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자기 전에 몇 페이지만 보려고 집어들었는데 책을 덮고 나니 새벽 세 시네요. 조갑제 대표님 개정판도 절판이니 제발 추가 출판 좀 해주세요. 책 구하기 정말 힘들었습니다. ㅠ.ㅠ (출근 관계로 서평은 나중에. -> 이어서)
탐사보도의 걸작이더군요. 실력있는 기자가 4개월 동안 하나의 주제를 집중해서 파면 이런 걸작이 나오는군요. 저자가 "글을 잘 쓰기보다는 많이 발라 써야 한다. 좋은 글을 쓸 수 있는 확률이 높아진다. 홈런을 치려면 스윙을 많이 해야 하는 것과 같다."는 말을 뒷받침할 사례를 스스로 제시하고 있습니다.
이 책을 특히 언론인과 법조인 그리고 그 길을 생각하는 분들에게 꼭 권하고 싶습니다. 사형제 문제에 대해 관심이 있는 분들도 읽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사형은 평화시에는 유일한 '합법적 살인'이고, 결과만 보면 사형선고를 내리는 판사는 데쓰노트에 피고인의 이름을 적는 '살인자'가 되는 셈이기 때문이죠.
사형제 폐지에 대한 논란은 최근으로 올수록 거세지고 있지만 우리나라가 마지막으로 사형을 집행한 것이 1997. 12. 30. 유영철씨라서 이미 20년이 지난 지금은 사형이 실제로 어떻게 결정되고 집행되는지에 대한 구체적인 느낌을 받지 어렵죠. 이 책은 1979년 사형을 당한 오휘웅씨를 중심으로 하여 1987년 출간 당시까지 있었던 여러 케이스를 다루고 있어서 지금 나오는 책들보다 도움이 됩니다.
이 책은 첫 문장부터 독자에게 충격을 줍니다. '끔찍한 살인 현장을 본 사람들은 사형 존치론자가 되고 처연한 사형집행을 목격한 사람들은 사형 폐지론자가 된다고 한다.'
이 책은 사회부 경험이 많은 민완기자의 집요한 취재경험들을 담고 있어 매우 구체적이고 생생합니다. 당시 당사자의 실명을 익명으로 처리하지 않고 있어 프라이버시 침해가 걱정될 정도로 말이죠. 수사 단계의 경찰, 기소단계의 검찰, 수사 및 공판 단계에서 진술한 증인들, 1심~3심 재판부와 심급별 변호인들, 재심신청을 담당했던 재판부의 행적이 고스란히 드러나 있지요.
심지어 저는 오휘웅씨 사건과 이 책에서 소개하고 있는 별건고소로 구속기간까지 연장하면서 고문을 방관하고, 짜맞추기 수사로 억울한 피의자 또는 피고인을 만들어낸 사건들의 수사검사, 기록상의 사실관계를 다퉈보지도 않고 무성의한 정상 변론에 치중했던 변호사, 기록을 제대로 살펴보고 판결서를 썼는지 의심되는 판사들의 이름과 기수, 학력 등을 토대로 현재도 변호사로 활동하고 있는 이들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지금도 서초동, 창원지법 등등에 사무실을 걸어놓고 있더군요. 다들 하나같이 자기 사진은 공개하지 않고 있었고요.
오휘웅씨의 대법원 국선 변호인이었던 이범렬 변호사(판사 재직 중 사법파동 때 퇴직)께서 하신 "나도 변호사를 해보니까 비로소 사물을 보는 새로운 눈이 생기더라.", "미국처럼 우리나라도 변호사 중에서 판사가 선임되야 한다.", "당해보는 입장에 한 번 쯤 서본 사람이라야 당하는 사람들의 심경을 이해할 수 있다."는 말들도 머리에 콱콱 박히고요.
제10장 <고문과 자백>은 왜 형사소송법이 지금과 같은 체계를 갖추고 있는지 그 이유를 보여주는 사례들로 가득합니다. 이 책 중에서도 단 한꼭지만 꼽는다면 이 챕터는 꼭 읽어보시라고 권하고 싶네요. 범인조작의 공식, 고문수사를 자행하는 경찰 수사관들의 심리와 제약요건, 허위자백에 속은 저자 본인의 경험 등을 말하는데 '수원역 노숙소녀 살인사건', '삼례 나라슈퍼 강도치사' 사건의 재심에서 피고인들의 무죄를 밝힌 박준영 변호사님의 사례를 보면 사회적 약자들이 강압수사와 짜맞추기 수사에 의해 범인으로 만들어지는 건 엄혹하던 시절의 옛이야기는 아닙니다.
예전 민변 연수를 갔을 때 당시 유우성씨의 변호인이셨던 장경욱 변호사님께서 초면에 신출내기인 저와 동기들에게 국정원 사람에 대해서 이 책에 나오는 고문경찰과 비슷하게 묘사하시길래 내색은 안했지만 '이 분 옛날에 NL쪽 학생운동을 너무 많이 하신 분 아닌가? 요즘 시대에' 하면서 뜨악했었는데 얼마 후 국정원 직원들의 유우성씨 동생에 대한 고문, 유우성씨에게 유리한 증거의 은닉, 선양 총영상관까지 동원한 중국 공문서 조작등 희대의 간첩 조작사건의 전모가 밝혀졌던 기억이 나네요.
