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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니엘 튜더/송정화 역] 익숙한 절망 불편한 희망(2015)

독서일기/한국정치

by 태즈매니언 2017. 11. 14. 16: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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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달아 읽은 다니엘 튜더의 두 번째 단행본. 지난 정권의 퇴행적인 정치가 절정기에 있던 시기에 나온 책이다보니 지금의 집권여당에 대한 비관적인 전망이 보기 좋게 빗나가버렸다.


하지만 이 책의 목적은 당시 야당의 정권교체가 아닌 한국이 퇴행애서 벗어나고 영국과 다른 나라들의 실수를 참고하여 더 나은 민주주의 국가를 만들기 바라는 조언을 주고자 했기에 여전히 유효한 내용이 많다.


내가 서평을 쓰는 이유는 책의 메시지와 읽으며 받았던 내 느낌이 휘발되지 않도록 기록하기 위함이다. 그러다보니 내용 요약과 인용이 주된 부분이 될 수밖에 없고. 그런데 다니엘 튜더는 머릿말에서 이 책을 읽는 독자에게 책의 일부를 그대로 인용하기보다는 어떤 점에서 자신의 의견에 동의하거나 동의하지 않는지 각자의 의견을 피력해달라고 요청하고 있다.


저자는 성공 지향적인 한국 사회에서 진보 진영이 선택할 수 있는 최고의 전략은 부자를 벌하는 정책이 아니라 진보적이되 유권자의 사회 경제적 지위 향상에 도움이 되는 정책을 제시하라고 조언한다. 소위 '무상'시리즈의 프레임으로는 중도층을 끌어오지 못한다고. 얼마 전에 우상호 원내대표가 술회한 박근혜 탄핵의결의 막후과정을 읽어보니 정무적인 교섭능력은 갖춘 것 같더라.


하지만 새누리당 여의도연구원과 정책소스를 제공하는 이익단체들이 내놓는 자료와 민주정책원과 민주당 의원들이 내놓는 정책자료들의 구체성을 비교하면 민주당은 전문가들을 존중하고 대우할 줄을 모른다. 경제계 사람들이 보기에 '원가 공개'나 '대기업의 사내유보금' 운운하는 수준 떨어지는 이들이 경제정책을 다룬다고 생각하면 얼마나 공포스럽겠는가.


저자는 민주당의 19대 의원 중 70%는 학계, 법조계, 정무직, 당출신이었다고 한다. 이들 직업군들 중에 기업 등 실제로 대규모 조직을 운영하면서 예산이나 인력관리를 해본 사람이 얼마나 있겠냐는 통탄이 구구절절 와닿는다. 40~50대가 거의 없고 60대 중심의 학자출신이 많은 내각을 운영하는 걸 보면 지난 10년 동안 별로 깨달은 바가 없는 것 같다. 김상조위원장에게 오만한 발언이라고 뼈대있는 응수를 날렸던 이재웅 다음 창업자와 같은 심정을 지닌 사람들이 늘어나는 걸 두려워해야 한다. 지난 대선 때 안철수에 열광했던 이들이 매료된 포인트 중 하나가 거의 대부분의 산업섹터를 재벌계열사들이 장악한 상황에서 유일하게 창업자가 시장을 차지한 NHN과 NCsoft같은 새로운 타입의 기업가라는 점을 유념해서 이 분야의 인재들을 모셔오고자 노력해야 한다. 전문경영인 출신의 기업인들도 필요하고.


정당기율이 약한 현 여당에 있는 그나마 선명한 정책이 '햇볕정책'이었지만 결과적으로 햇볕정책은 실패했고, 어차피 현재의 국제정치적 상황상 북핵문제에 대한 우리의 지분은 극히 낮아진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서 철지난 라디오를 틀어대는 해당행위자들을 내버려두는 것은 유권자들에게 좋지 못한 신호다. 게다가 젊은 유권자들은 통일을 별로 바라지도 않고 북한에 큰 관심도 없다. 그나마 문재인 대통령이 전력증강을 위한 국방예산 증액에 관심을 갖고 있고, 기존의 수세적인 군전략을 좀 더 공세적으로 전환하려는 태도는 친북프레임을 차단하기에 좋은 판단이라고 생각된다.


또 국민의당이 설치한 '아파트특위'처럼 다수의 국민들이 체감할 수 있는 실생활과 밀접하게 연관된 정책의 개발에 신경을 써야 한다. 국민들이 가장 선호하는 주거형태고, 선분양제제도를 취하고 있기에 감당해야하는 수분양자들의 리스크들과 관리운영상의 허점들이 많은데 과연 얼마나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지. 난방열사 사건이 상징적인데 아파트,오피스텔,상가의 관리비 회계나 입주자대표회 운영의 투명성을 개선해주는 정책들이 '분양가상한제'나 '원가공개의무화'처럼 허무맹랑한 말 대신 언론에 보도되어야 한다.


