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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크 에드워드 루이스/김한신 역] 하버드 중국사 당 : 열린 세계 제국(2012)

독서일기/중국

by 태즈매니언 2019. 6. 9. 2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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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대로 된 중국통사를 읽어보지 못해 선택한 게 영미권 학계가 성취한 2000년대까지의 성과를 모은 <하버드 중국사> 시리즈. 그 중에서 처음 보고싶었던 건 당나라.

 

수양제가 건설한 운하를 통해서 처음으로 정치와 군사의 중심지 화북과 강남의 생산력이 제대로 이어진 당나라가 이후의 중국 통일왕조가 갖는 특징들을 형성해냈기 때문이다.

 

사서들이 주로 다루는 궁내정치와 변란 위주의 정치사로 흐르지 않고, 경제사와 사회문화사 비중을 적절하게 유지하고 있다.

 

환관들이 내탕금을 관리하고 추밀원의 일원으로 관리를 감찰한 역할 외에 안사의 난 이후 황제 직속의 기동력있는 신책군을 지휘하면서 군권까지 장악했었구나. 절도사들은 서로마 후기의 속주 총독들 같고.

 

책 덕분에 이러한 환관-중앙 관직을 장악한 화북 출신의 중앙귀족-농업기술 개량과 개간을 통해 향촌을 장악한 토호-염철전매와 운하관리를 통해 제국을 유지하면서 본인도 치부한 하급지방관료- 면세혜택을 누린 도교와 불교사원, 육로와

해로를 통해 당제국으로 모여든 외국인들이 어우러졌을 당대 정관의 치를 상상해볼 수 있었다.

 

당태종이 절강성에 사탕수수로 만드는 설탕 제조 시설을 설립하였고, 이러한 사탕수수 설탕 제조 흔적이 북쪽의 돈황에서도 발견되었다. 내가 알던 것보다 당나라 시절 경제적 발전수준이 높았고, 명나라 시대와 크게 차이가 나는 것 같지 않았다. 조선 후기 자본주의 맹아론 이야기하시는 한국사 학계 분들이 언급하는 성취 수준을 훨씬 상회하는 기록들도 많고.

다 읽고 나니 드는 의문이 왜 당왕조는 강남의 운하와 직접 결되지 않아 물자의 수송에서 지극히 불리했던 수도 장안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는지. 하다못해 낙양과 장안을 옮겨다니지 않았더라도 국력 손실이 적었을텐데.

 

그리고 과거를 통해 시문을 짓는 능력을 강조하고 좨주와 급제자 간의 사제 관계를 형성하여 구축된 중앙관료들이 제국이나 황제 개인에게 아무 쓸모도 없었던 것 같은데, 과거의 과목을 송나라 때의 진량과 섭적같은 공리주의 유가의 가르침(<퍼거토리> 만세!)이 시대를 앞서서 주창되서 당나라의 과거제에 적용되었더라면 어땠을까 싶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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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쪽

 

화분(꽃가루) 계측은 산림이 점차 강 유역과 언덕 사면에서 사라지고 수도 지역의 북반부에서는 완전히 자취를 감추게 되었음을 보여 준다. 산림 벌채에 뒤이은 토양 침식은 수도에 물자를 운반하는 운하에 토사를 더욱 퇴적시키는 결과를 초래하였다.
따라서 수도 장안의 지리적 위치는 그것과 관련된 비용과 인구의 증가와 더불어 환경을 악화시키고 경제를 퇴보시키는 그릇된 결과를 초래하였다.

 

42쪽

 

황하의 중심부에서 관개와 운송 사이의 긴장관계는 안녹산의 반란 이후에 그 지역의 절도사들이 중요한 정치적 인물이 되고부터 더욱 심화되었다. 절도사들은 그들의 군대를 먹이고 월급을 주어야 했기 때문에 중앙정부로 납부해야 하는 곡식과 세금을 보류하였고 어느 때보다도 더 많은 수량의 강물을 (농업을 위한) 관계로 전용하였다. 이것은 때때로 운하의 수위를 너무 낮추어 아무것도 운반할 수 없게 만들었다.

 

266쪽

 

소의 발굽은 밑에 있는 경토층을 더 단단하게 다져 줌으로써 토양이 물을 흡스하지 못하게 만들었고, 반면에 쟁기는 상층부의 토양을 끊임없이 분쇄시켜 주었다. 다음으로 롤러(써레인듯)는 그 진흙을 부드럽게 만들어서 모내기를 더욱 손쉽게 마들었다. 건조지대와는 달리, 남부 지역의 논에서 매년 반복되는 쟁기질은 그 토지의 생산성을 높여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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