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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형중] 공약파기(2017)

독서일기/한국정치

by 태즈매니언 2017. 4. 2. 1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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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남택 변호사님께서 선물해주신 <공약파기>. 임변호사님의 지인께서 펴내신 책같아서 약간 부담스러운 책선물이었답니다. 차라리 저자로부터 선물받은 책이면 평을 하는 게 예의가 아닌 면이 있으니 혼자 정리해둬도 괜찮지만 이럴 땐 좀 애매하잖아요.

 

혹시 내용이 저와 안맞으면 어쩌나 고민하면서 집어 들었는데 예상(?)보다 매우 훌륭한 책이었습니다. 같이 이 땅에서 살아가는 입장에서 가려운 부분들을 긁어주는 국내 저자를 만나는 건 참으로 즐거운 일입니다.

 

저자인 한겨레신문의 윤형중 기자님은 <공약파기>에서 지난 두 번의 정권이 대통령 선거를 하면서 발표한 공약집이 어떻게 이행이 되었는지를 추적하고 있습니다. 원래 소위 진보정권시기까지 다루고자 했는데 책의 분량이 넘쳐서 지난 두 정권으로 한정하셨다고 하네요.

 

지난 3월에 나온 따근따근한 신간이고 대통령 탄핵으로 인해 5월 대선을 앞둔 한국 유권자들에게 꼭 필요한 책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런 책이 언론에도 좀 더 반향을 일으키면 좋겠는데 언론계에서 의외로 현직 동업자가 쓴 책을 조명하는데 인색하지 않나 싶었던 터라 걱정됩니다.

 

저자는 머리말에서 저는 한국 정치가 구조적으로 바뀌려면,그 중심을 바꿔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제안하는 것은 간단합니다. 정치의 중심에 정책, 선거의 중심에 공약을 두자는 것입니다.” 저자 자신도 기자지만 정치의 중심을 파워게임으로, 선거의 중심을 인물과 판세로 경마장식으로 보도하는 기성언론의 정치보도에 진지한 문제제기를 하고 있는 책입니다.

 

저도 처음에는 에이 공약이야 뭐 어차피 표를 얻기 위해 부풀리고 지킬 수 있는 이상으로 호언장담하는 거 다들 아닌거 아냐? 하는 마음으로 심드렁하게 읽기 시작했죠. 그런데 윤형중 기자님을 따라 공약의 이력을 추척해보니 해도 정말 너무 했고, 과연 대의제 민주주의의 꽃인 선거를 이런 식의 공약(空約)으로 치러도 되는 건지 같이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이 분의 다음 책도 기대되네요.

 

박근혜 전 대통령이야 뭐 할말 없지만 그래도 이명박 전 대통령은 많은 공약들을 정량적인 숫자로 제시한 점을 높이 평가하고 싶습니다. 이번 대선 때 TV토론 포맷이 어떻게 될지 모르겠지만 공약집을 텍스트로 해서 각 후보자들이 직접 선정한 시민 패널과 전문가들의 질문에 답변하는 방식의 개인별 토론회도 도입하면 어떨까요?

 

그리고 저는 다음 대통령이 지난 두 전직 대통령처럼 화려한 공약들을 내세우기 보다는 지금 유효한 천 개가 넘는 법률들 중에서 우리 사회를 발전시키기 위해서 필요하지만 사실상 규범력을 상실한 법률의 집행을 실효성있게 하는 게 우선이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어차피 국회 선진화법으로 야심한 공약 이행을 위한 추진력 확보도 어렵고, 대연정이나 의원빼가기 등 정치공학적인 논의에 매모될 필요 없이 국회가 제정한 법률을 집행하는 행정부의 수반으로서 역할만 제대로 해달라는 거죠.

 

레퍼런스는 없지만 정치인들의 말바꿈과 정책백서나 보도자료들이 대강 얼버무리고 언급하지 않는 정책집행 실적의 이면을 차근차근 헤쳐 나가는 좋은 책입니다. 오는 5월에 한 표를 행사하길 유권자들께 권하고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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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존재하는 법이 현실에서 규범력을 회복하는 것이 경제민주화의 첫걸음이다. 이는 거꾸로 말해 제도화가 경제민주화를 담보하지 못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한국의 노동법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 것처럼, 공정거래법이나, 유통법, 상생법 등도 많은 경우 지켜지지 않고 있다. 따라서 정부는 입법 성과에 대한 자화자찬을 할 것이 아니라, 법이 현실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지를 꾸준히 모니터링하고 냉철하게 현실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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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정부가 최저임금 위반 사업장에 대한 관리감독과 신고접수를 맡고 있다. 하지만 실제로 현장에서는 정부의 관리감독을 체감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특히 2006년부터 2014년까지 최저임금 위반 사업장 가운데 사법처리가 된 이들은 전체의 0.12%에 불과할 정도다. 나머지 99.88%는 시정명령에 따라 임금 미지급분을 주고서 아무 처벌도 받지 않았다. 적발되는 일이 드문데, 적발이 되더라도 처벌을 받지 않는다. 기업들로서는 최저임금법을 지킬 이유가 거의 없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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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정책을 기획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이 재원 대책이다. 해마다 4조원이 넘게 들어가는 정책을 새로 만들며 이명박 정부는 재정부담을 지방교육청(3~5)과 지방정부(0~2)에 떠넘겼고, 박근혜 대통령은 선거 때엔 내가 내줄게라고 말했다가 당선 이후엔 그냥 네가 내라로 표변했다. “아까랑 말이 다르지 않냐고 지방교육청이 따지자, 박근혜 정부는 그럼 네가 반드시 내야 한다는 법을 만들 테니, 그 법을 지켜라고 윽박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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