
- 한국인으로 사는 걸 원하지 않는 한국민만 사는 나라 : 이중국적의 딜레마
- MBC는 어떻게 무너졌나?
- 안철수 현상을 감당하지 못한 안철수
- 오바마가 아시아에 눈을 돌리는 이유
- 보상이 없기 때문에 의지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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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쪽

 

오디션 프로그램은 더 이상 사다리를 내려줄 수 없게된 한국 경제구조가 찾아 헤맨 거짓 희망이었다.
(중략)
어쩌면 그 빈자리는 오락이 아니라 뉴스가 채우게 될지도 모른다. 언제까지 대중이 가짜 사다리에 속으리란 보장은 없다. 올라갈 수 없다면 끌어내리면 된다. 오디션 프로그램의 종주국인 영국과 미국 역시 아직은 새로운 판타지를 개발하지 못했다. 허전해진 시청자의 마음을 대신 달래주고 있는 건 온갖 파파라치 사진과 연예계와 권력자들의 가십이다. 사다리의 맨 꼭대기에 있는 사람들이 추락할 때 대중들은 상승감을 느낀다.

 

118쪽

 

한국은 유럽처럼 국적에서 자유로울 수도, 미국처럼 국적을 당당하게 세일즈할 수도 없다. 한국은 건국 이래로 전쟁 중이기 때문이다.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병영국가화됐다. 이제껏 국가 동원 체제로 경제 전쟁을 치러왔다. (중략) 당연히 한국 국적은 혜택과 자격의 권리증서라기보단 의무와 책임의 채무증서에 가깝다. 브란덴부르크 프로이센처럼 한국도 국민을 전쟁 수행에 필요한 인적자원으로 보기 때문이다. (중략) 문제는 앞으로의 국가 발전은 자국의 인적 자원을 대규모로 동원하는 것만으론 불가능하다는 데 있다.

 

120쪽

 

한국은 내파국가다. 더 이상 근대국가 모델을 국민에게 강요할 수 없는데도 그걸 통해 여전히 국민 동원을 해야 하는 나라의 한계다. 이중국적에 대해서도 이중적일 수밖에 없다.

국적은 신성하지 않다. 국가가 한낱 기계일 뿐이기 때문이다. 민족국가 개념은 한국이 독립을 쟁취하기 위한 당대의 논리였지 현대의 진리가 아니다. 우리는 민족 중흥의 역사적 사명 따위를 띠고 이 땅에 태어난 게 아니란 말이다. 애국심보다 중요한 건 한국이라는 사회 공동체에 대한 제대로 된 이해다. 한국은 한반도에 존재했던 여러 국가 가운데 하나일 뿐이다. 국적은 강요된 의무가 아니라 자발적 선택이어야 한다. 한국인이 되고 싶어야지 한국인인게 형벌이어선 안 된단 얘기다.

 

228쪽

 

미국이 벌이는 전쟁은 군수 산업 입장에서 보면 수출이 아니라 내수다. 미군이 미국 무기를 소비하기 때문이다. 일단 전쟁이 벌어지면 적국인 이라크에 무기를 팔 수는 없다. 재래식 무기는 소모품이지 큰 돈도 안된다. 고부가가치 산업이 아니란 얘기다. 미국 군수 산업이 무기 수출로 돈을 벌려면 미국이 벌이는 전쟁이 아니라 대리전이어야 한다. 전쟁이 일어나기보단 전쟁 위기 상태여야 한다. 위기와 긴장이 고조되면서 각국이 더 많은 국방 예산을 미국 무기 구매에 써야 한

다. 물론 그 나라가 값비싼 미국 무기를 구매할 만큼 충분한 경제력을 갖춰야 한다.

 

239쪽

 

근대국가에서 병역은 시민권을 얻는 통과의례였다. 국가가 국민에게 합당한 보상을 해줬다는 얘기다. 이스라엘에선 군 입대를 거부당한 사람들이 국가를 상대로 소송을 벌인다. 신성한 국방의 의무를 수행하고 싶어서가 아니다. 군대에 가는 게 국민 개개인한테 유리하기 때문이다. 한국에선 보상이 없기 때문에 의지도 없다. 징병제와 예비군 제도 때문에 20대를 군대 문화에 젖어서 보내지만 아무도 군 생활을 적극적으로 하지 않는다. 국가의 방기와 국민의 무책임이 군대를 거대한 자원 낭비의 진원지로 만드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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