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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스칼 메르시어/전은경 역] 리스본행 야간열차(2004)

독서일기/유럽소설

by 태즈매니언 2017. 4. 24. 1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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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의 3주 동안 붙잡고 있었던 책을 오늘에서야 다 읽었습니다. 600페이지도 안되는 책인데요. 근심 걱정 없고, 알콜 기운이나 스마트폰 금단현상에서 자유로운 상태로 차분히 집중할 수 있는 맑은 정신일 때가 아니면 활자가 안읽히는 콧대가 높은 책이라서요.


그 사이에 책을 몇 권 읽고서 서평을 남기기도 했지만 항상 이 책이 목에 걸린 생선가시처럼 꺼끌거렸습니다. (그래서 지금 읽다가 던져 둔 책이 다섯 권 --;)


이렇다보니 주변에 권하기가 좀 망설여 집니다. 다음 주말부터 시작되는 황금 연휴에 집에서 호젓하게 읽기에 적당하겠네요.


베른 출신의 언어철학 교수인 페터 비에리가 파스칼 메르시어라는 필명으로 발표한 세 번째 소설인데 저는 작년에 같은 제목의 영화를 뒤늦게 보고서 이 책을 찾아보게 되었습니다.


영화의 느낌이 워낙 좋았기에 책 중반까지는 묘사된 부분을 읽으면서 자동적으로 영화 화면이 떠올라서 방해를 받았던 것 같습니다. 영화보다 책으로 먼저 보시길(그러면 대신에 책을 끝까지 못 읽을 가능성이 높아지긴 할 겁니다.)


소설이지만 철학과 역사가 녹아들어간 산문시를 읽는 느낌을 받았던 부분이 많습니다. 거의 모든 등장인물들이 외국어도 능숙하고, 교양있는 사람으로 나오는 등 이물감이 들지만 한 권의 책에서 시작되어 뻗어 나오는 방대한 이야기라는 점에서 독서광인 먹물들이 푹 빠질만 하죠. 시에 대해 까막눈인 제가 '시'가 어떤 것인지에 대해 조금이나마 생각해는 계기가 되었고요. 겨우 한 번 읽긴 했지만 지금도 삼분의 일도 채 이해하지 못한 것 같긴 합니다.


지금 우리나라 같은 사실상의 섬나라에서는 불가능한 일이지만 야간 열차에 몸을 싣고 떠나 하룻밤을 보내고 플랫폼에 내리면 전혀 다른 말을 쓰는 사람들이 사는 낯선 도시에 도착하는 것은 다들 떠올려보면 상상이겠죠. 습관같은 일상적인 삶에서의 일탈이라는 친숙한 소재지만 이렇게까지 풍부한 이야기를 담을 수 있구나 감탄한 책입니다. 영화의 결말보다 소설의 결말이 더 맘에 들었고요.


이렇게 또 한 권을 저의 올해의 책 리스트에 후보로 올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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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쪽


문제는 "그 말이 생각을 표현하고 있는가?"라는 점이다. 이런 말이란 그저 쓸데없는 수다가 새겨진 흔적으로써 사람들을 이리저리 끌고 다니는 효과음에 불과한 것은 아닌지?


324쪽


"체스는 그렇게 잘 두면서, 왜 인생에서 싸울 줄은 몰라요?" 플로렌스는 이런 말을 여러 번 했다. 인생에서 싸우는 건 웃기는 일이라고 생각하니까. 자기 자신과 싸울 일만 해도 얼마나 많은데.


405쪽


오빠는 잘못된 단어의 독재와 올바른 단어의 자유, 유치한 말 때문에 생기는 보이지 않는 감옥과 시의 광채에 대해 말하곤 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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