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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단 와터스/김한영 역] 미국처럼 미쳐가는 세계(2010)

독서일기/의학

by 태즈매니언 2016. 6. 20. 0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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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판 제목이나 부제만 보고서는 미국문화에 대한 흔한 비판서적으로 치부할 뻔 했다. 표지의 배경그림도 진부한 햄버거 사진이라(잘 보면 패티 대신에 회백질 뇌가 들어가 있다 --;) 이 책의 원제도 Crazy Like US지만, 좀 선동적이고, 부제인 The Globalization of the American Psyche가 이 책의 내용을 잘 담고 있다.


지난 며칠 간 타임라인에 아툴 가완디의 칼텍 졸업식 축사가 오르내렸다. 그는 축사에서 과학을 '하나의 전공이나 분야가 아니라 체계적으로 사고하겠다는 약속이며, 가설을 검증하고 사실을 관찰함으로써 지식을 쌓아가겠다는 맹세'라고 매우 아름답고 합축적으로 표현했다. 이러한 과학에 기반한 현대의학에 대해서는 그가 쓴 <Complicated>를 읽으며 조금이나마 이해하게 되었고, 전혀 몰랐을 때보다 더 신뢰하게 되었다.

저널리스트인 에단 와터스는 이 책에서 정신질환에 대한 미국의 진단 및 지료기준이 타 문화권에 그대로 적용될 수 없고, 그렇게 적용될 경우 오히려 문제를 야기할 수 있음을 비교문화적인 인류학 연구와 몇몇 임상 연구 사례를 통해서 비판하고 있다.

이중맹검법, 제멜바이스, 페니실린, 글리벡과 같은 현대의학의 성과로 인해 수명이 연장되고 삶의 질이 향상되었다는 사실이 뚜렸하고, 미국의 의료산업은 세계를 선도하고 있고 우수한 인력들도 집중되고 있는 상황에서 전세계 각국에서 원서 그대로 읽히고 현지 임상을 통해서 검증되는 미국의 정신의학협회가 발간한 '정신질환진단분류체계(DSM)'를 비판한다는 것이 처음에는 납득이 되지 않더라. 

일단 지구상의 모든 인류는 호모 사피엔스에 속하지 않나. 따라서 두개골의 용적은 사람들마다 차이가 좀 있겠지만 생물학적으로 뇌의 구조는 모두 동일하니.

그런데 수만명이 사망한 스리랑카 쓰나미 참사시 현지 주민들의 PTSD(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치료하기 위해 세계각지에서 파견된 치료상담사들의 활동 사례에 대한 글들을 읽으면서 DSM은 미국의 개인주의 철학, 마음과 육체의 이분법, 의식과 무의식의 프로이트적 이론원에 기반하고 있어 다른 문화권의 사람들에게 그대로 적용할 수 없다는 주장이 아예 터무니 없는 이야기는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고통을 표현하는 방식이 다르다면 현지 표현들이 갖는 문화적인 맥락을 알아야지 그들의 심리적인 외상을 제대로 진단하고 치료할 수 있을테니. 

손상이 개인의 마음에 있다면 정신 건강의 치유를 위해 한동안 의무와 사회적인 역할에서 벗어나 개인적인 상담을 받는 것이 유용할 수 있다. 하지만 손상이 사회적인 영역에 걸쳐 있다면 개인을 집단과 분리시켜 낯선 사람과 일대일로 상담하는 방식이 문제를 일으킬 수도 있음을 여러 사례를 통해 보여주는데 종교 및 타밀 반군과의 내전 등으로 인해 불안전한 갈등상황에 있는 스리랑카 싱할리 부족이 사용하는 온건한 돌려말하기의 맥락을 이해하지 못하고 '자신의 감정을 솔직하게 말할 것'을 권하는 표준치료법이 전쟁으로 남자들을 잃은 피해자와 가해자가 함께 사는 상황에서 얼마나 위험할지 수긍이 가더라. 

당장 우리나라에서도 얼마전 조현병(정신분열증)을 오래 앓았던 청년이 행동으로 인한 영아살해사건에 대해서 이 병을 '뇌 또는 사고 능력의 질환'으로 이해하는 사람들은 조현병 환자들은 공격적이고 지역사회에서 자유롭게 활보하게 놓아두어서는 안된다고 주장하는 경우가 많았고, 이를 '영혼 또는 내적 자아의 장애'로 보는 사람들은 조현병 환자들을 꺼리고 위험하고 예측할 수 없다고 여기는 정도가 덜하다.

사람들은 태어나서 오감의 자극과 언어를 통해서 자신의 사고체계를 형성해 간다. 언어학은 하나도 모르지만 언어는 각 지역 환경에 대한 대응 경험들을 축적하여 담고 있기 때문에 문화의 산물일테고. 푸코의 <감시와 처벌>에서 이미 이야기된 부분들도 있고, 가완디가 <Being Mortal>에서 환자의 심리에 무관심한 현대의학에 대해 비판한 부분들과 연관이 있긴 한데 제4부 다국적 제약회사의 우울증 치료제 마케팅에 대한 이야기는 결이 좀 달라서 빼는 것이 나았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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