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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터 헤슬러/양희승 역] 컨트리 드라이빙(2010)

독서일기/중국

by 태즈매니언 2016. 7. 8. 2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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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읽어본 피터 헤슬러의 책은 그의 첫번째 책 <리버 타운> 뿐이었다. 하지만 그 한 권의 책을 읽고서 이 사람이 중국에 대해서 하는 이야기라면 경청할 가치가 있다는 생각이 굳게 자리잡았다. 중국에 대한 경험담과 분석 책들이야 매년 엄청나게 쏟아져 나온다. 경험담으로 시작하지만 자신의 분석과 예언에 방점을 찍곤 하는 대부분의 책들과 달리 이 책은 용권풍처럼 정신없이 변해가는 중국의 모습을 스냅사진처럼 생생하게 포착해내는데 집중하고 있다.내가 책을 읽는 지금은 이미 지나가버린 모습들이지만 동시대의 중국인들이 지난 근 십여년 전 겪어온 경험들을 책으로나마 접할 수 있어서 좋다. 그의 <리버 타운>을 지금 읽어도 되는 것과 같은 이유다.

<뉴요커>와 <내셔널 지오그래픽>에 연재된 세 편의 기획취재 기...사를 한 데 묶은 이 책은 세 파트로 나누어진다. 각각 별개의 취재였지만 중국 내에서도 가장 극심한 변화를 겪고 있는 지역들을 아우르면서 급격한 변화에 대처하면서 사람들이 어떠한 가치관을 형성하는지까지 포착해내고 있다.

제1부는 홀로 체로키를 타고 베이징에서 간쑤성까지 만리장성을 따라 달리며 보았던 해체되어가는 변경마을들의 모습에 대한 기록이다. 홍은택씨의 <블루 아메리카를 찾아서>와 비슷한 컨셉이다. 만리장성의 끝자락이 한나라 시절 당시 주둔군의 곡물창고이자 요새였던 허창정 유적지에서 끝난다는 사실도 알았다.

제2부는 베이징 중심부로부터 약 50km가량 떨어진 화이러우구 지역의 외딴 시골인 싼차마을에 거주하면서 경험했던 일이다. 2012년 경 화이러우구에 머물렀다. 우리나라로 치면 경기도 양평 끝자락이나 청평같은 느낌인데 행정구역상 베이징에 들어가서 신기했었고, 우거진 숲과 호두나무들, 호수들이 참 좋았던 한적한 지역이었다.(호숫가 집에 살면서 키우던 오리와 닭이 낳은 알들과 텃밭 작물을 팔던 인상좋았던 노부부가 생각난다.) 우리나라 80년대 초반에 양평지역에 불어닥친 개발바람들이 그 지역사람들에게 어떻게 영향을 미쳤는지 모르지만 2부에서 묘사한 내용들과 비슷하지 않았나 싶다. 중국 공산당이 향촌사회를 어떻게 움직이는지도 좀 알 수 있었고.

제3부는 저장성(절강성) 지역의 새롭게 발전하는 리수이 시의 공단지역에서 한 중소제조기업의 창업부터 공장이전과 그 공장에서 일했던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다. 다른 책들에서도 많이 다루는 이야기이지만 이 책처럼 산업의 흐름과 사람들 모두를 섬세하게 다룬 책은 보지 못했다.

글로벌 분업의 확산으로 인한 산업화와 이촌향도 자체야 수백년 동안 지구 곳곳에서 반복되어온 일이다. 하지만 각 문화권마다 유지해온 고유한 가치관들이 기존 공동체와 인간관계의 해체와 재구성을 통해 어떻게 달라지는지의 문제는 다들 다를 수밖에 없다. 피터 헤슬러는 각자 다른 입장에 처한 중국인들이 자신들이 겪은 변화를 통해 어떠한 가치관을 형성하고 있는지까지 포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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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7쪽

1940년대 초 미군은 중국의 공화정을 지원하기 위해 중국 남서부 지역에 지프와 트럭 등을 보내주었다. 그러나 차량 운전자들은 과도한 교통사고의 발생으로 인해 예기치 못한 곤경에 처했다. 미국의 차량은 도로 오른쪽으로 통행하도록 만들어져서 운전자들로서는 왼쪽 통행으로 된 중국의 도로에 적응하기가 너무 힘들었던 것이다. 미군을 지휘하던 고위 장성 앨버트 웨드마이어는 이런 상황에 대해 간단한 해결책을 제시했다. 중국 내의 모든 도로에서 차량의 통행 방향을 오른쪽으로 바꾸자는 것이다. 당시 미국의 지원에 상당 부분을 의지하고 있던 장제스는 그 제안을 받아들여 1945년 1월 31일자로 중국 전역 도로에서 통행 방향의 변경이 실시되었다. 이미 일본군의 퇴각이 이루어지고 난 시점이었다.

