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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영근] 우리는 왜 억울한가(2016)

독서일기/법률

by 태즈매니언 2016. 12. 15. 0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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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처럼 학부에서 사회학을 전공하신 부장판사님이 올 가을에 펴내낸 따끈따끈한 신간이네요. 로스쿨 입학하기 전 해에 국내에서 법률가들이 업계사람이 아닌 이들을 대상으로 펴낸 책들을 쟁여놓고 읽었던 기억이 납니다. 법은 시대상에 따라 계속 변하기 때문에 좋은 책들도 시간이 흐르면 낡아가는 느낌이 있으니 법학에 관심이 있는 학생들에게도 추천할만 하네요.

 

굳이 내용이 탁월하지 않더라도 전 이렇게 사람들이 각자 자기의 업역에서 성실히 일하고 고민하면서 모아둔 심득(心得)을 책으로 펴내는 게 우리 사회에서 권장해야할 문화라고 생각합니다. 그 분야의 정말 가치있는 책은 아니기에 효율적인 독서는 못되더라도 누구나 높은 수준의 책들만 유람할 수 있는 건 아니니까요. 낮은 단계부터 시작한 거북이과 노력파인 저같은 사람을 키운 건 팔 할이 이런 소박한 집밥같은 책들이거든요.

 

읽으면서 서두의 문제제기가 참신하다고 느꼈습니다. 한국사회에서는 왜 이렇게 억울하다고 느끼는 사람이 많을까? 라는 화두를 던지며 시작하거든요. 심지어 훈련된 판사인 저자 본인도 억울함을 느꼈던 상황들을 솔직하게 털어놓습니다. 그러면서 사건 케이스를 법률적으로 설명하며 어떤 경우가 보편적으로 억울한 경우이고, 공감받을 수 있는지, 억울함의 토로가 공동체의 가치를 훼손하지 않고 수용될 수 있는 한계선을 짚어가며 가끔은 확대경으로 정밀하게 들여다보게 해줍니다.

 

저도 얼마전 사람없는 시골 지방도에서 딴 생각하다가 횡단보도가 있는 것도 못보고 노란색 점멸등이 빨간색 정지 신호로 바뀌는 순간에 미처 정지 못하고 쌩하고 지나친 적이 있거든요. 카메라에 찍힌 느낌이 들어 각오는 하고 있었죠. 그런데, 알고보니 어린이 보호구역이라 과태료가 무려 13만원(범칙금으로는 12만원인데 벌점이 무려 30점이에요...사전납부 할인도 전혀 없고요. ㅠ.ㅠ ) 처음으로 받아본 과태료부과 사전통지서인데 13만원짜리라니 순간 저도 '억울'하더군요.

 

하지만 생각해보면 어른과 달리 시속 50km 이하로 주행하는 차량과 충돌해도 생명유지에 치명적인 장기손상을 입을 수 있는 어린이들의 신체적 취약성을 감안할 때, 어린이 보호구역에서의 신호위반은 중하게 처벌되는 것이 맞겠지요. 최근 5년 동안만 보더라도 어린이 통학로 안전에 대해 시설을 보강하고 처벌기준 및 단속을 강화해온 덕분에 연평균 어린이 교통사고 건수는 1만 2천여건 수준으로 정체되어 있는데도, 연간 어린이 교통사고 사망자는 2011년 80명에서 2015년 65명까지 유의미하게 감소하고 있거든요. 결국 절대로 제가 억울할 일은 아닌거죠.(여러분도 저처럼 13만원 짜 리 과태료 부과 통지서 받지 않으시려면 어린이 보호구역에서의 신호위반 조심하세요. ㅎㅎ)

 

제3장 <사실과 다른 판결이 나는 이유>와 제4장 거짓과 오해는 법을 공부하면서 제가 이해하는데 시간이 걸렸던 것들이더군요. 현업의 변호사들이 의뢰인들을 이해하려고 하거나 납득시킬 때 참고하면 유용한 내용들이 많았습니다. 오랜 경험을 쌓은 판사가 직무 수행시 지니고 있는 정밀한 형량감각이 느껴졌고요.

 

다만, 현직 판사로서의 자기 검열 때문인지 지나치게 모범적이고 안전한 코스로만 서술하신 것 같다는 아쉬움은 드네요. 사람들이 억울함을 느끼는 이유는 교육과 문화를 통해서 형성된 여느 시민들의 억울함에 대한 형량감각이 고위공직자나 대기업집단의 오너 등에 대한 불합리한 판결들로 인해서 어그러지는 사례들은 지금도 계속 벌어지고 있거든요. 하지만 이 책에서는 '지강헌 사건'이나 '인혁당 사건' 등 과거에 그랬던 사례들을 다루고, 법이론적으로 불가피하게 일반인이 납득하기 어려운 판결이 나오는 케이스들 위주로 설명하고 있거든요.

 

물론 유영근 판사님께서 실제로 논란이 된 사건의 기록을 보지 않은 상태에서 다른 판사의 판결에 대해서 비판하는 위험성을 잘 알고 계실테니 그렇게 서술하셨겠지만, 잘못된 입법(구멍이 있거나, 의도적으로 편파적인)과 법원 외적인 영향을 받은 판결로 인해 시민들이 자신들의 억울함이 수용될 수 있는 한계를 잘못 긋도록 소음을 내는 상황에 대해서도 내부자 입장에서도 비판할 부분도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특히 준사법기관인 검사의 권한 행사와 관련해서 그런 부분이 좀 많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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