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막 컬리넌의 <야생의 법:지구법 선언>. 이 책을 펴내는데 이바지한 분으로부터 선물받은 책이라 내용에 대해서 이러쿵 저러쿵하는게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런 책을 읽은 경험을 공유하는 것 자체가 선물에 대한 감사 표시라는 생각이 들어 마음을 바꿔먹었다.
이 책은 법철학 서적이라고 봐야하는데, 반증가능한 이론의 체계로서 가설과 검증이 구분되지 않고 종교철학에 가까운 느낌을 주는 부분도 꽤 있어서 수긍하며 읽기는 어려웠다. 하지만 전혀 다른 시각을 접하는 경험은 할 수 있었다.
저자 코막 컬리넌은 남아공 출신으로 젊은 시절 아파르트헤이트 정책에 저항한 법률가였다고 한다. 남아공 백인들이 자신들에게 남아공 흑인을 억압할 자명한 권리가 있는 것처럼 행동했던 착각이 깨진 것처럼 인간이 다른 종 및 자연에 대한 우월성과 지구를 지배할 권리를 가지고 있다는 시각도 깨져야 한다고 보는 관점에는 그의 성장 배경이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된다.
이런 정도야 다들 어느 정도 귀동냥해봤을 시각이다. <늑대와 춤을>이나 <아바타> 같은 영화나 서구문명과 접촉한 수렵채집 민족들의 잠언집에도 바탕에 깔려 있는 생각이니.
이 책 <Wild Law : A Manifesto for Earth Justice>에서는 동물과 식물은 물론 강이나 산과 같은 자연물까지도 권리의 주체로 보는 관점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그나마 다들 가장 공감이 갈만한 반려동물을 떠올려보면 우리나라 법률상 동물은 물건 내지 동산이다. 즉 소유자가 자신이 원하는 대로 사용 수익 처분할 수 있는 재산권의 객체일 뿐 반려동물에게는 어떠한 종류의 권리도 없다. 물론 동물보호법이 제정되어 있지만 이는 동물에게 권리를 부여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일반적 행동의 자유권을 일부 제한하는 법률일 뿐이다.
저자는 과거 함무라비 법전과 로마법에서도 노예를 죽이는 것은 살인이 아니었고 단지 재산상 손해배상 책임이 발생할 뿐다는 점(결국 노예제가 폐지되고 동등한 인간으로서의 권리가 인정됐다), '법인'이라는 개념 역시<기업, 인류최고의 발명품>의 주장처럼 '발명'된 것임을 근거로 자연물에게 '법적으로 보호받는 이익'으로서의 권리를 부여하는 아이디어가 실현되는 시대가 올 수도 있고 주장한다.
찾아보니 뉴질랜드는 1999년 세계 최초로 유인원에게 기본권을 부여했고, 독일은 2002년 동물에게 헌법상 권리를, 스페인도 2008년 유인원에 대한 생명권을 인정한 것처럼 일부 국가들이 (일부)동물에 대해 법적인 권리를 부여하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이번 브렉시트 투표 결과에 비통해하는 투표권을 갖지 못한 어린이와 청소년들 처럼 비탄조차 할 수 없는 앞으로 태어날 후세대에게는 어떠한 권리도 인정되는 않는 현실을 보자. 난 이제 막 동물권에 대한 논의의 초입 단계에서 강의 권리와 나무의 권리까지 고민할 필요가 있다는 저자의 권리론을 진지하게 받아들이기는 어려웠다.
1971년 크리스토포 스톤 교수가 <나무도 원고적격을 가지는가>(꼭 읽어보고 싶다.)라는 책에서 다뤘다는 Sierra Club v. Morton, 405 U.S. 727 (1972)를 찾아보니 시에라 클럽이 디즈니의 스키리조트 조성 공사로 인해 아무런 법률상 이익의 침해를 받지 않았다고 하여 청구적격을 갖지 못한다고 기각된 판례다. 다만 더글러스 대법관이 법인이 사람으로 의제되어 권리의무의 주체가 된 것처럼 Inanimate objects 또한 권리의 주체로 볼 수 있다는 소수의견이 있었다고 한다(이후에 시에라 클럽 회원들이 원고가 되어 다시 제소했단다). 비슷한 맥락에서 천성산 원효터널 공사 착공금지 가처분에 대한 재항고 절차에서 대법원은 도롱뇽의 소송수행능력을 부정하여 청구적격을 불인정하였다.