그럴려면 경제학을 제대로 배우고 시장의 효율성에 대한 기본적인 신뢰를 가지고 있는 인재들을 많이 유입해야하고. 2014~2017년 3년 동안 전세계 35개국의 국제항공권 가격 추이를 살펴보니 한국이 3년 사이에 무려 평균 24%가 하락해서 세계에서 하락폭으로 3위였다고 한다. (내 전직장 동료들은 엄청 고생하고 있지만 ㅠ.ㅠ) 양대항공사의 복점시장에 LCC가 생산자로 진입하여 소비자들이 누리는 이러한 효용이 시장의 힘이고, 정책설계자들은 이런 성과를 자랑해야 한다.


영국병 문제에 대한 대처정권의 결정에 따라 제조업이 공동화된 웨일즈와 영국 북부 등 예전 산업도시들의 퇴락한 상황에 대해 셰필드에서 태어난 오언 존스가 <Chav-영국식 잉여유발사건>에서 상세히 소개한 바 있다. 그런데 다니엘 튜더도 맨체스터의 공장 노동자의 자녀라 그런지 비슷한 문제의식을 갖고 있었다. 현 정부의 기본 철학 중 하나가 지역균형발전이라 생각된다. 지금은 우선 순위가 아니라고 판단한 것 같지만 내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개헌안이 나올 때쯤에는 부각되지 않을까? 노무현 정권 때 공공기관 지방이전을 한 결과에서 배운 게 있기를 바란다. 그런 기관들 수십 개를 옮겨봐야 지역에 별다른 영향은 못준다.


정치인들이나 유권자가 지금 우리나라 지방 곳곳에 위치한 산업단지에서 돌아가는 제조업공장들을 너무 당연하게 자리를 지키는 존재로 여기지 않기를 바란다. 박제된 도시처럼 일제시대 때부터 큰 변화가 없던 군산시가 GM대우 군산공장과 현대중공업 군산조선소덕분에 멋들어진 주상복합단지가 들어서고 발전하는게 눈에 보였는데 후자의 공장은 멈췄고, 전자는 전세계 148개의 자동차공장 중 생산성 130위를 기록하여 존속 여부가 불확실한 상황이다. 지역균형발전은 철학의 문제지만 이왕 이를 선택해서 추진할 생각이면 지방에 위치한 제조업기업의 요구사항을 경청하고 정책에 반영할 필요가 있다. 매년 높은 최저임금 인상을 예고한 상황이라면 더더욱.


저출산과 여성의 경력단절을 그렇게 걱정하면서 육아휴직시 첫 3개월의 육아휴직급여 상한액을 100만원에서 150만원으로 50만원 올리고, 남성이 배우자의 육아휴직에 이어 둘째 이후의 자녀에 대해 육아휴직을 할 경우 육아휴직 급여를 200만원으로 인상하는 걸 정책이라고 내놓았는데 한숨이 나온다. 육아휴직 급여 자체를 200만원 이상으로 매달 지급하고, 남편도 의무적으로 육아휴직을, 만약에 정 일을 해야 한다면 육아기 근로시간단축제에 따라 급여를 덜받고 단축근무를 하도록 해야 한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가장 시급하다고 생각하는 문제가 법정근로시간의 준수와 근로기준법 제59조의 특례업종의 전격적인 축소다. 특근수당 등의 급여삭감은 감수해야 한다고 보고. 장시간의 근로는 개인의 취미생활에 할애할 여가를 앗아가서 삶에 대한 만족도를 떨어뜨리고, 독서와 토론 등 숙의민주주의에 투여할 에너지를 고갈시킨다.


또, 우리나라의 교통SOC투자규모 자체는 높은 수준이지만 수도권의 광역대중교통에 대한 투자는 많이 부족하다. OECD 최장 수준의 통근시간은 줄여야 한다. 가능성을 높게 보지는 않지만 현 서울시장이 3선을 한다고 생각하면 암담하다. SOC예산을 줄이기로 한 상황에서 PPP사업에 부정적인 것도 어떻게 하자는 뜻인지 궁금하고.


그 외에 공공도서관의 장서와 사서인력 확충, 학교 내 예술과 체육교과 교보재 확충, 응급의학과 등 비선호과 의료수가 인상, 종교인 과세 및 종교법인의 회계투명성 확보, 사학재단에 대한 통제 강화, 용적률 인센티브나 대도시 주변 그린벨트 해제를 통한 주택공급의 확대 등도 추진했으면 하는 정책들이다.


페이스북을 하면서 여러 분야의 뛰어난 분들을 많이 접했다. 그러면서 '자기 분야가 아니면 동네 아재'라는 말을 처절하게 실감하게 되었는데 이런 글을 쓰려니 부담스러웠다. 하지만 한국을 사랑하는 다니엘 튜더가 한국인들에게 전하는 이 책을 봤으니 그에 대한 답례삼아 적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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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5쪽


북한은 전 세계적으로 진보와 가장 거리가 먼 나라다. 북한의 현 상황에 대해 변명을 늘어놓는 자칭 진보주의자들에게는 조지 오웰의 전 작품을 100번쯤 읽게 해야 한다.


103쪽


음모론은 힘없는 자들의 마지막 피난처일 수도 있으나, 힘없는 자들을 계속 힘없게 만들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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