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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오] 술탄과 황제(2012)

독서일기/전쟁

by 태즈매니언 2016. 12. 25. 0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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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경형 덕분에 인상 깊은 책을 또 한 권 알게 되었네요. 저자 김형오씨의 이 책 <술탄과 황제>에 대해서는 출간 당시 언론에 호평이 많았던 걸로 기억합니다. 저는 약간 코웃음을 치면서 당시엔 읽어볼 생각도 안하고 넘겼던 걸로 기억합니다. 5선을 하면서 18대 국회의 국회의장을 지냈던 이가 전반기 국회의장 임무를 마치고 은퇴하고 나서 펴낸 역사교양서가 얼마나 충실할까 싶었거든요.

 

시기적으로 후에 일어난 일이지만 전직 대법관이 편의점을 열어서 화제가 되었던 것과 비슷한 뉴스 정도로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여의도 정치를 20년가량 해왔던 사람이 1453년 이후로 무수한 전문 학자들이 연구해온 주제인 ‘콘스탄티노플 함락’에 대한 책을 썼다는 패기가 만용으로 보이기도 했으니까요.

 

하지만 이 책은 제게 잘 쓴 교양 역사서 이상의 인상을 줬습니다. 이 책의 내용보다 (비록 박사학위 소지자이긴 하지만) 아카데미아 소속이라고 볼 수 없는 이가 전공자에 필적할만한 교양서적을 펴낸 국내 사례라는 점이 가장 인상 깊었습니다. 정말 존경할만한 이 시대의 어른이고 이런 분들이 우리나라의 저력이라고 생각됩니다.(국회의장 퇴임 후 방문교수로 이스탄불에 체류하는 동안 전직 국회의장에 대한 예우 차원에서 현지 공관 등으로부터 연구에 필요한 적극적인 지원을 받긴 한 것 같지만요.)

 

어차피 전문성으로는 평생 이 분야를 연구한 학자들의 서적을 뛰어넘기 어려운 제약을 일단 신선한 형식으로 참신한 구성으로 돌파한 점도 높이 평가하고 싶네요. 책 구성의 아이디어를 얻은 순간에 대한 묘사를 읽으며 그가 얼마나 간절히 이 주제에 천착했고 책으로 펴내고 싶었는지가 느껴지더군요.

 

책에 등장하는 많은 그림들과 연표, 서지목록의 나열이 아니라 약간의 서평을 곁들인 적지 않은 참고문헌 목록들 역시 저자가 이 책을 쓰기위해 들인 노력을 겸손하면서도 당당하게 내보여줍니다.

 

게다가 ‘골든 혼과 갈라타 언덕(http://hyongo.com/2020)’과 ‘루멜리 히사르(http://hyongo.com/1984)’처럼 콘스탄티노플 공방전을 이해하기 위해서 반드시 알아야할 지형지물들에 대해서 QR코드로 자신의 블로그 포스팅으로 연결해서 독자들이 자신이 답사하면서 찍은 사진들과 답사기 포스팅을 참고할 수 있도록 하고 있는 것에서 충격을 받았습니다. 2016년도 아니고 2012년에 나온 책에 말이죠.

 

QR코드로 연결된 우리나이로 70세인 전직 국회의장이 운영하는 블로그입니다. http://hyongo.com/ 인데 포스팅이 1974개나 있네요. ’디지로그(Digital+Analog)’의 인상깊은 사례였습니다. 많지 않은 선수로 국회의장이 된 것이 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군요. 심지어 올해 3월에 이 책의 개정증보판까지 내셨네요. 개정판 제목은 <다시 쓰는 술탄과 황제>. 정말 존경스러운 열정입니다.

 

책을 읽고 난 느낌을 총평하면 예전에 읽었던 시오노 나나미의 전쟁 3부작 중 하나인 ‘콘스탄티노플 함락’과 그녀의 ‘사일런트 마이너리티’를 섞어놓은 느낌에 역사적 사실에 대한 설명은 훨씬 더 충실한 것 같았고요. 저자의 의도대로 오스만 술탄 메흐메드 2세와 비잔틴 황제 콘스탄티누스 11세의 당시 심리와 인물의 개성에 대해서 잘 묘사하기도 했더군요.

 

이 책을 보면서 저는 첫째로 외교의 중요성을 실감했습니다. 이 책에서 다루는 범위는 아니지만(물론 술탄의 외교전략과 이에 대한 황제의 대응도 나오긴 합니다만) 전쟁이 발생하기 전부터 터키의 동맹 및 중립외교로 인해, 예상된 침공에 대한 구원요청의 실패와 황제의 로마카톨릭과 정교통합에 대한 반발, 베네치아 공화국의 늦은 결정 등 외교적으로 전쟁의 승패가 상당부분 결정되어 있었죠. 패배자임에도 훌륭했던 콘스탄티누스 11세가 부족했던 점이 이 부분이 아닐지. 인간적으로 노무현 전 대통령을 정말 존경하지만 그가 주창한 ‘동북아균형자론’과 ‘배일외교’는 국내적으로는 호소력이 있었지만 지나고 보니 현명한 판단은 아니었던 것 같아서 콘스탄티누스 11세와 겹쳐보였습니다. 우리나라의 다음 대통령은 국제정치에 대한 훈련이 좀 되어 있는 분이길...

 

둘째로 역시 종교는 인간의 진화의 산물이구나 싶었습니다. 공방의 당사자가 무신론자들의 집단(혹은 그나마 가장 가까운 베네치아 공화국)이었다고 가정해보니 과연 종교라는 발명품 없이 다른 밈(문화적 유전자)들만으로 이렇게 서로 사력을 다한 공격과 방어가 조직되고 지탱될 수 있다고 생각하긴 어렵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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