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에번 오스노스/고기탁 역] 야망의 시대(2014)

독서일기/중국

by 태즈매니언 2016. 4. 24. 00:35

본문




<뉴요커>지의 중국특파원으로 2008~2013년까지 8년을 보냈던 기자 에번 오스노스가 보고 들었던 중국 사람들이 만들어가는 최근 중국의 모습에 대한 책이다. 지금까지 내가 가장 많이 방문했던 외국 도시는 베이징이다. 마지막으로 갔던게 벌써 오 년은 된 것 같지만. 그런데, 지금 내가 가장 여행가기 싫은 나라가 중국이고, 도시로는 베이징이다. 


베이징에서 봤던 풍경 중 저녁 5시가 되면 시장에서 저녁거리를 준비하러 장을 보고 아이를 데리러 가던  사내들과 저녁 7시쯤 무리지어 음악에 맞춰 단체춤을 추거나 사교댄스를 추던 부부들의 모습 빼고는 내 마음이 편안해지는 장면이 떠오르지 않는다. 야망의 시대를 살아가는 그들의 치열한 모습을 볼 때마다 나는 그들의 역동적인 에너지에 감탄하기 보다는  운좋게 한 세대 전에 이웃나라에서 그네들의 자식뻘 세대로 태어난 사실에 안도했었다. 윗세대의 고생으로 이룬 세계적으로 드문 성공의 과실을 즐기고 있으면서, 이기적인 나는 그들이 겪었던 시대를 겪고 싶지는 않다. 어서 빨리 과거를 벽장에 밀어넣고 아예 못박아버렸으면 좋겠고. 


원치않는 데자뷔 관람료를 뜯기기 싫어 중국에 무관심하려 했다.  국내 언론의 국제면이 전해주는 허섭한 중국뉴스들은 그렇게 동시대의 중국에 대해 무지하게 살면서도 스스로 그런 줄도 모르게 도와줬고. 


그런데 페친들의 추천을 받아 보게 된 이 책은 여러 개인들의 시각과 그들의 행동을 통해서 최근 십여년 동안 중국의 모습을 보여줬다. 미국 도금시대의 날강도 귀족들의 행태나 <분노의 포도>에 나오는 비참한 현실은 백여전 전 지구 반대편 일이라는 심리적인 방어막이 있지만 최근 십여년은 내 기억의 시계 속에서는 거의 실시간이나 다름없다. 중국의 이야기라지만 바로 얼마전 우리나라의 에피소드를 번안한 것처럼 기시감이 들었고. 


그나마 우리나라는 미국의 중재덕분에 군부독재정권과의 타협이 성공해서 80년대 이후 형식적인 민주화를 성취했다. 하지만 소련 공산당의 74년 일당독재 기록을 경신한 중국 공산당이 언제까지 인민들과 경제적 성취와 정치적 자유의 제약을 주고받는 계약을 성공적으로 유지할 수 있을지 아슬아슬해보인다. 과연 지금의 중국 공산당이 적절한 시기에 자연스럽게 인민들에게 정치적 자유를 선사할 수 있을 것인지. 


이 책이 보고나니 이 문제는 어떤 법칙에 따라 결론날 것이 아니고, 지금의 중국인들이 결정하게 될 것이라는 걸 알겠다. 끝없이 검열하고 통제하는 정부와 조심스럽게 개인으로서의 자각하고 보다 많은 자유를 누리고자 하는 국민들과 중앙선전부를 선봉장으로 한 통치체제 사이에 만리장성 전체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벌이는 오래 계속될 공성전의 결과에 따라... 


내가 개혁개방 이후의 중국에 대해 읽었던 책 중에 가장 인상깊었던 게 피터 헤슬러의 <리버 타운 - 양쯔강에서의 2년>이었다. 저자 에번 오스노스가 이 책의 헌사를 바친 사람 중에 그의 이름이 있길래 검색해보니 헤슬러는 2000~2007년까지 <뉴요커>의 중국 특파원이었던 에번 오스노스의 전임자였더라. 그가 8년간 보고 들은 중국에 대해서 <컨트리 드라이빙 - 자동차로 달린 7,000마일 중국 여행기>를 썼다니 조만간 그 책도 읽어봐야지.  


-------------------------------------


115쪽


중국의 기준에서도 마카오의 성장 속도는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 2010년 마카오의 큰손들은 도박에 대략 6천억 달러를 썼는데 이는 미국의 ATM에서 한 해 동안 인출되는 현금을 모두 합친 액수와 비슷했다. 


449쪽


중국의 지도자들은 중국이 조립 라인을 넘어서도록 이끌어 줄 혁신을 촉진하고자 필사적으로 노력했다. 중국은 이미 미국을 제외한 다른 어느 나라보다 연구개발에 많은 돈을 투자하는 나라이자 미국과 일본을 제치고 특허를 가장 많이 신청하는 나라가 되어 있었다. 그럼에도 출원된 특허 대다수가 거의 무가치했는데 정치적인 목적이나 투자금을 유치하기 위한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또한 미국을 제외한 다른 어느 나라보다 많은 과학 논문을 발표했지만 다른 논문에 인용되는 평균 횟수를 근거로 평가하는 질적인 측면에서도 전 세계 10위권에도 들지 못했다. 학계에는 기만 행위가 만연했다. 저장대학에서 학술지에 실릴 논문들을 <크로스체크>라는 소프트웨어로 표절 여부를 검토했을 때 그들에게 보내진 논문 중 3분의1이 표절이나 이전 논문에서 베낀 내용을 포함하고 있었다. 정부 지원으로 실시된 한 조사에서는 6천 명의 중국인 과학자들 가운데 3분의 1이 데이터 조작이나 표절 사실을 인정했다. 


472쪽


도로 위의 사람들과 뒤섞여 가까이서 본 중국의 민족주의는, 이데올로기라기보다 중국 경제가 호황을 누릴 당시 의미를 찾고자 했던 시도의 또 다른 방식에 가까웠다. 반일 시위에 전혀 관심이 없는 작가이자 번역가 친구 루한 역시 사람들이 그 시위에 이끌린 이유에 공감했다. "중국에서 살다 보면 그런 감정을 느낄 기회가 거의 없어요. 이르테면 자신이 정신적으로 고양된다거나, 자신보다 거대하고 주변의 평범한 생활터전보다 중요한 무언가를 위해 애쓰고 있다는 느낌 말이에요." 그런 측면에서 민족주의는 일종의 종교였으며 사람들은 유고나 기독교 또는 이마누엘 칸트의 도덕 철학을 신봉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민족주의를 신봉했다. 


511쪽


(2013년) 9월에 들어서자 중국 정부는 인터넷이라는 통제하기 어려운 힘을 길들일 새로운 방법을 도입했다. 최고 인민법원에서 '거짓으로 명예를 훼손하는' 글이 5천 번 이상 조회되거나 5백 번 이상 전달되면 최고 3년의 징역형을 받을 수 있다고 명시하는 법규를 제정한 것이다. 이제 중국은 사람들의 공개적인 발언을 막기보다 들은 말을 옮기는 것을 막기 위해서 싸우고 있었다.

관련글 더보기

댓글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