114쪽

한참을 달린 후에야 가끔씩 오토바이를 탄 사람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들은 오토바이 뒤의 훍받이 부분에 컴퓨터 시디를 붙여놓고 달렸다. 반사경 대용품으로 사용하고 있었던 것이다. 싱우잉 마을의 주민들은 휴대폰 통화를 할 때면 신호를 잡기 위해 만리장성의 성벽 위로 올라갔다. 마을 이름 싱우잉은 '번성하는 군사 기지'라는 뜻이었는데 명 왕조 때 축조된 이 성벽이 거대한 위용을 갖추고 있어 그런 이름이 붙은 것이다. 지금 이 외딴 마을은 가난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지만 주민들은 나름대로 그 성벽을 잘 활용하고 있었다. 높은 성벽 위에 서서 휴대폰을 얼굴에 바짝 붙이고 통화하는 그들의 모습에서 나는 마치 그들이 '디지털 시대의 초병'이 된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만리장성이 휴대폰의 보조 장치를 전락하고 컴퓨터 시디가 반사경 역할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 너무 기가 막혔다. 그곳에서는 모든 게 뒤섞여 있었다. 진보적인 것과 즉흥적인 것 사이에 아무런 구분이 없었다.

282쪽

중국의 시골 마을에서 정치적으로 제일 중요한 직위 중 하나가 지역 당의 당 서기이고, 또 하나는 마을 대표였다. 마을 대표는 주민들 전체가 참여하는 비밀 투표로 선출되며 후보자가 반드시 당원일 필요는 없었다. 그러나 당 서기는 당원 자격을 가진 사람만 될 수 있었다.

376쪽

중국의 도시들은 자체적으로 기금을 조성해야 하는데, 이들 시 정부가 미국의 경우처럼 지방채를 발행하는 것은 법률로 금지되어 있었다. 대부분의 토지가 국가소유여서 토지세 징수를 통한기금 확보도 어려웠다. 특히 전격적인 개발이 진행되는 지역에서는 조세 기반 자체가 너무 취약했다.
(중략)
해답은 건물의 밑부분에 있었다. 바로 토지였다. 정확히 말하면 토지 사용권이 지방에서 도시로 이전되는 과정에서 그 막대한 자금이 생겨났던 것이다. 중국의 농경 지역에 있는 모든 토지는 공동 소유였다. 때문에 웨이지치 같은 농부들은 자신의 경작지나 가옥을 공개 시장을 통해 매각할 수 없었다. 모든 부동산 거래는 지역 당이 맡아 했는데 어느 도시가 그곳 농경 지역으로 확장 계획을 시행할 경우 거래가 성사되지만 그런 상황에서 마을의 지역 당은 협상 주도권을 거의 갖지 못했다. 도시들은 정부가 정한 가격을 치르고 임의대로 토지를 구할 수 있었다. 계약이 성사되면 주민들은 다른 지역으로 이주했고 그곳에 기본 인프라를 구축한 도시 당국은 해당 지역을 도시에 편입시켰다. 도시로 분류된 해당 지역의 토지사용권은 공개 시장 가격으로 경매에 부쳐 가장 높은 금액을 제시한 사람에게 낙찰됐다. 한마디로 농경지를 사들여 도시 지역에 되파는 일종의 차익 거래였고, 현 단위 이상의 행정 관청에만 허용되는 제한적 거래였다. 거래를 통해 발생하는 수익은 대다한 규모였다. 중국 사회과학아카데미의 경제학자 왕리나의 얘기에 따르면, 해안 지역 도시들의 재정 수입 절반 가량이 부동산거래를 통한 것이라고 한다.

390쪽

중국 운전면허를 취득한 후 5년 동안 내 운전 기록에는 흠집 하나 없었고 저장 성에 오기 전까지는 한 번도 법규를 위반한 적이 없었다. 그러나 속도 위반 단속이 수익을 낸다는 사실을 파악한 남부 지역 관리들은 복잡한 교차로에 단속 카메라를 설치했고 예고 없이 급격히 제한 속도가 떨어지는 고속도로 구간에도 레이더 건을 설치했다. 고속도로에 실제로 경찰이 나타나는 일은 없었다.
(중략)
경찰관들은 민간 기업의 주주들처럼 단속 카메라 설치 비용에 투자한 후 이익이 발생하면 배당금을 받았다. 저장 성의 경우, 한 경찰관이 고속도로 단속 지역에 6,000달러를 투자했다면 벌금 티켓 한 장당 7.5%의 이익이 그에게 돌아갔다. 카메라 한 대당 투자자의 인원이 네 명으로 제한되어 있어 신참 경찰관에게는 일정한 직위를 쌓기 전까지는 차례가 돌아가지 않았다. 고위 간부들은 여러 대의 카메라에 투자할 수 있었고 어떤 경찰관이 어느 지역 카메라를 배정받을지는 추첨으로 결정됐다. 이 사업에는 민간 사채업자들도 참여했다. 그들의 생각에도 단속 카메라를 구입하려는 경찰관에게 돈을 빌려주는 것은 안전한 투자였기 때문이다. 이 사업이 이루어지는 과정에는 나름대로의 엄격한 규칙이 있었다. 그러나 그 규칙이라는 것은 법률과 질서에 의한 것이 아니라 조직의 서열과 이익 창출이라는 목적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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