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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스 드 발/황상익, 장대익 역] 침팬지 폴리틱스(1998)

독서일기/생물학

by 태즈매니언 2017. 8. 9.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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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한 권의 명묵님 추천작. 1982년에 발간한 초판에 사진과 최근의 연구성과를 주석에 보완한 1998년 증보판이군요.

 

동물행동학의 관점에서 영장류의 행태를 관찰한 책으로는 데스먼드 모리스의 <털 없는 원숭이>가 처음이었죠. 그 책이 워낙 좋았던 지라 비슷한 류의 책들은 찾아서 읽게 되었습니다. 개중에서 다리오 아메스트리피에리의 <영장류 게임>이 가장 내용이 풍부하고 흥미로웠던 기억이 납니다.

 

인간의 행태 중에서 다른 영장류와 닮아있는 모습들을 찾아내는 앞의 책들과 달리 프란스 드 발의 이 책은네덜란드의 아넴 동물원 내 10만 제곱미터 넓이의 사육장에서 살아가는 스무 마리 남짓인 침팬지 집단을 상세하게 관찰한 결과물입니다.

 

자연환경과 다른 점이라면 먹이가 지급되므로 자연상태처럼 소집단으로 흩어져서 먹이를 구할 필요가 없다는 점(덕분에 사회적 상호작용에 할애하는 시간이 훨씬 늘어납니다.), 이웃의 다른 집단이나 맹수들과 싸울 필요가 없다는 점, 무리에서 벗어날 자유가 없다는 점,5개월 동안의 겨울 동안 야외 사육장크기의 20분의 1밖에 안되는 실내 공간에서 공동생활을 해야한다는 점 등이 있었습니다. 이 정도야 뭐 생물학자들이 외딴 섬을 대상으로 연구할 때의 제약조건과 비교하면 크게 무리가 있어 보이지 않습니다.

프란스 드 발은 아넴 동물원 침팬지 집단에 대한 관찰을 통해 '사회적 지능 가설'은 설득력이 있으며, 정치는 인간의 기원보다 더 오래되었다는 결론을 내립니다.

 

노회한 이에론과 힘쎈 루이트, 혈기 넘치는 니키 이 세 마리의 다 자란 수컷이 벌이는 집단 내 권력 획득을 위한 직간접 연합, 우군 형성을 위한 털고르기와 장난, 선물 분배, 상대방의 잠재적인 우군형성을 방해하는 떼어놓기와 교미방해 등 집단 내 권력투쟁의 생생한 모습과 몇 년 후의 참혹한 결과는 인간 권력자들의 과두정치와 추락의 역사와 어쩜 그리 닮아있는지.

 

아래 188쪽에서 인용한 부분은 하나의 일화에 불과하고 더 다양한 이야기들이 많으니 직접 읽어보시길 권합니다.
(사회생활을 하는 인간 수컷으로서 조직에서 자신의 존재감을 최대한 어필하며 이에론처럼 살아야 하는데 ㅠ.ㅠ 위대한 스승님)

 

침팬지 집단도 인간처럼 정치적 개입행동의 유형에서 수컷은 전략적이며 지위 상승에 집착하고, 암컷은 보살핌과 개인적 약속을 중시하는 성별 차이가 나타나는 것도 재미었습니다.

 

영장류 중에서도 인류와 유전자 풀이 가장 가까운(심지어 2세를 낳는 것도 가능하다는) 침팬지는 개체를 구분해내는 능력이 있습니다. 그리고 자신 이외의 다른 개체들 간의 사회적 관계를 지각할 수 있는 '삼각관계의 인식'을 통해 연합을 형성할 수 있다는 증거들과 침팬지들이 집단 내 온갖 관계들을 감시하고 전략을 짜는 모습들을 보여줍니다.

 

이들을 보며 몇 시간 동안 일하고 퇴근하는 교사(인간 사육사)를 둔 중학교 교실에서 24시간 함께 생활한다고 가정할 때의 모습들이 그려지더군요. 인간은 동물이니까요. 이런 책을 읽고 난 다음엔 역사 드라마 한 편 정주행해야 하는데 크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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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쪽

 

강자의 보안관 역할과 그 강자가 위협에 직면했을 때 약자로부터 받는 지원 사이에 어떤 관련이 있을지는 뻔하다. 암놈과 그 새끼들을 지켜주지 못하는 1인자 수놈은 장차 라이벌과의 권력투쟁에서 어떠한 지원도 기대할 수 없다. 이런 의미에서 1인자 수놈의 보안관 역할은 호의라기보다 의무에 가깝다. 1인자로서의 지위는 이같은 의무에 달려 있다.

 

188쪽

 

니키가 이에론과 루이트를 상대로 구사한 일종의 분할 지배 정책은 두 수놈을 마비시키고 예속시켰다. 이에론과 루이트 사이에서 긴장이나 충돌이 일어나더라도 니키는 어느 한쪽의 승리가 결정적으로 판가름나지 않는 한 좀처럼 간섭하지 않았다. 그의 강력한 라이벌인 루이트의 무력 과시는 오히려 니키에게는 이익이 된 셈이라 이에론이 니키에게 보호를 요청할 수밖에 없는 구조가 형성되었다.

 

니키는 간혹 이에론이 피난처를 요구해오면 일부러 자리를 피하곤 하면서 이에론이 자신에게 의존하고 있다는 점을 더욱 부각시키려고 했다. 이런 행위는 이에론이 파트너인 니키에게 복종하는 것 외에는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음을 의미한다. 니키가 이에론을 보호하는 수준은 루이트의 공격 행동이 지속적으로 일어나거나 이에론의 아주 가까이에서 과시 행동을 할 때만 개입하는 정도였다. 니키의 개입은 보통 루이트에게 엄포를 놓는 형태를 취했는데, 그러면 루이트는 위협 행각을 그만두었다. 니키가 개입해서 루이트를 향해 과시 행동을 하면 이에론은 다시 용기백배한 태도를 보였다. 그것은 마치 상황 변화를 악용하려는 행위처럼 보였으나 니키는 단호하게 그런 행동을 못하게 했다.

 

결국 니키는 공동의 적에 대항해 상대와 연합을 이룰 때는 파트너를 확실하게 보호했지만 파트너가 자기 이익을 위해 그러한 생황을 악용하는 일은 허용하지 않았던 것이다. 니키는 두 수놈 사이에서 균형을 잡고 있었다.

 

263쪽

 

은혜에 보답하건 복수를 도모하건 그 원리는 교환이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이런 원리가 작동하기 위해서는 사회적 상호작용이 기억돼야 한다는 점이다. 이 과정은 대개 무의식적으로 일어난다. 하지만 경험에 비춰보면 손익 차이가 너무 큰 경우에는 무언가가 의식의 수면 위로 슬그머니 올라온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제야 우리는 자신의 감정을 말로 표현한다. 하지만 어쨌든 호혜적 행동은 대개 조용하게 일어난다.

 

265쪽

 

당분간 나는 다음과 같이 정리하고 싶다. 침팬지 집단생활은 권력, 섹스, 애정, 지지, 편협, 적대감이 교환되는 시장과 같다고. 그리고 이런 교환은 다음 두 가지 기본 원칙에 따라 이뤄진다고. '선은 선을 불러온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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