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말은 미세먼지 예보덕분에 이 책까지 세 권째. 많이 먹는다고 자랑하는 것처럼 부질없는 짓이기는 한데 사놓고 못 읽고 있는 책이 너무 많아 밀린 숙제를 해치운 느낌이다.
이 책은 2013년 하반기 팟캐스트 <김종배의 사사로운 토크>의 도시정치학 코너를 수정 보완해서 묶은 책이라는데 역시 페친의 소개로 알게 되었다. 팟캐스트는 1배속으로 들어야 하는 책으로 읽으니 시간도 절약하고 역시 좋다.
실질적인 저자는 도시공학과 지리학을 수학하여 정치지리학을 전공한 임동근 교수다. 책을 쭉 읽고 나니 앞으로도 기대되는 분인듯. 책의 내용은 제목과 부제로 요약된다. <메트로폴리스 서울의 탄생 - 서울의 삶을 만들어낸 권력, 자본, 제도 그리고 욕망들>.
이 책에서 임동근 교수는 정치지리학이라는 생소한 분야의 관점으로 해방 이후의 서울 도시사를 분석해준다. 자치조직이었던 '동'이 행정조직으로 편제되는 과정, 중앙정부가 기초지자체에 주는 직접교부금을 통해 광역지자체를 견제하는 행태 등은 동사무소의 존폐, 군이라는 애매한 사이즈의 행정구역 개편 등에 대해 관심이 있다면 반드시 알아야할 내용들이었고.
전산화 이전 시대에 행정구역 개편이 얼마나 힘들고 자원이 많이 소모되는 사업이었는지 처음 알게 되었고, 그랬음에도 1963년 서울특별시 승격과 행정구역 확장이 도시의 본격적 팽창 전에 이뤄져서 얼마나 다행이었는지에 대한 설명도 인상깊었다.
이 책은 서울의 발전에 대한 연대기인 손정목 교수의 <서울도시계획이야기>와 달리 우리나라의 서울로의 인구집중이 야기한 문제를 정권과 관료들이 노동문제와 주택문제, 사회인프라의 건설의 세 가지 문제를 어떻게 종합적인 시스템으로 해결하여 한강의 기적을 이뤘는지를 쉽고 간결하게 보여준다.
이촌향도로 인한 인구집중에 시달리던 서울이 토지구획정리 사업 아이디어를 통해 체비지를 만들고, 그 체비지를 민간에 팔아 새로운 택지사업비용과 공공인프라 건설비용을 충당해왔다는 점은 전에 알고 있었다. 하지만 허허벌판의 빈땅인 체비지가 잘 팔리도록 그린벨트를 지정해서 대체용지의 공급을 묶었다는 점, 정부가 관리가능하고 수치를 확인가능한 대규모 아파트 단지 공급을 1972년 <특정지구 촉진에 관한 임시조치법>과 같이 무지막지한 조세감면 정책과 주택청약제도 및 선분양제, 분양가상한제 등을 통해 민간건설업의 발전을 촉진하면서 동시에 도시의 정규노동자들로 하여금 주거문제 해결과 재산증식의 기회를 부여하여 그들을 군부정권과 이해관계를 같이하도록 포섭해온 정교한 정책에 대한 설명을 들으며 새로 알게 된게 참 많았다.
싸게 분양해야 하면서 건설사에게는 이익을 남겨야 하고 또 선호도가 높은 주택 유형이 아니면서 미리 돈까지 내게 만들어야 하는 이 어려운 방정식을 성공적으로 설계하고 필요한 정구 0순위제부터 채권입찰방식까지 다양한 시장통제정책을 사용하여 주택시장을 관리해온 군부정권의 관리능력에 새삼 감탄했다. 막차를 탄 폭탄제거반을 빼고는 모두가 행복했던 이 아파트분양정책은 이제 세입자에 대한 주거비보조제도가 도입되면 관리나 유지로 먹고사는 건설자본의 등장으로 작동하는 새로운 임대주택시스템으로 대체될텐데 지금은 과도기로 보인다.
이 내용 말고도 이 책이 담고 있는 내용은 훨씬 많으니 조악한 요약으로 만족하시지 말고 가능하다면 직접 읽어보시길 권하고 싶다. 조선시대 역사와 외국의 역사는 잘 알면서도 의외로 지난 반세기의 이 나라 역사는 정치사 외엔 제대로 모르는 부분이 많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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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쪽
여담입니다만 왜 과천이냐면 북한에서 포를 쏘면 관악산에 걸려서 정부종합청사가 안 맞습니다. 곡사포로 쏘지 않는 이상 안 맞게 돼 있습니다.
109쪽
1번 경부고속국도는 많은 역사가 있는 도로입니다. 특히 한국전쟁 때 미군이 개입하면서 낙동강 전투를 전환점으로 밀고 올라가는데 비포장도로에서 탱크가 진격하기 힘들었습니다. 또 물을 많이 만납니다. 우리나라의 지형이 동고서저라 동서 방향으로 강이 많습니다. 그래서 수 없이 도하를 해야 하는데 마땅한 길이 없을 경우 문제가 많습니다. 그래서 탱크가 갈 수 있는 길들을 파악해서 미군이 1951년 탱크길 지도를 만듭니다. 이 지도의 1번 라인이 바로 그 경부고속도로 라인입니다. 그래서 탱크로 다져진 길이었다고 생각하시면 돼요.
117쪽
토지구획정리 사업은 역사가 깊습니다. 1904년 초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제정된 아디케스법을 통해 처음 시행됩니다. 핵심은 정부의 재정 투입 없이 공공용지를 획득하는 겁니다. 정부는 공짜로 토지를 얻을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의 경우 돈도 벌었습니다. 가령 나대지가 있다 하면 지주들에게 땅의 20~30%를 국가에 내놓으라고 합니다. 우리나라는 50%까지 내놓으라고 한 적도 있습니다.
157쪽
광주대단지 사건이 발생하자 바로 성남시가 만들어집니다. 당시 서울시장이 가서 사죄한 다음 성남시가 설치되요. 더 재미있는 건 뭐냐 하면, 서울과 성남을 연결하는 도로를 만들기 위해 잠실대교를 짓는데 이 돈을 마련하기 위해 잠실단지를 개발하게 됩니다. 잠실지구, 종합운동장 개발이 광주대단지 사건과 연결돼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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