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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은국] 행복의 기원(2014)

독서일기/심리뇌과학

by 태즈매니언 2016. 2. 21. 0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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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내가 읽었던 대부분의 책들은 번역서적들이었다. 세계 각지의, 심지어는 이천년 전에 살았던 사람과도 경쟁해야 하는 사상의 자유시장은 경쟁이 치열한 정도로 보면 손에 꼽을 정도이리라. 그러다보니 우리나라의 특수한 경험에 관련된 영역들 외에는 그 분야의 세계적인 석학들의 번역서들을 신뢰하게 되더라.


어느 페친의 추천이 없었더라면 모르고 지나갔을 심리학과 교수의 책. 행동경제학 책으로 시작된 인간의 마음에 대한 내 호기심이 영장류인류학과 진화심리학으로 흘러왔는데 200페이지도 되지 않고 줄간격도 큼직큼직한 이 책은 최근 학계의 주요한 성과들을 들어 이 둘을 간결하게 전달해주고 있다.


담고 있는 내용도 좋았지만 문장과 표현에 국한해서 봐도 좋은 책이다. 강의록 느낌이 나는 입말 표현들과 번역서에서는 보기 쉽지 않은 전달력있는 비유들을 읽을 때면 동시대를 살아가는 같은 나라 독자들라서 뿌듯했다. 똑똑한 사람도 많지 않지만 똑똑하면서 알기 쉽게 설명도... 잘해주는 사람은 찾아보기 힘드니. 알고있는 것 자랑하고 싶은 맘을 꾹 참고 게다가 분량도 압축해서 읽는 시간도 줄여주는 친절함까지. 학자가 일반인을 대상으로 하는 좋은 글쓰기의 모범사례였다.


제목과 책 표지가 저자 서은국교수가 말하고자하는 바를 담고 있다. 서문에서 보여주는 문장력부터가 독자를 사로잡는다. 서문을 읽고 바로 책 날개의 저자 이력을 훑어보니 UC어바인에서 4년만에 테뉴어를 받았던 분이구나. 첫인상 효과 돋는다.


서은국교수는 30년 동안의 연구를 통해 깨달은 사실을 전달한다. 인간은 100% 동물이라는 점. 행복하기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 살기 위해 행복감을 느끼도록 설계된 것이 인간이라는 것. 최근의 주요 성과들을 간략히 소개하며 행복을 인생의 목적으로 보는 아리스토텔레스 이래 철학자들의 시각에 익숙한 우리들에게 행복의 실체를 달리 보는 기회를 준다. 다윈의 진화론이 인류의 지성에 있어서 얼마나 중요한 이정표가 된 저작인지 다시 한 번 실감할 수 있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니코마코스 윤리학>과 대비해서 보면 더 좋을 것 같다. 둘 다 분량도 짧으니.


나는 unpacking ceremony에 별다른 가치를 추구하지 않기에 이 책을 중고서점에서 샀지만 주변사람들에게는 새로 사서 선물해주고 싶은 빼어난 책이다. 이 책을 읽고나니 행복에 대한 최신의 연구결과들이 전해준 지혜들을 책을 읽지 않고서도 이미체화하고 살아가는 분들이 눈에 더 잘 들어온다.


서은국 교수의 수업을 들어본 적은 없지만 아홉 개의 챕터에 붙인 문학적인 제목들과 책의 결말을 정리하는 표현력에서 프리젠테이션 대가의 향기가 난다. 아마 TED 강연을 하시면 명예의 전당에 오르지 않을까?


이 책은 행복이 무엇인지에 관한 책이지 어떻게 행복해질 것인지에 대한 책은 아니지만 하나의 중요한 실용적인 팁을 준다. Happiness is the frequency, not the intensity, of positive affect. 인상깊은 어느 페친께서 본인 글에서 여러 번 언급하셨던 말인데, 이 책을 통해 그 정확한 의미를 알게 되었다. 좋아하는 사람들을 만나서 맛있는 음식 먹으며 삽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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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쪽


행복은 삶의 최종적인 이유도 목적도 아니고, 다만 생존을 위해 절대적으로 필요한 정신적 도구일 뿐이다. 행복하기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 생존하기 위해 필요한 상황에서 행복을 느껴야만 했던 것이다.


77쪽


쾌와 불쾌의 감정은 나설 때와 물러설 때를 알려주는 '생존 신호등'이다. 불쾌의 감정은 해로운 것으로부터 우리를 보호하는 '빨간 신호등'이다. 이 신호를 무시하면 몇 번은 운 좋게 살 수 있어도 결국에는 비극적인 종말을 맞는다. 쾌의 감정들은 '파란 신호등'이고, 행복은 이런 경험에 바탕을 두고 있다. 생존에 유익한 활동이나 생각을 하고 있을 때, 그 일에 계속 매진하라고 알리는 것이쾌의 본질적 기능인 것이다.


99쪽


지난 30년간 과학적인 연구를 통해 행복에 대해 많은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 중 가장 중요하고도 확고한 결론은 무엇일까? 긴 시간 행복을 연구한 사람으로서 고민을 해보았다. 내 생각에는 두 가지다.


첫째, 행복은 객관적인 삶의 조건들에 의해 크게 좌우되지 않는다. 둘째, 행보의 개인차를 결정적으로 좌우하는 것은 그가 물려받은 유전적 특성, 조금 더 쿠체적으로는 외향성이라는 성격 특질이다.


123쪽


쾌락은 생존을 위해 설계된 경험이고, 그것이 제 기능을 하기 위해서는 본래 값으로 되돌아가려는 초기화가 반드시 필요하다. 이것이 적응(어떤 일을 통해 느끼는 즐거움이 시간이 갈수록 줄어드는 현상)이라는 현상이 일어나는 생물학적 이유다. 그리고 수십 년의 연구에서 좋은 조건을 많이 가진 사람들이 장기적으로 훨신 행복하다는 증거를 찾지 못한 원인이기도 하다.
(중략)
그래서 행복은 '한 방'으로 해결되는 것이 아니다. 모든 쾌락은 곧 소멸되기 때문에, 한 번의 커다란 기쁨보다 작은 기쁨을 여러 번 느끼는 것이 절대적이다.


161쪽


행복감을 예측하는 가장 중요한 문화적 특성은 개인주의다. 소득 수준이 높은 북미나 유럽 국가들의 행복감이 높은 이유도, 사실은 상당 부분 돈 때문이 아니라 유복한 국가에서 피어나는 개인주의적 문화 덕분이다. 그래서 개인주의적 성향을 통계적으로 제거하면, 국가 소득과 행복의 관계가 거의 소멸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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