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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현준] 도시는 무엇으로 사는가(2015)

독서일기/도시토목건축

by 태즈매니언 2016. 5. 3. 2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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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익대학교 건축대학의 유현준 교수라는 분께서 쓰신 책. 조금 성의없게 지은 듯한 제목보다는 부제인 '도시를 보는 열다섯 가지 인문적 시선'이 그나마 좀 낫다. 사내 도서관에 새로들어온 책으로 잘 보이는 곳에 놓여있지 않았더라면 아마 안봤을 듯 싶다.

 

우중충한 날씨때문에 팝콘 깨물어 먹으며 읽었다. 캐러멜 팝콘도 달콤했지만(수북히 두 그릇 먹었다 ㅠ.ㅠ) 유학에 건축사무소 실무까지 하셨던 분이 언제 이렇게 다방면의 책을 많이 읽으셨나 탄복했다. 그 지식들이 건축이 아닌 분야에 대한 오지랖이 아니라  본인이 느낀 공간디자인과 도시계획에 대한 생각을 전달하는 수단으로 적절하게 쓰이고 있어서 더 대단하다고 느꼈다.

"제1장 왜 어떤 거리는 걷고 싶은가"를 처음 보면서부터 감탄했다. 주관적인 인상이 아니라 연구자로서 논리적으로 정량분석을 통해 간결한 결론을 이끌어내는 과정이 정말 아름다웠다.  마야 린의 베트남 기념관 현상 설계 공모작에 대한 부분도 버금갔고.

 

건축에 문외한들을 대상으로 한 비슷한 책을 여러 권 읽어봤다. 외국사람이 쓴 책도 있었고. 하지만 이 책이 개중 가장 빼어나다. 특히 도시사회학에 관심이 있는 이라면 정반대쪽인 도시계획과 건축에서 출발해서 도시를 이해하고자 접근해온 이 책을 꼭 읽어볼 필요가 있다. 나중에 이 분이 우리나라의 주요 신도시들의 도시계획에 대한 비평을 책으로 엮어주시면 꼭 사봐야지.

정말 좋은 분석들이 많은데 이 책의 스포일러가 되고 싶지 않아서 몇 단락만 추려서 인용하느라 혼났다. 스승의 날 기념으로 이 책을 한 권 사서 교수님께 선물해드려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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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쪽

 

단위거리당 출입구 숫자가 많아서 선택의 경우의 수가 많은 경우를 '이벤트 밀도가 높다'라고 표현해보자. 단위거리당 상점의 출입구 숫자가 많다는 것은 세 가지 의미를 가진다. 첫째, 높은 이벤트 밀도의 거리는 보행자에게 권력을 이양한다. (중략) 따라서 거리에 다양한 상점 입구수는 TV채널의 수나 인터넷의 하이퍼링크 수와 같다고 할 수 있다.

 

둘째, 높은 이벤트 밀도의 거리는 보행자에게 변화의 체험을 제공한다. (중략) 우리는 TV를 시청하면서 특별히 볼 채널이 없을 때 2~3초에 한 번씩 채널을 바꾼 경험을 누구나 가지고 있다. 이런 경우 특별히 흥미로운 프로그램이 없더라도 서로 다른 채널의 화면 속 영상들이 새로운 시퀀스로 편집되어서 새로운 의미를 전달하기도 하고, 단순하게는 다른 채널로 바뀐다는 변화의 리듬감 때문에도 끊임없이 TV앞에 앉아 있게 된다. (중략)

 

셋째, 높은 이벤트 밀도의 거리는 매번 같은 거리를 가더라도 방문할 때마다 새로운 체험의 가능성을 높여 준다.

 

52쪽

 

도시의 형태와 재료 두 가지 요소를 가지고 나누어 본다면 도시는 네 종류가 나올 수 있다. 형태도 단순하고 재료도 단순한 경우(한국의 아파트단지), 형태는 복잡하고 재료는 단순한 경우(그리스 산토리니 섬), 형태는 단순하고 재료는 복잡한 경우(서울의 논현동 뒷골목), 형태도 다양하고 재료도 다양한 경우(서울의 청담동 명품 플래그샵 거리)이다. 몇 가지 사례를 살펴보면 형태는 다양하고 재료가 통일되었을 때 도시 공간이 다이내믹하고 좋아진다는 것을 알 수 있다.

 

80쪽

 

우리는 클럽에 갔을 때 문지기가 줄을 걸어 놓고 못 들어가게 막는 것을 볼 수 있다. 사실 대단한 곳도 아닌 음악틀어 놓은 지하실에 들어가는 데 막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왜 일까? 그 선을 넘어가는 사람과 못 넘어가는 사람 사이의 커다란 권력 구조 상의 차이를 느끼게 해주기 위해서다. 클럽의 경우 그 선은 단순히 입장료만 낸다고 해서 넘어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대부분의 경우 젊음과 외모로 판가름 난다. 우리가 유명 클럽에 들어가는 이유들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그 공간에 들어갔을 때 통과한 사람은 자신이 차별화된 권력을 가졌다는 것을 확인받는 것이다수 있기 때문이다.

 

93쪽

 

필자는 주택을 디자인할 때 건축주에게 항상 경사진 천장과 복층공간을 넣으라고 권한다. 이런 공간은 단순 면적 방식으로는 계산이 되지 않는 공간이다. 그래서 면적으로 계산하는 '평당 공사비'는 항상 높아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를 권하는 것은 분명히 더 좋은 공간이라고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최근에 만난 건축주는 이를 아시고, 진행하는 오피스텔을 실내 평면 면적보다는 체적과 외부공간으로 차별화를 주려고 하시는 분이셨다. 이미 시장 경제에서 공간의 질적인 면이 반영되기 시작했다는 면에서 좋은 분위기라고 생각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더 정확하게 우리가 소비하는 공간을 평가하려면 우리가 사는 집들도 이제 체적으로 계산해서 팔아야 한다.

 

164쪽

 

유럽의 대형 교회는 사실 규모가 크지만 항상 그 건축물의 크기와 비슷한 규모의 광장 앞에 있고 광장 주변으로 상점들이 위치해서 자연스럽게 시민을 위한 대형 외부 공간을 제공하게 된다. 이러한 공간 구조가 생긴 배경은 예배당을 지을 때 돌을 쪼아야 하는 작업 공간이 필요한데 광장이 그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작업장 주변으로 공사 인부들을 위한 가게들이 생겨나면서 도시가 형성된다. 수십 년의 성당 공사가 끝나면 그 곳은 빈 광장이 되어서 예배를 마치고 쏟아져 나오는 사람을 받는 도심 속의 중요한 외부 공간으로 만들어지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교회 건축물들은 대형 예배당만 있을 뿐 건물 주변의 광장 같은 외부 공간이 없다. 아주 가끔 빈 공간이라도 주차장 정도가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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