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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버트 서비스/윤길순 역] 스탈린, 강철권력(2004)

독서일기/인물

by 태즈매니언 2017. 3. 28. 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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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탈린, 강철 권력> 원제는 <Stalin>입니다. ‘강철 권력’이라는 표현은 정치가로서 그의 경이로운 업적과 애인의 이름에서 따온 ‘stal(철)’이란 단어 때문이겠죠.

저자인 영국의 역사학자 로버트 서비스는 사이먼 시백 몬테피오리처럼 소련의 개혁개방 직후 짧은 기간 동안 서구 학자들에게 개방되었던 구소련의 문서고를 통해 얻은 자료들을 탐독하여 스탈린의 일대기를 엮어냈더군요.

2004년에 출판된 책인데 검색해보니 몬테피오리의 <Stalin : The Court of the Red Tsar>는 2003년에 나왔던 터라 둘 다 비슷한 시기에 구소련 문서고를 열심히 뒤졌던 사이로 보입니다. 로버트 서비스교수도 몬테피오리를 연구성과들로부터 도움을 받았다고 고마움을 표하고 있고요.

절판된 책인데 운좋게 청계천 평화시장 근처 중고서점에서 만원에 살 수 있었습니다. 그래도 맺는 글까지 하면 1,008페이지에 달하는 책이라 워낙 무겁고 두툼해서 보기가 꽤 버거웠습니다. (어지간하면 두 권으로 나눠서 좀 내지.)

10월 혁명 성공 이전의 스탈린에 대해서는 제12장 271페이지를 할애해서 서술하고 있는데, 몬테피오리의 <젊은 스탈린>이 훨씬 자세하고 나은 것 같습니다.

아쉽게도 한국엔 몬테피오리의 <스탈린:붉은 짜르의 궁전>이 아직 번역되지 않아서 스탈린(이오시프 비사리오노비치 주가시빌리)의 전 생애를 조망하려면 이 책을 볼 수밖에 없더군요.

몇 달전까지만 해도 전 스탈린에 대해 한국전쟁을 승인한 냉혹한 학살자 정도 이미지만 있었습니다. 위대한 지도자 동지를 찬양하시는 박학다식하신 장삼이사 페친님 덕분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죠.

이 책을 덮고 나서 스탈린이란 사람에 대해서 생각해봤습니다. 서기 2000년을 맞이하는 뉴 밀레니엄의 초입에 학자들이 지난 밀레니엄의 인물로 ‘칭키스 칸’을 꼽은 바 있죠. 저도 동의합니다. 그가 역사상 가장 넓은 광대한 제국을 일궈냈기 때문이 아니라 지구상에서도 손꼽히게 궁벽하고 생존의 한계지대 출신의 한 개인이 더럽게 운이 없는 상황들을 극복하고 인류 역사상 최대 규모인 광대한 정치적 집단을 창조해냈기 때문입니다.(평생 부하에게 단 한번도 배신을 당하지 않는 위엄은 보너스!)

저는 스탈린을 칭기스 칸에 이어 지난 밀레니엄의 두 번째 인물로 꼽고 싶네요. 스탈린이 선택한 소비에트사회주의연방이 인간의 본성에 어긋나는 실패한 노선이었고, 스탈린의 선택으로 인해 수억 명의 사람이 죽거나 고통받은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한 개인의 힘으로(마오쩌둥도 거들었습니다만 ㅎㅎ) 십 수억의 인류들이 역사의 보편적인 발전방향과 불일치하는 삶을 살아가게 만든 거대한 실험의 수레바퀴를 굴렸으니까요.

지금 우리가 칭기스 칸에게 기마궁사의 한계를 직시하라고, 기술자들을 족쳐서 화승총을 개발 보급하고, 농업혁명을 통해서 거대한 상비군을 유지했어야 한다고 <문명> 테크트리 타듯 훈수를 둘 수는 없겠죠.

마찬가지로 최초의 공산주의 국가를 물려받은 레닌의 후계자에게 수요와 공급의 법칙과 시장의 원리를 무시한 계획경제의 파국을 예측하지 못했다고 시대의 제약 하에서 목표한 바를 끝까지 추구했던 인물을 재평가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됩니다.

테러조직을 조직하고 운영하는데 능숙한 매력 넘치는 혁명가, 포토메모리에 건강을 타고난 지독하게 부지런하고 유능한 행정가, 수백 수천만 인명을 그저 숫자로 치환할 수 있었던 민족문제 전문가이자 국가의 존망이 걸린 전쟁의 최고사령관, 피값을 제대로 받아낼 수 있었던 외교의 달인이었던 스탈린.

