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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아/신명주 역] 박정희의 양날의 선택(2005)

독서일기/한국경제

by 태즈매니언 2017. 11. 28. 0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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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석태 박사님의 서평을 통해 알게된 책입니다. 일조각이 아주 훌륭한 출판사네요. 많이 팔릴 가능성이 거의 없는 이런 책도 출판해주고.


이 책은 한국의 우파에서는 ‘무리가 있었지만 당시의 국제정세상 구국의 결단’으로, 좌파에서는 ‘독재자의 권력욕 폭주’로 바라봤던 박정희의 '10월 유신'이 중화학공업화 정책('공업 구조 개편론')와 한 몸으로 선택된 정책이었다는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인간 박정희의 젊은 시절부터 집권하기까지의 정세와 군부 내 정군움직임과, 장교집단 내부의 출신 및 기수별 역학관계, 재벌들을 경주마처럼 부리며 수출드라이브를 걸었던 행정부 내 정책시행 방식까지 세세한 사실관계까지 파헤치고 있고요.


한국에 있는 학자라면 이렇게 박정희 시대를 평가하기도 어렵고, 평가하더라도 지지자와 반대자들이 퍼붓는 말의 진창때문에 책 자체로 받아들어지기 어려웠겠죠. 하지만 이 책은 1974년 유신 직후의 박정희 시대에서는 도저히 살 수 없어 다시는 돌아보지 않겠다는 각오로 호주로 훌쩍 떠나서 호주 국립대 교수로 자리잡은 저자 김형하 교수가 썼기 때문에 그런 굴레에서 자유롭습니다.


저 개인적으로는 1997년 겨울 수학능력시험을 치르고 대입 논술을 준비할 때 읽었던 이런 저런 책들 중에서 김정렴 전 비서실장의 <아, 박정희>을 인상깊게 읽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IMF 금융위기가 오면서 대중들 사이에 박정희를 그리워하는 분위기를 타고 나온 책이었죠. 당시에도 테크노크라트로서 박정희 전 대통령이 폈던 경제정책의 타당성을 역설했는데, 설득력 있었죠. 그래서 미국유학파로 KDI 출신으로 대통령경제수석, 재무부장관이었던 사공일씨가 펴낸 책을 읽고 1980년대 한국의 경제발전 전략에 대해 정리해봤던 기억이 납니다.


조 스터드웰의 <아시아의 힘>같은 책에서 당시 한국의 경제발전전략을 높이 평가한 내용들을 읽기는 했지만 <서울 도시계획이야기>처럼 당시 실제 정책을 결정했던 이들의 구술자료를 충실히 보강한 디테일한 이야기를 읽는 재미가 쏠쏠합니다. 제가 박정희 시대에 대해 참 아는 게 없었다는 사실도 깨닫게 되었고요.


읽으면서 박정희 전 대통령의 판단력은 물론 1960년대부터 19997년 외환위기 전까지 우리나라의 경제정책을 이끌었던 경제기획원과 상공부 출신의 테크노크라트 관료들의 역할에 대해 감탄하고 또 고마워 할 수 밖에 없었던 부분들이 참 많았습니다. 카터와 박정희가 적절한 수위를 넘어선 갈등을 빚지만 않았다면 신군부의 등장없이 평화로운 후계이양이 있었을 가능성도 꽤 됐다니. 물론 10.26.으로 인해서 적절한 시기에 국가의 과도한 개입의 한계에서 탈피하여 자유주의적인 경제정책으로 전환할 수 있었던 것은 사실이지만요.


일본 메이지시대의 현실을 냉철하게 파악하고 자신들이 가진 자원을 최대한 활용하는 능력이 출충했던 유능했던 관료들과 쇼와시대의 교조적인 군부와 관료들이 대비되죠. 마찬가지로 학문적인 지식과 정치적 고려없이 엔지니어링의 관점에서 프로젝트 관리 경험을 통해 단련된 테크노크라트, 철저한 실적주의와 믿고맡기는 용인술의 박정희 시대와 1997년 이후의 경제관료들과 정치적 리더쉽을 비교해보면 후자도 자신들에게 닥친 위기들을 잘 헤쳐나오긴 했지만 전자처럼 후한 평가를 주기는 어렵네요.


박정희 전 대통령의 시대에 젊은 시절을 보냈던 이들이 당시의 야당세력들과 현 정권에 대해서 가장 불신하는 부분이 '엔지니어링 어프로치'와 '프로젝트 관리실력'같은 부분이 아닌가 하고 느끼던 상황이라 딱 그 부분을 짚고 있는 이 책이 더 반가웠습니다.


비록 미국이 용납할 수 없었고 당시 동북아 정세상 받아들여지기 어려웠던 핵개발 시도는 패착이긴 했지만 미국을 상대로 한 박정희 전 대통령의 외교정책을 보면서 미국 내 지지세력과 투자기업들까지 활용하는 정교함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현정부의 외교정책을 보면 의구심이 드는 면이 동맹인 미국에 우호세력을 구축하려는 의지 자체가 있나? 하는 부분이거든요.)


