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친 김영준님의 첫 저서. 어제 택배로 받아 자정쯤까지 단숨에 읽었다. 페친을 맺은지 좀 되다보니 영준님의 페이스북 포스팅으로 접한 내용들도 꽤 많지만 그래서 속도가 붙은 건 아니었다. 읽었던 내용이라서 지루하지도 않았고. 이미 접했던 내용들도 김정운씨가 <에디톨로지>에서 주장하듯 편집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서 전달력은 완전히 다르니.
자영업자와 소비자가 서로 알지 못하는 상대방의 입장, 부동산과 상권의 입지, 자영업의 오퍼레이션에 대해서 이렇게 알기 쉽게 정론(正論)만 추려모은 책이 또 있을까?
그동안 이런저런 책을 읽어오면서 부동산과 상권의 입지에 대해서는 <공간의 가치>를 쓰신 박성식님을, 자영업의 오퍼레이션에 대해서는 페북의 은거고인 Johoon Lee님을 으뜸으로 꼽고 있었다. 두 분 다 면식도 없지만 한 분은 건축을 전공하시고 부동산 디벨로퍼 분야에 종사하셨고, 다른 한 분은 십수조원의 매출을 올리는 유수의 대기업들에 오퍼레이션 컨설팅을 해오신 분으로 알고 있다.
그런데 <part 2. 기회로 위장한 위기>에서 유행 아이템 사업의 주기에 대한 내용을 읽으면서는 박성식님이 한국의 대도시 상권은 왜 이렇게 수명이 짧은지를 설명할 때 감탄했던 느낌이, <part6. 상권이 움직이는 방식>과 <part7. 젠트리피케이션> 부분을 읽으면서는 Johoon Lee님의 역작 포스팅 '부동산에 대한 소고 - 삼위일체를 바탕으로'를 읽었을 때의 깊은 감동을 다시 맛보는 듯 했다.
대단한 점은 저자 김영준님은 은행에서 일한 경력이 있긴 하지만 기본적으로 업계의 플레이어가 아닌 관찰자라는 차이가 있다. 생업이 따로 있는 관찰자가 단행본을 읽고 일반에도 공개된 자료를 분석하고, 행인으로 거리를 걸으면서 앞의 두 분에 견줄만한 비슷한 시야를 쌓아온 게 절대 쉬운 일이 아니었을텐데.
2007년에 블로그 개설 이래로 십 년 동안 꾸준히 내공을 쌓아왔다지만, 아카데미아의 세계 안에 있어 운공 중에 기혈이 들끓고 사마외도의 행공법에 빠지지 않도록 잡아줄 명문정파의 사부나 사형 있는 것도 아니었는데.
머리말의 말미에 '생산자와 소비자가 시장을 이해하고 자기 밥그릇을 명확하게 챙기도록' 하고 싶다는 본래의 목적을 충분히 달성한 책을 세상에 내놓은 점도 빼어나지만 인간적인 측면에서 더 인상깊었다. 이 책에 참고자료로 언급된 단행본 중에 8권을 읽었지만 읽은 걸 자기의 말로 풀어놓지 못하는 자의 질투심아 제발 사라져라.)
반쯤 읽었을 때는 좋은 책인데 왜 제목을 <골목의 전쟁>이라는 직관적으로 와닿지 않는 제목을 정했는지 의문이 들었다. 하지만 책을 다 읽고 나니 왜 굳이 지금은 별로 쓰이지 않는 단어인 '골목'이라는 표현을 제목에 썼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소비하는 사람과 많지 않은 자본과 자신의 노동력으로 생산자가 된 이들 모두 '골목'에 주목해야 한다.
임차인이 임대인의 역할을 넘나드는 경험은 살면서 많이들 해본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경직적인 노동시장으로 인해 경제활동을 시작할 때 급여생활자의 길을 선택한 이들은 이른 은퇴에 몰리는 시점이 되기 전에는 자영업자의 생활을 경험하기 힘들다. 주택의 임대수익률이 낮은 상황에서 퇴직을 앞두고 평생 모은 돈을 상가에 투자해서 은퇴 후 자산소득을 올리고자 하는 이들도 마찬가지로 상권과 상가의 입지에 대해 제대로 알기가 어렵다.
이는 누구의 게으름도, 잘못도 아니다. 우리나라의 본격적인 근대화와 도시화의 시기가 그만큼 짧아서 생긴 일이니. 선진국들도 다 경험한 일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왕성한 소비자인 나는 좀 더 현명한 소비자가 될 수 있는 팁을 얻었고, (원래 나한테는 안맞는다는 걸 알고는 있었지만) 은퇴하더라도 자영업은 절대로 하지 말아야겠고 재차 다짐했다.또 혹시 투자할 자산이 좀 쌓이더라도 상권을 분석하고 투자할 상가를 고를 때는 공부를 정말 많이 하고, 신중하리라 마음 먹었다.(아마 모기지 다 갚고 나면 은퇴해서 역모기지로 살아갈테니 고민할 상황은 별로 안생기겠지만 ㅎㅎ)
그리고 한 가지 더, 주변에 제2의 길을 찾는다며 대기업이나 공공기관 직장생활을 그만두고 자영업을 하겠다는 친구는 우선 말리되 마음을 못돌릴 것 같으면 이 책을 읽고 다시 생각해보라고 조언하고, 은퇴를 앞두고 있거나 막 창업한 지인이 있으면 이 책을 선물할테다.
기존의 개인 임대업자는 단지 입지적 우위를 바탕으로 경제적 이익을 누려왔다. 많은 상권의 침체에서 보듯이, 이들으 건물과 상권에 대한 가치평가 능력이 낮고, 입지적 우위만으로 상권이 가진 부가가치를 빨아들여 왔다. 그에 반해 대형 쇼핑몰은 기획가 운영을 바탕으로 제한된 공간 내에서 부가가치를 창출해내는 방식을 선택했다. 이것을 단지 규모가 크다고 규제한다면 이는 부가가치 창출에 대해 규제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이 점에서 복합 쇼핑몰에 대한 규제는 기업 임대업자에 대한 규제이자 개인 임대업자에 대한 보호와 우대라고 볼 수 있다. 이것은 골목 상권과는 무관한 일이다.
상권은 누구의 것인가? 상권은 상가건물로만 이뤄지지 않는다. 건물과 그곳에서 영업하는 가게가 만들어내는 것이다.
그런데 그들이 당연하게 생각하는 정규직의 최대 특혜는 높은 연봉도 안정성도 아닌, 바로 금융 접근성이다.
문제는 사람들이 평균을 물러서서는 안 될 마지노선이자, 누구나 달성할 수 있는 수준으로 인식한다는 점이다. 그래서 '못해도 평균은 가겠지'라고 막연히 생각한다. 그런데 이것은 평균 이하인 50%의 존재를 간과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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