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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이언 사이키스/전성수 역] 이브의 일곱 딸들(2001)

독서일기/생물학

by 태즈매니언 2018. 8. 15. 2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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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일을 함께 한 또 한 권의 올해의 책 후보. 요즘 절판이나 품절인 책에 더 끌리는 이유가 이런 성공적인 보물찾기의 성과에 득의만면해서 자랑질을 할 수 있어서 인 것 같다.


(근데 아니 책표지 왼쪽 하단을 보니 아시아나항공 기내에서 승객들을 위해 비치한 책이었구나. 2002년에 번역된 책이고 2006년에 CI를 변경했으니 그 사이에 벌어진 일일텐데 누가 이런 걸 가져와서 알라딘에 팔았는지. 잘못하면 내가 책도둑으로 오해받게 생겼다 --;)

 

브라이언 사이키스 교수님이 후속작으로 쓰신 <아담의 저주>도 재미있었지만 인류의 일원으로서 호모 사피엔스의 뿌리를 찾아나간 이 책이 더 각별하게 느껴졌다. 사이키스 교수는 1996년 학술대회에서 6억 5천만 명에 달하는 유럽인들의 95% 이상의 모계 조상이 7명으로부터 기원한다는 사실을 발표했는데 이 책은 그 과정과 그 이후의 추가적인 발견과 아이디어들을 일반인들에게 전달해주고 있다.

 

나는 신석기 혁명 이후 중근동에서 넘어온 이주자들이 현재 유럽인들의 유전적인 조상인줄 알았는데, 이런 통념이 학계에서는 이미 20년 전에 논파되었다니 ㅠ.ㅠ

 

게다가 연구의 착상과 가설, 본인이 직면했던 난관들도 세세하게 묘사하기 때문에 남들이 별로 주목하지 않았던 분야를 선택한 신출내기 연구자가 어떻게 그 분야의 세계적인 거봉으로 자리잡는지 과학분야 아카데미아 세계의 작동방식을 구경하는 재미도 쏠쏠하다.

 

사이키스 교수가 모계로만 유전되는 미토콘트리아 DNA를 통해 호모 사피엔스의 가계도를 탐구하게 된 계기가 된 1991년 알프스에서 발견된 5천년 전에 살았던 남자의 얼어붙은 사체가 현재 유럽인들의 조상임을 밝힌 것부터 시작해서, 예카테린부르크의 유골들이 아나스탸사를 포함한 로마노푸 황족인지, 폴리네시아인의 기원과 유럽인의 기원 순서로 점차 연구의 대상을 확대해가면서 자신이 세운 가설에 대해 제기되거나 제기될 수 있는 반론을 지워나가는 과정을 따라간다. 소중한 휴일 밤 골든 호스 위스키를 온더락으로 홀짝거리며 책을 넘기던 나도 어느새 그 연구진의 말석에 끼어들어간 것 같았다.

 

특히 이책의 제목 <이브의 일곱 딸들>(엄밀한 의미는 아프리카의 원조 이브의 자손으로 중근동에 살았던 '라라'씨족에서 갈라져나와 유럽에 정착한 일곱 모계씨족이지만 판매를 위해서는 ㅎㅎ)네 나오는 유럽인의 조상인 7개 모계씨족의 유전자 표지 첫 알파벳을 따서 이름을 붙인 우설라(4.5만년 전, 유럽인구의 11%), 제니아(2.5만년 전, 6%), 헬레나(2만년 전, 47%), 벨다(1.7만년 전, 9%), 타라(1.7만년 전, 9%), 캐트린(1.5만년 전, 6%), 재스민(1만년 전, 17%) 일곱 여성이 살았던 시대의 기후와 그들 부족의 생활방식에 대한 가상의 묘사는 내 조상이자 당신들의 조상이기도 한 석기시대 사람들의 생존방식에 대해 가장 정확한 설명으로 보인다.

 

중근동의 농경문화를 가지고 들어온 재스민 씨족이 유럽인 중 겨우 17%라는 점은 이들이 중석기시대의 유럽인들을 대체하지 않았음을 의미한다.(나중에 Y염색체의 돌연변이 연구결과를 보면 남자만 죽인 것도 아님) 유럽에서 농경은 생각보다 빠르게 전파됐구나.

 

유럽의 일곱 모계씨족처럼 이런 식으로 전세계의 모계씨족의 가계도를 그린 것이 세 번째 사진이다. 이 세장의 사진이 한 학자와 그 연구팀, 그리고 그들의 연구를 도운 많은 이들의 지난 수십 년 간의 연구결과를 한 눈에 보여준다. 최근의 연구를 통해 호모 사피엔스와 네안데르탈인, 데니소바인과의 유전자 교환이 있었음을 밝혔지만 모계의 큰 얼개는 달라진 것 같지 않다. 

 

내 유전자가 존재하기까지 지난 30만 년 동안 지구상에서 살아온 애를 갖지 않기로 한 내 선택이 살짝 죄스럽게 느껴질 정도로 감동적이었다. 참고로, 딸을 둘 이상 가졌거나 가질 수 있는 여성 분들은 유럽의 일곱 여성처럼 자신만의 모계씨족을 창출할 수도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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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쪽

 

DNA 지시가 기록되는 방식은 놀라울 정도로 간단하다. 언어나 숫자 또는 컴퓨터의 이진법 코드처럼 우리에게 익숙한 지시 시스템과 마찬가지로 중요한 것은 부호 자체가 아니라 그것들이 나타나는 순서이다.
(중략)
실제로 모든 일을 하는 것은 단백질들이다. 단백질들이 몸의 집행부에 해당한다.

 

63쪽

 

사람의 난자세포의 세포질에는 약 25만 개의 미토콘드리아가 들어차 있다. 이에 비해 정자는 자궁 속을 유영하여 난자에 도달하기에 겨우 충분한 양만크의 에너지만 제공할 아주 소수의 미토콘드리아만 가지고 있다. 성공적으로 난자에 도달한 정자가 난자 속으로 들어가 핵 염색체를 전해주면 정자의 미토콘드리아는 더 이상 쓸모가 없어져 꼬리와 함께 버려 진다. 오직 정자의 머리 부분만 핵의 DNA와 함께 난자로 들어가게 된다. 수정된 난자는 이제 양쪽 부모의 DNA를 가지지만 미토콘드리아는 처음부터 난자의 세포질에 있던 것으로 모두 어머니로부터 온 것들이다. 바로 이러한 간단한 이유 때문에 미토콘드리아의 DNA는 항상 모계로만 유전된다.

 

137쪽

 

미토콘드리아 DNA의 돌연변이율로 시간을 계산해보면 1개의 돌연변이가 약 1만 년을 의미하므로 (중략) 네안데르탈인과 크로마뇽인은 적어도 25만 년 전에 공통조상으로부터 갈라져나왔므로 양자의 후손의 것은 평균적으로 적어도 25개의 돌연변이 차이를 보여야 한다는 것을 뜻한다. 웨일즈에서 우리가 관찰한 가장 큰 차이는 8개에 불과했다.

 

307쪽

 

유전자는 우리가 태어났을 때 그냥 나타난 게 아니다. 그것들은 수천 세대 수백만 개인의 삶을 거치면서 우리에게 전해져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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