'물아일체'와 같은 종교적인 교리 설파가 아닌 학문적인 논의로 생물과 자연물을 권리 주체로 인정하자면 권리의 주체에 대한 인권이론의 한계를 확장해야 한다는 이야기인데, 아직 LGBT들의 인권도 대부분의 국가에서 인정되지 않고 있는 상황에서 이론적으로 인권을 일종의 지구 공동체의 모든 성원들에 대한 신식민주의(Neo-Colonialism)으로 취급하는 급진적인 담론이 자기 만족을 넘어서 설득력을 가질 수 있을까? 일단 나는 아래에 인용한 185페이지에서 핵심적으로 제시한 저자의 주장에 수긍할 수 없었다.
다만, 2008년 9월 공포된 에콰도르 헌법 제7장 제72조는 '생명이 재창조되고 존재하는 곳인 자연 또는 어머니 대지는 존재할 권리, 지속할 권리, 그리고 생명 유지에 필수적인 자연의 순환과정과 구조, 기능 및 진화과정을 유지하고 재생할 권리를 가진다."라고 명시하고 있다고 하니 먼 미래에나 생각해볼 주장이라고 부정하지는 못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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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4~185쪽
지구법학의 측면에서, 일단 강이 흐를 수 있는 기본적 지구권이 위협받게 된다면 법체계는 그 권리를 위협하는 인간의 행위를 금지해야 한다. (중략) 반대로 강이 자주 범람해 땅 없는 사람들이 강둑을 따라 지어놓은 오두막 판잣집을 쓸어버려 사람들이 죽었다고 치자.(이곳은 도시지역 내에서 접근 가능한 물을 가진 개방지를 발견할 수 있는 유일한 지역이기에 그들은 여기에 정착했다.). 그러면 강은 수로화돼야 하는 것일까? 그것은 강의 권리를 침해하는 것이 아닐까? 수로화되더라도 강이 흐를 수 있는 권리(지구권)은 유지되므로 수로화는 인권의 보호를 위해 정당화될 수 없는 것일까?
이 물음에 대한 대답은 무엇을 강의 핵심 특서응로 볼 것인가에 따라 달라진다. 다행히도 강은 자신의 특성을 어느 정도 발신하고 있다. (중략) 강은 자신이 파괴한 것에 대한 보상으로 영양이 풍부한 고운 모래를 공급하고, 홍수범람원을 자신의 영토로 획정한다. 달리 말하면 범람하는 강은 확실히 자신의 특성에 따라 그렇게 하는 것이다. 이는 강에게 우선권을 주어(적어도 상습적인 홍수범람원 내에서는), 사람들은 그 밖의 공간에서 거처를 제공받아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범람을 방지하고자 강을 수로화하는 것은 땅돼지가 재칼 접근 방지용 펜스 밑에 구멍을 파지 않도록 하기 위해 총으로 쏴 죽이는 것과 다르지 않다. 땅돼지가 땅돼지인 한 땅을 팔 것이고, 강이 강인 한 범람할 것이다. 이는 생태계에 기여하는 그들의 핵심 본성의 일부로, 야생의 법이 보존해야 하는 바로 그 야생성이다.
지구법학은 우리가 땅돼지를 절멸시키거나 강을 더 이상 강이 아닌 사실상 콘크리트로 박스화된 하수관이 될 정도로 강을 통제하는 그러한 방식으로 대응하지 않을 것을 요구한다. 지구법학은 강이나 땅돼지의 독특한 특질을 인정하고 축복할 수 있는 야생의 법을 우리가 발점시키고 또 실행하기를 요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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