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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은정] 대한민국 치킨전(2014)

독서일기/음식요리

by 태즈매니언 2017. 5. 24. 1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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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면, 믹스커피, 후라이드치킨, 삼겹살, 냉면은 한국 사람들이라면 다들 자기 취향에 대해 한 마디씩 할 수 있는 소울 푸드라 할 수 있죠. 예비창업자를 대상으로 하는 게 아닌, 치킨에 대한 교양서가 2014년에야 나왔다는 게 신기하더군요. 자매 책으로 닭이 가축화된 역사를 다룬 앤드루 롤러의 <치킨로드>란 책도 있습니다. ㅋㅋ


이 책은 젊은 농촌사회학자 정은정씨가 대한민국의 육계산업 중 약 절반가량을 차지하는 치킨산업에 대해 전반적으로 관찰한 책입니다. 처음 50페이지까지는 실망스러울 수 있는데 그 뒤로 흥미있어지니 섣불리 책을 덮지 마셔요.


아쉬운 점도 있었습니다. 기고나 강연글을 모으다보니 그런 것인지 같인 이야기가 지나치게 반복되는 느낌을 받은 부분이 있었고요. 농촌사회학자의 책인지 축산분야에 관심을 갖고 취재한 기자의 책인지 구분이 안갈 정도로 '사회학'의 느낌을 찾을 수 없어서 아쉽긴 했습니다. 이도헌님의 <나는 돼지농장으로 출근한다>처럼 양계산업 종사자가 쓰셨다면 젤 좋았겠죠.(농촌경제연구원 연구자나 농촌경제학 전공자가 쓰셨어도 괜찮을 것 같은데 역시 선점이 중요합니다.)


읽으면서 우리나라 치킨의 계보를 아래와 같이 정리해볼 수 있어서 재미있었습니다.


1. 민무늬 치킨 : (식으면 맛없는) 시장통닭(물반죽을 사용하는 습식 치킨)
2. 오븐치킨(전기구이통닭) : 1961년 명동영양센터. 지금은 트럭 노점으로 주로 판매('굽네치킨', '오븐에빠진닭'으로 한때 중흥)
3. 엠보치킨 : 1977년 국내 최초의 치킨 프랜차이즈 명동 신세계백화점에 입점한 림스치킨이 원조. 파우더를 묻혀 압력튀김기로
튀기는데 튀김옷이 얇아 덜 느끼함. 
4. 양념치킨 : 민무늬 치킨에 양념을 가미. 1981년 처갓집양념통닭, 비슷한 시기의 페리나카, 멕시카나, 이서방, 스모프 등등
5. 크리스피치킨 : 1984년 KFC 탑골공원 1호점. 물반죽을 발라 압력솥에 튀긴 후 다시 파우더를 묻혀 컬을 만들어내는 습식+건식 치킨. BBQ, 네네치킨, BHC 등 국내 후라이드치킨 시장의 메인스트림
6. 숯불구이 바비큐 : 2005~06년 잠깐 유행(훌랄라)


저는 한 두 조각 먹을 때는 크리스피치킨이 좋고, 한 마리 시킬 때는 보드람이나 둘둘같은 엠보치킨이 좋아요. ㅋㅋ


국내 치킨의 역사 말고도 염지의 중요성, 예비창업자를 노리는 프랜차이즈 영업사원과 치킨컨설팅업계의 수싸움, 완전경쟁에 가까운 후라이드치킨 시장에서 생존하기 위한 치킨점주들의 악전고투, 치킨과 맥주회사, 하림과 계약농가의 관계 등등 유익한 내용이 매우 많습니다.


특히 지방 함량이 깨나 유채의 절반도 못미치는 18~20%밖에 안되는 콩으로 만는 콩기름(대두유)가 왜 제일 싼지 의문이었는데 콩기름을 추출하고 남은 찌꺼기인 대두박(가루를 내면 탈지 대부분)이 두유, 고추장, 된장, 간장, 무엇보다 동물사료로 단백질이 필요한 식품산업 다방면에 쓰이기 때문이라는 '콩-식용유-사료의 트라이앵글' 챕터가 훌륭했습니다. 나중에 우리나라의 식품산업에서의 '콩'에 대한 책이 나오면 재미있을 듯 싶어요.


육계회사가 계약농가에 지급하는 닭 한마리 사육비가 400원 남짓(병아리는 공급)이라는 데 충격받았네요. 육계시장의 과반을 점유한 절대강자 하림의 경쟁력이 경쟁자들이 1년에 입추부터 출하까지 5~6회전을 할 때 7~8회전을 하는 오퍼레이션과, 15일마다 현금 결제(경쟁업체는 출하시 마리당 100원 지급 후 잔액은 40일 후에 지급)에서 온다는 육계 현업 종사자의 전언도 귀중했고요. 단, 지금은 하림의 시장점유율이 책 출간시점보다 많이 떨어졌네요.


온라인 서점인 알리딘의 '북펀드(book fund)'제도를 통해 49명의 잠재적 독자가 1~5만원씩을 투자해서 나왔던데, 판매량을 신경쓸 수밖에 없는 출판사나 좋은 책을 보고 싶은 독자에게 좋은 제도 같습니다. 펀딩 투자자들은 책에 본인의 이름이 실리니 좋고요. 재미난 주제로 첫 책을 펴내고 싶어하는 작가들도 한 번 생각해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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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쪽


치킨 맛의 미묘한 차이는 사실 (튀김기술이 아니라) 이 염지 과정과 베터믹스가 결정한다고 볼 수 있기 때문에 치킨의 핵심 기술 요소인 셈이다.


212쪽


KFC 매장에서는 술을 취급하지 못한다. 청소년 아르바이트를 고용하는 업소는 주류 취급이 제한된 것이 사실 KFC이 발목을 잡은 가장 강력한 족쇄였던 것이다.('치맥' ㅠ.ㅠ)


222쪽


우리가 먹는 양념치킨의 소스는 물엿과 물엿 들어간 고추장을 섞어놓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옥수수는 전분을 낳고, 전분은 물엿을 낳고, 물엿은 양념치킨을 탄생시켰다. 닭도 옥수수를 먹여 키운 것이니, 치킨은 곧 옥수수다.


263쪽


한국에서 한 해에 도축되는 닭은 약 8억 마리에 이르고(농림축산검역본부, 2013년 기준), 그 중 절반 이상은 치킨으로 튀겨 먹고 있다.


283쪽


"(조류독감에 걸린) 닭을 매립할 때 사료도 같이 매립해야 한다. 사료는 농가의 자산인데 매립 때문에 생기는 손해가 크다. 사료는 보상금이 40%밖에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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