빨리 다음 판을 찍어서 보다 많은 사람들이 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전 언론인 조갑제씨가 왜 이렇게 극우적으로 변모하게 되었는지에 대해서 좀 더 알아봐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형법 제66조에 사형은 교도소 안에서 교수형으로 하고, 군형법은 지정된 장소에서 총살로 집행하도록 정해 놓았다. 사형이 교수형과 총살형으로 정해진 것은 1894년 갑오경장 이후다. 법에 명시된 것은 1905년 형법대전 제94조가 "사형은 絞(교)로 한다."고 못 박은 것이 처음이다. 교수형은 세계적으로 가장 널리 채택되고 있는 사형 방법이다.
심장이 멎는 것을 죽음으로 정의할 때 교수형의 경우 평균 사망시간은 교수 시작으로부터 14분쯤이라는 것이 일본 측 통계다. 개인차가 많아 최단 4분 35초, 최장 37분이었다고 한다. 한국의 어느 퇴직 교도소장은 사망까지 걸리는 시간이 평균 14~15분이라고 말했다.
사형집행에 참여한 직원들에겐 오후에 자유 시간을 준다. 집행이 끝났을 때 참여 직원들은 눈에 핏발이 서는 등 제정신이 아니다. 이들은 서둘러 구치소 근처의 술집으로 몰려간다. 깡소주만 1,2,3차로 밤새도록 퍼 마신다. 거의 집에 들어가지도 않는다. 그 전날 밤에도 잠을 못 이룬 사람들이 많았을 텐데도. 아무리 합법적인, 또 사회정의를 위한 '살인'이라 해도, 그들의 손에 죽어간 사형수들은 오랫동안 부대끼면서 정이 들었던 얼굴들이다.
어떤 자백이 진실된 것인지, 거짓인지를 가리는 기준으로 흔히 '비밀의 폭로'란 말이 쓰이고 있다. 즉, 진실된 자백에선 수사관도 미처 몰랐고, 현장에서도 드러나 있지 않았던, 범인만이 알고 있는 새로운 사실이 반드시 폭로된다는 것이다. 이 비밀의 폭로가 없는 자백은, 일단 그 신빙성을 의심해야 한다는 논리다.
많은 피고인들은 2심이 끝날 때 비로소 (형사)재판이 뭔가를 알게 된다고 한다. 공판정에서 자신을 어떻게 변호하고, 어떻게 해야 좋은 인상을 재판부에 줄 수 있으며, 소송법상 보장된 피고인의 권리를 어떻게 하면 활용할 수 있는지를 뒤늦게 깨닫는다는 것이다.
재판은 피고인 자신의 죄상에 대한 것이지만, 실제로는 검사, 변호사, 판사가 어려운 법률용어를 구상하면서 진행을 주도해 가고 피고인은 구경꾼이 된 듯한 기분에 빠지기도 한다. 그러나, 2심이 끝났을 때 무엇을 깨달았다 해도 너무 늦다. 사실심은 끝났고, 법리의 적용이 타당한지 여부를 따지는 상고심만 남겨둔 상태에서는 그 깨달음이 별 무소용인 것이다.
오 씨가 사형수 대우를 받기 시작한 1975년 서울구치소에서는 복역수들이 불교를 믿고 싶어도 믿을 수 없었다. 개신교와 천주교만 목사와 신부들을 보내 선교를 하고 있었다. 불교에서 승려를 보내려고 해도 개신교와 천주교계, 그리고 교무계 담당직원들이 반발을 하여 성사되지 않았다.(불교에서 선교를 시작한 것은 1976년 3월부터였다.)
한국의 언론은 용어선택에서부터 인권의식이 결여돼 있고, 경찰의 수사풍토를 닮은 보도풍토를 이루고 있다. 이런 풍토에서는 '용의자 체포'는 박력도 없고, 자신도 없어 보이고, 모험을 해서라도 '진범 체포'라고 해야 한발 앞서간 취재라는 인상을 준다고 기자들은 믿고 있다.
고문의 버릇을 익힌 경찰은 수사능력이 약해진다. 은밀하게 증거를 수집하고, 뒤를 쫓아 그 범인을 붙들었을 때는 이미 상당량의 증거를 손에 넣고 있는, 그런 식의 수사는 시간도 걸리고 이력도 많이 듦으로, 의심이 가는 사람을 일단 족쳐서 거기서 자백과 물증을 얻어내자는 식의, 쉽게 먹으려 드는 수사습관을 갖게 되면, 정교한 수사기술이 발달할 리가 없다.
'자유 심증주의'란 어마어마한 재량권을 가진 판사는 자신만의 믿음으로써도 사형을 선고할 수 있다. 한 인간의 주관적 확신이 인간의 생명을 빼앗을 수도 있다는 재판의 본질은 중세 암흑기나 지금이나 달라진 게 없다. 달라진 것은 그 확신에 도달하는 절차를, 현대에서는 형사소송법으로 엄격히 규율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 소송절차야말고 인간이 오판을 피하기 위해 만들어낸, 그 수많은 누명 썼던 사람들의 한과 피가 스며 있는, 지혜의 보따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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