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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 칼라니티/이종인 역] 숨결이 바람 될 때(2016)

독서일기/의학

by 태즈매니언 2016. 11. 29. 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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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새 너무 거시적인 책들을 읽다보니 체험에 바탕한 한 사람의 인생에 대한 책을 읽고 싶었습니다. 어쩌면 지난 주에 인상깊게 봤던 켄 로치 감독의 영화 <Jimmy's Hall>의 영향인 것도 같습니다.(이 영화를 봤더니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도 봐야할듯 싶네요.)


그런 마음으로 찾은 신간인데 신경외과 임상교수의 자리를 목전에 둔 상태에서 자신이 치명적인 폐암에 걸린 사실을 알게된 저자 폴 칼라니티(저보다 겨우 두 살 많은...)가 귀중한 투병기간을 쪼개서 써낸 책입니다.


이국종 교수님의 추천사 중의 다음 구절이 이 책이 갖는 가치를 잘 표현한 말 같습니다. "임상의학에서의 환자 치료는 과학이라는 학문적 영역과 인간관계를 핵으로 돌아가는 철학의 본질에 접근한다." 물론 이러한 미덕을 가진 책들은 꽤 있는듯 싶지만 신경외과 임상의학과 고난의 끝이 보이는 순간에 폐암 환자가 된 청년의사의 경험을 담고 있어서 다른 책을 통해 얻기 힘든 성찰들을 접할 수 있었습니다.


고통스러운 투병 중 한정된 체력과 맑은 정신인 시간때문에 급하게 써내려갔을 터인데도 불구하고 유려한 서술을 보니 원서로 다시 읽고 싶다는 생각도 드네요. 일단 제목인 <When breath becomes air> 이 네 단어에 문학과 철학, 과학, 생물학에 깊은 관심을 가졌던 폴 칼라니티가 이들의 교차점인 의학에서 얻은 경험과 지식이 녹여진 느낌을 받았습니다.(속지에서 인용한 <카엘리카 소네트 83번>의 아름다운 문장과 같이 읽으시면..)


여담으로 아무리 집중적인 훈련이 필요한 레지던트라지만 취업규칙상으로도 주당 88시간 근무인데다가 실제로는 저자처럼 휴일도 없이 매일 새벽 여섯시에 출근해서 자정무렵에 퇴근하는 생활을 7년씩이나 계속한다면 대부분 몸이 건강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의학의 최첨단에서 벌이는 사투를 위해서는 축척의 시간을 최대한 단축하고자 하는 압박이 크겠지만 환자들이 보다 덜 숙련된 의사들에게 치료를 받게 되더라도 의료인들의 건강을 위해서 주당 최대노동시간과 연속근로시간의 제한이 법률로 강제되어야 하지 않을까 싶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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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쪽


나는 운이 좋게도 스탠퍼드 대학원의 리처드 로티 교수에게서 배웠다. 당대 최고의 철학자로 인정받는 그의 지도를 받으며, 모든 학문 분야란 인간의 삶을 특정 방향으로 이해하는 일련의 도구, 즉 어휘를 만들어내는 것이라는 관점을 갖게 되었다.


97쪽


병원에서의 첫날, 최고참 레지던트는 내게 이렇게 말했다. "신경외과 레던트들은 최고의 외과의가 아니라 이 병원에서 최고의 의사가 되는 것을 목표로 해야 합니다. 우리가 당신을 자랑스럽게 느끼도록 해주세요." 주임 교수는 병동을 지나가며 이렇게 말했다. "늘 왼손으로 식사하도록 하게. 양손을 다 잘 쓰는 법을 배워야 해."


120쪽


커다란 그릇에 담긴 비극은 숟가락으로 조금씩 떠주는 것이 최고다. 한 번에 그릇을 통째로 달라고 요구하는 환자는 소수에 불과하고, 대다수는 소화할 시간이 필요하다.


129족


환자는 의사에게 떠밀려 지옥을 경험하지만, 정작 그렇게 조치한 의사는 그 지옥을 거의 알지 못한다.


178쪽


의사 시절 나는 중병에 걸린 환자들이 마주친 문제들을 어느 정도 이해했었고, 바로 이런 순간을 그들과 함께 깊이 파고들기를 원했었다. 그렇다면, 죽음을 이해하고 싶었던 청년에게 불치병은 완벽한 선물이 아닌가? 죽음을 실제로 겪는 것보다 죽음을 더 잘 이해할 수 있는 방법이 어디 있겠는가? 하지만 나는 그것이 얼마나 힘들지, 또 얼마나 많은 영역을 탐구하고, 조사하고, 정리해야 할지 전혀 모르고 있었다. 내가 생각하는 의사의 일이란 두 개의 선로를 잘 연결해서 환자가 순조로운 기차 여행을 하도록 돕는 것이었다. 하지만 나 자산의 죽음을 대면하는 일이 이토록 혼란스러울 줄은 미처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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