경제정책 측면에서도 1957~1967년까지 10년간 중화학공업화를 실현한 일본이라는 벤치마크 사례를 분석해서 이를 목표로 당시 내자와 외자를 쥐어짜 100억 달러를 투자한 국가주도 중화학공업화라는 리스크가 큰 정책을 추진했던 '계산된 위험'과 비교해볼 때 '소득주도성장'이나 '국가균형발전'은 성공사례를 찾아보기도 어렵고 실행계획없이 당위가 앞선게 아닌가 불안한 느낌을 주는 점도 비교되네요.


지금이 예전처럼 정부가 산업정책을 주도할 시기는 아니지만, 1973년 1월 31일 청와대 지하 방공호에서의 박대통령 주재 <공업 구조 개편론>브리핑 회의 장면에 대한 기록은 전율이 일 정도였습니다.


1,700가구에 인구 1만 명의 소읍이었던 창원에 1981년까지 104개의 공장을 건설해서 10만 명 이상의 근로자를 고용하고 150억 달러 이상의 연간 생산량을 달성하는 세계 최대 수준의 공업단지를 세우겠다는 목표는 중국의 선전 경제특구에 꿀릴 바 없는 비전이지 않을까요? 박정희 대통령 말고도, 오원철, 김정렴, 서석준, 김재익, 남덕우, 강경식, 이낙선 등의 관료들에 대해서도 기억해야하지 않나 싶네요.


그래서 빌려서 읽었는데 소장하고 싶은 책입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자기 아버지의 무덤에 침을 뱉은 셈이긴 하지만 진정으로 박정희 시대의 공과를(특히 공을...)정리하고 넘어가기 위해서 참고하면 좋은 책입니다. (예를 들어 지금은 LG에서 갈라져 나온 LS전선이 어떻게 시작된 사업인지 몰랐는데 럭키금성 창업주 구인회씨에 대해 국가재건최고위원회가 케이블 공장을 지으라는 명령을 내렸다는 것 같은 깨알 재미를 주는 내용들이 참 많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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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쪽


정부가 1960년 8월 25일에 열린 한미고위급회담에서 군 병력을 10만 명(원래 감축 예정 병력은 20만 명이었다.)군 내의 다양한 불만의 목소리가 극적으로 고조되었다. 이 감축은 전체 장교의 17%가 연금 보장도 없이 생계를 위협받게 된다는 사실을 의미했다. 이러한 정황에서,군의 집단적 불만이 개혁파 영관급 장교들의 '정군'운동을 군 내에서 지지하는 결정적 요소가 되었다.


258쪽


그러나 사람들이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거나 간과한 사실은 전두환이 낮은 직급의 비정치적인 테크노크라트를 '경제 대통령'으로 발탁하는 급진적인 방법을 사용한 최초의 대통령이 아니라는 점이다. 실제로 박정희는 전두환보다 10년도 더 전에 이러한 선례를 남겼다.즉 박정희 자신은 정치와 안보에 전력을 다하고 경제는 새로 임명된 비서실장 김정렴에게 맡겼던 것이다.


272쪽


전체적으로 보면 카터의 철군정책을 가장 격렬히 반대한 사람들은 한반도 전방에 주둔하던 미군 장성들이었다.최근 공개된 자료에 따르면 주한미군 사령관 존 베시는 박정희 대통령과 그의 군사 고문들에게 미군 철군에 대한 보상으로 미 정부가 감당할 수 없는 액수의 보상금을 요구하라고 충고했다. (중략) 베시는 거의 반역에 가까운 이 전략에 굳건한 의지를 보여주었는데, 이것은 보상없이 철군이 진행된다면 베시가 사임할 것이라는 어느 미 국방부 직원의 발언을 보아도 명백하다.


367쪽


사실 오늘날 핵 문제를 둘러싼 북한과 부시 행정부 간의 정치적 교착 상태는 박정희가 고집스럽게 극비 핵무기 개발 프로그램을 밀어붙이던 1970년대 한미간의 위기상황을 뚜렷하게 연상시킨다.북한의 김정일을 비롯한 근방의 많은 약소국 지도자들과 마찬가지로,박정희도 독자적 핵무기 능력을 소유하는 것을 자주국방과 (민족)자주의 핵심 요소로 보았다.이것은 박정희의 경우 북한의 전쟁 위협에 대항할 수 있는 남한의 방위력을 상징하는 한편 미국과의 교섭에서 더 큰 자주성을 획득하는 것을 의미했다.


그러나 이 전략은 잘못이었다. 그 기저에 깔려 있는 박정희의 동기가 얼마나 이해 가는 것이든 간에, 남한을 핵무장화하려는 것은 두말할 것도 없이 자멸적 행위였다.이는 한반도에 대한 미국의 안보 의지에 도전하는 것일 분 아니라 동북아시아 지역의 안보 균형을 무너뜨리는 것이었기 때문이었다.따라서 박정희의 과오로 인해 남한은 비싼 대가를 치르고 핵무기 개발 프로그램을 포기해야 했다. 즉,미국이 또 다른 군사독재자 전두환을 묵인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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