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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닐 슈빈/김명남 역] 내 안의 물고기(2008)

독서일기/생물학

by 태즈매니언 2015. 9. 10. 0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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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책은 사서 봤어야 했는데. 소장하기 위해서 다시 살 책. 이런 책들 덕택에 요새 계속 과학서적을 읽게 된다. <내 안의 물고기>는 물론 부제인 "물고기에서 인간까지, 35억 년 진화의 비밀"이라는 부제의 내용을 담고 있다. 손, 손목, 머리, 이빨, 몸, 코, 눈, 귀 등등 인체의 모든 기관들이 살아있는 화석의 흔적들을 담고 있다는 경이로움을 느낄 수 있게 해주는 책이다. 이런 지적인 성취를 사해동포과 같이 나누고 싶어진다. 신이 지구상의 모든 생물들을 창조했다고 믿는 건 종교의 자유지만 그런 믿음을 소위 창조과학이라는 명목으로 혹세무민하는 이들에게도. 


고등학교 시절 생물의 수정란 - 난할 - 상실기 - 포배기 - 낭배기 , 중배엽 외배엽 이런 식으로 아무런 이해도 없이 억지로 외우라고만 배웠던 고역스럽던 지식들이 이리도 아름다운 의미를 담고있는 것 일줄이야. 


케케묵은 방법으로 보이는 고생물학의 화석 채취와 현미경을 통해 실험실에서 연구하는 분자생물학의 성과물이 합쳐서 이뤄내는 과학적 성취가 무지렁이에게 수십억년의 지구 생물사를 알기 쉽게 전달해준다. 닐 슈빈의 아름다운 명제 "우리 모두는 부모의 유전 정보를 변이 형태로 물려받은 후손이다."라는 문장을 되뇌어보며 그 깊은 의미를 되새겨본다. 요즘 읽었던 많은 책들이 결국은 다윈의 진화론에서 발원한 물길들이기에 언젠가는 <종의 지원>을 완역본으로 읽어봐야할 것같다. 


아래 255페이지에서 길게 인용한 숙취를 설명하는 부분이 특히 압권이다. 수학의 증명만큼은 아니지만 그런 느낌으로 아름다운 설명이다. 이 책을 읽는 내내 천재의 알기 쉬운 비유에 감탄했고, 생물학에서 거대한 직소퍼즐을 맞춰나가는 닐 슈빈의 지적인 작업을 관찰할 수 있어서 행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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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쪽


당시는 물고기가 물고기를 먹는 골육상쟁의 세상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같은 조건에서 살아남기 위한 전략은 단순했다. 몸집이 커지거나 갑옷을 두르거나 물 밖으로 나가는 것이다. 아마 우리의 먼 선조는 싸움을 꺼리는 쪽이었던 모양이다.


210쪽


마틴 보라스와 동료들은 포식관계가 몸을 만들어냈다는 구체적인 증거를 제시했다. 연구진은 보통 단세포로 존재하는 조류를 수천 세대 배양한 뒤에 포식자를 집어넣었다. 포식자는 편모를 가진 단세포 미생물로, 다른 미생물들을 먹고 소화시키는 녀석이었다. 그 결과, 조류는 200세대 만에 세포 수천 개가 뭉친 덩어리로 진화했다. 시간이 더 흐르자 세포 개수가 차차 줄었고, 결국 한 덩어리에 여덟 개씩만 뭉치게 되었다. 잡아먹히지 않을 정도로 크되, 각 세포가 충분히 빛을 확보할 수 있을 정도로 작은 최적의 수가 여덟 개였던 것이다. 더 놀라운 현상은 연구진이 포식자를 제거했을 때 벌어졌다. 조류는 여덟 개의 세포들의 집합으로 계속 재생산하여 개체를 유지했다. 한마디로 몸이라곤 없던 곳에서 단순한 형태의 다세포 몸이 탄생했던 것이다. (중략)


몸을 유지하는 건 굉장히 비싼 일이다. 물론 큰 몸을 지니면 좋은 점들이 많다. 포식자를 피할 수 있다는 것 외에 자기보다 작은 생명체를 잡아목얼 수 있고, 먼 거리를 이동할 수 있다. 그런 능력들이 있으면 환경을 장악하는 데 훨씬 유리하다. 하지만 포식이나 이동은 에너지를 많이 쓰는 일이고, 몸이 클수록 많은 에너지를 필요로 한다. 콜라겐을 포함하는 몸은 특히 그렇다. 콜라겐을 합성하는 데 상당히 많은 양의 산소가 필요하므로 우리 선조는 이 중요한 선소를 예전보다 훨씬 많이 흡수해야 했을 것이다.


문제는 여기에 있었다. 고대 지구의 산소 농도는 극히 낮았다. 수십억 년 동안 대기의 산소 농도는 현재와 비교도 안 될 정도로 낮게 유지되었다. 그러다가 지금으로부터 10억 년 전쯤에 산소의 양이 극적으로 늘어났고, 이후 현재까지 비교적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255쪽


술을 마시면 다량의 에탄올이 혈류로 들어간다. 내이의 림프액에는 원래 에탄올이 거의 없는데, 시간이 흐르면 혈류의 알코올이 그 곳까지 번져온다. 림프액보다 가벼운 알코올이 내이로 확산되는 현상은 올리브기름이 담긴 잔에 알코올을 붓는 것과 같다. 알코올 때문에 기름이 마구 교란되듯, 귓속의 림프액도 마구 출렁거린다. 그 대류 현상으로 인해 만취한 사람의 몸이 혼란에 빠진다. 털세포들이 자극을 발생시켜, 뇌는 몸이 움직인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실제로 몸이 움직이는 것은 아니다. 몸은 술집 한구석에 처박혀 있거나 바 앞의 의자에 웅크리고 앉아있을 뿐이다. 뇌가 속아 넘어간 것이다. (중략)


숙취가 심할 때만 벌어지는 또 한 가지 현상이 있다. 폭음한 다음 날, 당신의 간은 이미 놀라운 효율을 발휘하여 혈류에서 알코올을 제거해냈다. 그런데 너무 효율적인 것이 오히려 문제가 된다. 아직 내이의 관 속에는 알코올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그 알코올이 림프액을 빠져 나와 혈류로 돌아가면서, 다시 한 번 림프액이 요동치게 된다. 그래서 또 머리가 흔들린다. 


281쪽


인체는 여러모로 개조된 비틀과 비슷하다. 사람은 개조된 물고기이다. 물고기의 체제를 가져다가 포유류의 옷을 입힌 뒤, 미세한 조정을 가해 두 다리로 걷고, 말하고, 생각하고, 손가락을 정교하게 움직이도록 만들면 갖가지 문제점들이 잠복한 조리법이 완성된다. 물고기를 포유류로 변장시키면서 대가를 치르지 않을 수 있겠는가. 완벽하게 셜계된 세사이라면, 즉 진화의 역사가 존재하지 않는 세상이라면 우리가 치질에서 암까지 온갖 질병들 때문에 고통 받는 일은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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