그가 아니었더라면 레닌이 세운 소비에트 사회주의 연방공화국은 자와할랄 네루의 인도처럼 지리멸렬한 지역강국 정도였지 않을까 싶습니다. 열악한 여건 하에서 눈하나 깜짝 않고 사람들을 갈아가며 짧은 기간 안에 근대화를 달성해가는 과정을 보면 속성으로 마공(魔功)을 연성한 대마두가 떠오르네요. 물론 스탈린식의 속성 근대화 과정에서 사람들이 치른 대가는 엄청났고 스탈린이 남긴 정치적 유산은 그의 사후에도 조국이 항로를 바꾸지 못하고 예정된 침몰을 하게 만들었다고 생각하지만요.

이 위대한 지도자 동지께서 김일성의 간청을 마지못해 승낙하면서 한국전쟁이 일어나게 했으면서도 외무성의 의견을 무시하고, 국제연합 안전보장이사회 회의에 불참하여 거부권을 행사하지 않아준 실수를 저질러주셔서 정말 다행이다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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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5쪽

1925년에 인구 1억 4700만명 가운데 볼셰비키가 102만 5천 명이었다. 볼셰비키도 인정했듯이, 그들은 바다에 떨어진 한 방울의 빗방울에 지나지 않았다.

481쪽

소련은 스탈린의 통치 아래서 산업과 도시 중심의 사회로 가는 길에 확고히 들어섰다. 산업화와 도시화는 그가 늘 추구했던 목표였다. 그의 도박은 대가를 지불해주었다. 그러나 수백만 희생자에게는 아니었다.

552쪽

스타하노프들이 기록을 깰 수 있었던 것은 관리자들이 그들을 위해 특별한 조치를 해주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다른 노동자들도 옆에서 거들어야 했다. 이것은 일반적인 생산 방식에 균열을 가져와 생산량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쳤다. 게다가 스타하노프들은 필요한 절차를 무시하고 지름길을 이용해 결과를 성취했다. 그 결과 기계가 자주 고장났다. 그러나 스탈린은 그러한 증거를 무시했다. 노동자들 사이에서 생산량을 늘려 특권을 얻으려는 열풍이 불면서 사람들은 생산에 대한 과학적인 접근 방식을 포기했다.

611쪽

모든 기록이 세부에서는 달라도 한 가지 공통적으로 지적하는 것은 1937~1938년에 약 150만 명이 엔카베데에 체포된 것 같다는 것이다. 그 가운데 결국 풀려난 사람은 22,000명 정도밖에 안되었다.

680쪽

소련 정책의 기본 원칙은 언제든지 미래에 자본주의 강국들 사이에 전쟁이 일어나면 그 결과 어떤 상황이 초래되든 붉은 군대가 그 기회를 이용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불가침 조약으로 히틀러가 소련에 간섭하지 않고 독일의 군사력을 영국과 프랑스 쪽으로 돌리게 할 수 있다면, 스탈린은 기꺼이 그런 조치를 취할 뜻이 있었다.
(중략)
그리고 영국, 프랑스와 전쟁 중인 독일에 곡물과 석유를 아주 넉넉히 건네주면서 대신 독일의 기술을 요구했다. 베를린은 메서슈미트 전투기와 3호 전차, 순양함 뤼트초프의 판매를 승인해야 했고, 소련 전문가들에게 전함 비스마르크 호의 설계도도 보여주었다.

719쪽

스탈린그라드는 소련의 전쟁 수행에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병참 기지였다. 독일이 볼가 강의 중간 지점을 장악하면 소련이 바쿠와 그로즈니에 있는 석유 공급지로부터 분리될 것이었다. 이곳을 얻으면 독일군이 볼가 강을 가로질러 러시아 남동부로 진격해 들어갈 수도 있어 모스크바가 얻을 수 있는 곡물과 감자의 양이 위태로울 정도로 줄어들 것이었다.

756쪽

1942년에 ‘미국 기술 찬양’ 죄가 소련 법령에 추가되어, 지프가 좋다는 말만 해도 굴라크로 끌려갈 수 있었다.

814쪽

제2차 세계대전으로 2600만 소련 시민이 목숨을 잃었다.

996쪽

푸틴의 할아버지는 레닌과 스탈린을 위해 부엌에서 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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