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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나 로진/배 현] 남자의 종말(2012)

독서일기/심리뇌과학

by 태즈매니언 2016. 12. 22. 2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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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묵님께서 추천해주신 해나 로진의 <남자의 종말> 다 읽었습니다. 시간이 늦어서 서평은 나중에 쓰려고 했는데 침대에서 뒤척거려도 잠이 안오네요.

저자 해나 로진은 남자들이 사회경제적으로 도태되고 있고, 여자들이 집단적으로 소득과 사회적 지위를 획득하는 현상을 다양한 사례를 통해서 보여줍니다.로진은 많은 영역에서 그리고 전세계적으로 젠더 격변이 임계점을 넘었다고 주장합니다. 기업 리더 등 남은 영역에서도 머지않아 넘게 될 것이라 전망하고요. 

에이미 추아의 타이거맘 테마처럼 센세이셔널한 접근이라는 느낌이 들지만 로진이 드는 논거들이 설득력이 없다고 물리칠 자신이 없었습니다. 딱히 개별 사례들의 타당성을 검증해야겠다는 생각도 안들었고요. 당장 제가 대학다닐 때도 여자 동기들이 평균적으로 훨씬 똑똑하고 성실했으며, 여성인 지인들이나 직장동료들이 불리한 차별과 육아 및 가사 부담을 안고서도 자기 입지를 구축해가는 모습을 많이 보고 있거든요. 

여성들이 ‘사회적 지능과 열린 소통, 차분히 앉아서 오래 집중하는 능력’ 등에서 태생적으로 남성보다 우위에 있어 현대사회에 잘 적응하는지는 뇌과학의 전초기지에 있는 연구자들에게 맡기렵니다. 전 요즘 십대나 이십대의 문화도 모르는데다 육아도 안하고, 저나 지인들이 인구 모집단에서 대표성이 있는 것도 아닌 듯 하니까요.

법정출산휴가나 유급육아휴직제도도 없지만 시간제 일자리가 많고 노동시장이 유연한 데다 가정 친화적인 문화가 자리잡은 미국과 한국은 사정이 다르지만 대신 한국엔 징병제가 있죠. 그래서 한국이 미국의 젠더 갭의 유사한 추세를 단순히 후행한다고 단정하긴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바르바로이, 흉노, 흑인, 쿨리, 生口, 달리트(불가촉천민) 등 역사상 인간들이 열등한 존재라고 비웃었던 어떠한 타집단에 대한 차별도 영속적이지 않았고, 특정한 민족이나 부족이 보편적으로 우수한 집단으로 검증된 바도 없는데 어떻게 인류의 절반이(그게 여성이건 남성이건) 일방적인 우위를 유지할 수 있을까요? 

그리고, 여자들은 억울하겠지만 남자들이 지난 몇십 만년 동안 가졌던 우위를 같은 식으로 누리는 것도 요시나가 후미의 <오오쿠>에서 나오는 적면포창같은 특성 성별만 감염되는 치명적인 질병이 발생하지 않은 이상 불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한 두 세대가 흐르면 남자들도 배우겠죠. 게다가 수요공급의 법칙도 작동할테니까요. 

저는 지금 1896년에 태어나 1948년 행려병자로 사망한 여성 나혜석씨에게 반세기 남짓 지난 지금 이런 책이 나왔고, 이 책에 한국여성들 이야기가 나온 걸 보여주고 싶을 뿐이에요. 조선 최초의 서양화가이자 최초로 구미를 여행해본 여성이라 칭해지는 반도 최초의 페미니스트께요.

김우영과 결혼하면서 네 가진 조건을 걸었고, 그 중 하나인 요절한 약혼자 ‘최승구의 묘지에 비석을 세워줄 것’이라는 약속을 지키기 위해 신혼여행지를 전남 고흥에 있는 옛 남친의 묘지로 정했던 여성. 1930년 이혼 직후 ‘이혼의 비극은 여성 해방으로 예방해야 하고 시험 결혼이 필요하다.’고 했던 여성.

그녀에게 당신이 살던 때로부터 백년도 채 안지나서 조선땅에서 <남자의 종말>이라는 책이 공감을 얻고 있다고. 능력으로 평가받는 많은 영역에서 여성들이 약진하고 있어서 이젠 자라날 아들들이 걱정되는 시대라고 전해주고 싶네요. 

“현모양처는 이상을 정할 것도, 반드시 가져야 할 바도 아니다. 여자를 노예로 만들기 위하여 부덕(婦德)을 장려한 것이다.” - <학지광 1914년 12월호>
“오직 기생 세계에는 타인 교제의 충분한 경험으로 인물을 선택할 만한 판단의 힘이 있고 여러 사람 가운데 오직 한 사람을 좋아할 만한 기회가 있으므로... 조선여자로서 진정의 사랑을 할 줄 알고 줄 줄 아는 자는 기생계를 제외하고는 없다고 말할 수 있다.(1923년 6월)”
“결혼한 후에 다른 남자와 좋아하며 지내면 부도덕적이라기보다 오히려 자기 남편과 더 잘 지낼 수 있게 하는 활력을 얻는다.(1928년 제네바 체류 중 작성한 편지 중)”

책 중간(134쪽)에 <인생은 행운, 사랑은 불운: 일정하지 않은 수입의 충격이 결혼과 이혼에 미치는 영향(Lucky in Life, Unlucky in Love: The Effect of Random Income Shocks on Marriage and Divorce>란 연구 제목이 나오는데 빵 터졌습니다. 저도 제 글에 이런 매혹적인 제목을 붙여봤으면 좋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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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8쪽

바로 이것이 새로운 시소(seesaw) 결혼이 작동하는 방식이다. 부부들은 젠더평등이라는 외적인 잣대로 평가 받는 정의와 공정성 따위를 추구하지 않는다. 그들이 좇는 것은 개인의 자기성취이며, 배우자 각자가 결혼 생활 중 각자 다른 시점에 자기 성취를 이루고자 할 수 있다. 이런 삶의 방식이 이루어진 시대는 창의적인 중산층이 유동적으로 직업을 바꾸고, 같은 직장에서 평생 일하기를 아무도 기대하지 않게 된 때이다.

248쪽

가장 정확한 범죄 척도인 사법통계국의 ‘전민범죄피해조사’는 강간을 비롯하여 여성을 대상으로 하는 폭력 범죄가 지난 35년 동안, 특히 과거 10년 동안 급격하게 감소했음을 보여 준다. 과거 12년 동안, 성인 및 청소년 여성들을 대상으로 한 강간, 폭력, 미수, 위협을 포함해 공식으로 보고된 모든 폭력 범죄의 실현율이 급락했다. 

330쪽

어느 면접관은 이렇게 물었다. “상사가 커피를 타 오라고 시킨다면 그렇게 하겠습니까?” 용아가 대답했다. “상사가 제게도 커피를 타 준다면 저도 타겠습니다.”

“그 사람들이 그런 질문을 했다는 사실만으로도 한계가 있는 조직이라는 게 보였어요. 한국 기업에는 서열이 너무 많아요. 취업하면 문서 복사하는 일부터 시작해야 할 거예요. 좋은 학교를 나와 문서 복사나 하고 싶지는 않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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