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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트 앳킨슨/임정희 역] 라이프 애프터 라이프(2013)

독서일기/SF

by 태즈매니언 2015. 12. 24.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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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트 앳킨슨의 장편소설 <라이프 애프터 라이프>. 많아서 두권의 책을 번갈아 읽는 편인데 이번엔 붙잡고 읽으려했던 두 권의 논픽션이 너무 안 읽혀서 한동안 책을 못봤다. 글레이저의 <도시의 승리> 이후 4주만에 완독한 책.


소위 '환생'을 다룬 작품 중에 넘쳐나는 장르소설 수준을 넘어선 잘 쓴 작품을 찾고 있었는데 적절한 선택이었다. 600페이지가 넘는 책이지만 술술 읽을 수 있었다.


20세기 초반인 1910년의 영국에서 태어난 여성 어슐러가 주인공이기에 20세기 초반의 여성들이 어린 시절 학습했던 성에 대한 관념이 시간이 흐름에 따라 어떻게 변화되어 왔는지 잘 알 수 있게 해준다. 게다가 영국인들 좀 넓게 보면 유럽인들이 겪었던 두 차례의 세계대전이 그네들에게 어떠한 경험이었는지도. 라이프 애프터 라이프라는 소재덕에 같은 시기를 반복해서 서술할 수 있다는 장점과 저자의 공들인 자료수집덕분에 런던사람들의 생활방식을 생생하게 연상할 수 있는 점...도 장점이고.


역시 가장 흥미로웠던 부분은 죽더라도 전생의 기억을 갖고 다시 태어나기에 자신의 삶의 순간들을 매번 복기하며 삶의 우연성들이 만들어내는 사건들과 그 사건들로 인해서 발생한 여파에 영향을 받는 사람들을 최대한 보호하기 위한 주인공 어슐러의 행동들이었다. 같은 시점, 같은 부모에게서 태어난다는 고정된 조건을 생각햇을 때 환생을 하더라도 생각보다 인생이 확 달라지지는 않는다는 사실도 수긍이 간다. 계속 반복되는 인생이고 카산드라처럼 미래에 벌어질 일들을 알고 있다면 권력이나 재산보다는 사랑하는 사람들을 보호하는 일이 인생의 목적이 되지 않을까 싶다. 유한성이란 제약이 없는 상황에서 '내 자신의 인생'이라는 게 얼마나 덧 없는 말인가. 특히 시지프스처럼 영원이 반복되는 환생이라고 생각하면 끔찍해지기까지 한다. 환생이 거듭되다보면 나중에는 본인이 정말 사랑하는 사람조차 어떻게 되든 상관없어지는 체념의 상황까지 오지 않을까? 그런 결말이 예상되는 영원한 삶을 어떻게 축복이라고 볼 수 있을까?


지난 시절을 되돌아보면 세이브&로드 하고 싶은 순간들이 꽤나 있었지만 게임에서 반복적으로 치트키를 사용하는 것처럼 그 게임을 무가치하게 만드는 일이 없다는 걸 이 책을 통해서 더 확실하게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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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6쪽


패멀라는 먼 곳에서조차 양심의 목소리를 냈다. 하긴 먼 곳에서 양심을 갖기란 아주 쉬운 일이었다.


542쪽


어슐라의 저녁이 평소보다 늦은 건 은퇴식을 치르고 왔기 때문이다. 식이 끝난 뒤 제 발로 걸어나갈 수 있다는 점만 빼면 자신의 장례식에 참석하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547쪽


어슐라가 사는 곳은 브롬프턴 오라토리 부근의 아주 좋은 아파트로 실비가 남겨준 유산을 이 집에 다 쏟아부었다.
(전혀 의미있는 문장은 아닌데 1976년 엔지니어 앤드루 리치가 자신이 만들어낸 혁신적인 접이식 자전거의 이름을 자기가 살던 아파트에서 내려다보이는수도원의 이름을 따서 brompton이란 이름을 붙였는데 소설에서 등장하니 반가워서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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