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민들에게 스스로 헌법공부를 하게 만드는 시국에 광화문이 내려다보이는 까페에서 이 책을 마저 읽었습니다. 사람들이 꾸준히 모여들고 있네요. <블루 드레스>는 남아공의 과도 헌법 입안에 기여하였고, 과도헌법으로 출범한 진실화해위원회라는 제도를 만들고 운영한 주체 중 한 명이자 초대 남아공 헌법재판소 재판관으로 15년간 재직한 알비 삭스 재판관이 은퇴 후 펴낸 에세이입니다. 법이념을 다시 생각하게 만드는 책을 참 오랜만에 읽네요. 원제는 <The strange alchemy of life and law>이지만 번역판 제목인 "블루 드레스"가 잘 지은 제목같더군요. 책의 초반부에 나오는 필라의 이야기와 주디스의 편지에 마음이 찡해져서 책을 읽는 내내 블루 드레스를 떠올리며 책을 읽었습니다.
다만, 알비 삭스 재판관이 책에서 언급한 결정례 중에 영업의 자유와 시장경제에 대한 정부개입의 한계, 조세정책, 이웃국가에서 쏟아져오는 불법이민자의 기본권에 관한 사건이 없어서 아쉬웠습니다. 사하라 이남에서 독보적이었던 1인당 GDP와 인간개발지수를 보여줬던 남아공이 나쁘지 않았던 산업구조에도 불구하고 15년간 연평균 GDP성장률이 3% 정도로 경제성장 성과가 썩 좋지 못한 것을 보면 시장경제가 성공적으로 작동하지 못하는 듯 해서요.
물론 이는 기본적으로 입법부와 사법부의 영역이지만 남아공 헌법재판소의 폭넓은 권한(책에서 변형결정에 관한 재량행사를 보니 우리나라 헌재보다 훨씬 강력해보였습니다.)으로 잘못된 결정을 되돌리는 것은 가능하다고 생각했거든요. (사법부에 대해 너무 과한 요구를 한 것 같긴 하네요.)
그리고, 그가 말하는 '우분투-보토'와 '공식 사과'(amende honorable)가 아파르트헤이트 종식 후의 남아공에서는 현명한 정책이었다고 생각하지만 현대사회의 사법제도 일반에 소위 '회복적 정의'가 도입되어야 해야하는지는 의문입니다. 재레드 다이아먼드 교수님께서 <어제까지의 세계>에서 서술한 것처럼 그러한 시각은 기본적으로 가해자(집단)와 피해자(집단) 간의 지속적인 상호작용과 공존이 제약조건이었던 부족사회나 군장사회(chiefdom)에 맞는 제도가 아닐지. 일회적인 관계에서는 가해자나 피해자는 감정소모없이 익명으로 돌아가고 변호사와 법관 보험회사가 사무로 처리하는 게 낫다는 다이아먼드 교수님 의견이 맞는 것 같아서요. 물론 청소년사건처럼 회복적 정의가 필요한 영역도 있다는 점은 동의합니다.
-----
69쪽
가해자에 대한 형사기소를 면제해주는 것 외에 다른 대안은 피해자에게 기소할 수 있는 추상적 권리를 있는 그대로 보장해주는 것밖에 없다. 그러나 피해자들은 기소를 성공적으로 유지시킬만한 확실한 증거가 없다. 이는 피해자 가족들이 피해자 본인에게 실제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정확히 모른 채 계속 그대로 살아가도록 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그것은 진실을 향한 피해자들의 원한과 슬픔을 영구화하는 것이다. 그것은 또한 가해자들을 두려움과 죄책감, 불안감, 때론 공포 속에 떨며 평생을 살아가도록 하는 것이다. 그들은 신체적으로는 자유롭겠지만, 새 나라의 새 헌법질서 속에서 활동적이고 창조적인 온전한 한 사람의 시민으로 살아갈 수는 없을 것이다.
185쪽
패러디는 태생적으로 역설적이다. 좋은 패러디는 창조적이면서 동시에 파생적이고, 모체이면서 동시에 기생체다. 만약 패러디가 원본을 충분히 회복하지 못한다면, 사람들은 그 패러디가 풍자하고자 하는 원본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고 그 안에 숨어있는 유머를 이해할 수 없게 된다. 반대로 패러디가 원본을 지나치게 차용하면, 그 패러디가 재미있든 없든 독창성이 없고 도둑질만 했다는 이유로 법률을 위반한 것으로 여겨질 수 있다. 패러디와 상표는 이렇게 역설적인 관계에 있다.
댓글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