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에 일가견있는 분들께서 다들 손꼽아 추천하셨던 책이라 전부터 꼭 읽고 싶었는데 이번 연휴를 맞아 드디어 다 읽었습니다. 빌렸다가 그냥 반납한 게 두 번은 있는 것 같은데 왜 이런 책을 못알아보고 그랬는지 한탄스러울 지경이네요. 소장하고 싶은 책이라 새로 살 예정이고요.
책의 내용들도 좋지만 전문성의 수준을 희생하지 않는 가독성 측면에서 이런 책은 정말 드물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뛰어났습니다. 요즘 학문들이 워낙 깊게 파고 들어가다보니 일반인에게 자기의 연구내용에 대해서 쉽게 그리고 핵심 내용을 고스란히 전달하는 건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조너선 하이트는 마치 독자 스스로 진화심리학 중 도덕심리학을 전공하고자 하는 석사과정 신입생이 되어서 랩에서 어떤 연구를 해왔는지 지도교수인 그로부터 차근차근 설명을 듣는 것처럼 느끼게 해주더군요(대학원 지도교수가 실제로 이런 설명을 해주는지는 모르지만요).
책의 내용은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눠집니다. 제가 이 책을 더 각별하게 읽었던 건 이 책을 읽으면서 제 도덕관이 얼마나 편협한지 제대로 깨닫게 되어서인 것 같습니다. <바른 마음> 제5장은 제가 WEIRD(Western, Educated, Industrialized, Rich, Domestic)에 속하는 한정된 문화권(Rich는 전세계 평균기준으로 --;;) 속에 사는 사람이고 세상에는 다른 도덕체계가 많다는 사실을 거부할 수 없게 무장해제 시켰습니다.
제9장을 읽으면서 인간의 진화가 현생인류의 출현이후에 멈추거나 느려지기는커녕 오히려 문화와 공진화하면서 가속도가 붙어왔다는 사실도 새롭게 알게 되었고요.
제10장에서 하이트는 군집스위치라는 개념을 통해 왜 인간의 마음은 90%가 침팬지이고 10%가 벌이라고 묘사했는지 설득력있게 설명합니다.
그동안 저는 도킨스에 감화되어 신무신론자의 주장을 따라왔습니다. 그래서 종교는 일종의 바이러스 또는 기생충으로 자신의 이익을 위해 숙주인 인간의 인지 체계의 부산물을 이용하고 있기 때문에 과학자와 인문주의자를 비롯하여 이 전염병에 걸리지 않아 여전히 이성적 사고를 할 수 있는 소수의 사람들은 힘을 합쳐 주문을 깨고, 망상을 걷어내고, 신앙을 종식시켜야 한다는데 동의해왔지요. 하지만 종교는 믿음의 문제가 아니라 구성원의 헌신을 이끌어내고 무임승차자를 억제하는 집단선택에서 효율적으로 작용해온 도덕의 외골격이라는 제11장에 나오는 하이트의 설명을 반박하기 어려웠습니다.
제12장의 정치심리학 분석을 통한 좌파와 우파의 도덕체계 분석은 이미 제 자신이 약 2년 전부터 기존의 전형적인 진보주의자의 도덕매트리스에서 점차 벗어나오고 있었음을 확인하는 데 큰 도움을 줬습니다. 그런데 하이트가 말하는 것처럼 진보주의자가 보수주의자를 이해하는 것은 반대의 경우보다 어려운 것 같습니다. 그만큼 제가 더 노력을 해야겠지요. 이 부분에서 페이스북을 통해 참 많은 도움을 받고 있습니다(댓글없이 좋아요만 누르고 있는 우파 페친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책을 읽고 보니 부정청탁금지법이라는 진보주의자의 정책이 좋은 의도에도 불구하고 보수주의자들이 소중하게 생각하는 우리나라의 사회적 자본을 훼손하지 않을까하는 걱정이 스쳐가네요. 공공기관에 대한 경영평가가 좋은 취지와 긍정적 효과(비정규직 차별에 대한 감점부여, 양성평등 취업규칙 개정유도 등)에도 불구하고 국민들에게 아무런 효용이 없는 무의미한 사업 겉포장과 병풍치기에서 한몫받으며 먹고사는 사람들을 만들어낸 것을 봐왔습니다.
국립대학 학자들에게 외부강의를 사전에 신고하게 하고 20~30만원의 허용된 수입금을 초과해서 수령하지 앟았는지 감시하고, 공무원들이 자신이 발주하는 프로젝트의 성공을 위해 입찰응모예정자들을 만나서 과업지시서의 완성도를 높여가면서 민원인과 결탁하지 않았는지 의심하는 주변의 의심을 해소해야하는 상황까지 감당하게 만드는 것들. 이런 규제들이 공동체에의 헌신과 고귀함에의 헌신이라는 사회적 자본을 감소시키는 부분이 분명히 있을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연구의 성과를 사회에 나누지 않는 학자, 절차만 지키는 공무원으로 과연 충분한 것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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