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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시덕] 동아시아, 해양과 대륙이 맞서다(2015)

독서일기/동아시아

by 태즈매니언 2018. 6. 20. 0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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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전에 출판되어 여러 페친들께서 호평하신 책이라 사놓고 1년 만에 봤는데 좀 더 일찍 봤으면 좋았을 것 싶어 아쉽다. 김시덕 교수님께서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방식이 내가 무척 좋아하는 스타일이구나. 곧 출간될 임아재돌님의 책 서술방식이나 주제의식에 대해 내가 예상하고 있었던 것과 유사한 책을 봐서 신기하다.

 

저자는 구석구석의 다양한 지식들을 풀어놓으시지만 단편적인 사실들이 하나씩 던져두는 법이 절대 없다. 서로 어떻게 끈처럼 이어져 있는지를 보여주며, 끈들이 만드는 선과 면을 통해 다양한 플레이어들이 서로 주고받았던 상호작용의 관계망과 빈도를 느끼게 해준다. 일본의 전국시대부터 55년 전후체제의 완성까지 오백년 동안 일본과 중국이라는 큰 거울 외에도 한반도에 조금이라도 영향을 미친 플레이어들이 조선사를 거울의 방에 넣은 것처럼 비춰준다.

 

나처럼 고등학교 국사교과서와 근 20년 전인 1997년에 나온 한영우 교수님의 <다시 찾는 우리 역사>와 같은 주류 한국사학계의 경직된(좁은) 시야를 통해 한국사를 이해했던 생활고에 바쁜 아재들에게 한 권의 한국사 책을 추천한다면 이 책을 권하고 싶다. 영미권 학자들이 쓴 좋은 역사서가 많다지만 대항해시대부터 현대의 초입까지 한국을 중심으로 서술한 책을 써줄리가 없으니.

 

이왕이면 조직에서 의사결정권자로 있는 586세대가 이런 책을 읽으시면 더욱 좋고. 뭐, 20대들은 물론 처음부터 동아시아사(물론 동시대 세계사를 잘 알면 더 좋고) 속에서의 한국사를 공부하고 있겠지.(요즘 중고교 교육과정은 모르지만 부디 그러길 바란다.)

 

이 책을 읽으며 가장 많이 떠올렸던 작품이 애니메이션 <효게모노>였던 터라 김시덕 교수님의 주전공인 문헌학의 위력을 실감했다. 

 

아래에서 인용한 부분들은 저자가 던지는 메시지가 활자를 타고 묵직한 감정까지 던져준다고 느꼈던 각별했던 부분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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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2쪽

 

한반도 역사상 유례없는 정치, 경제, 군사 성장을 이룬 한국의 시민은 누군가가 자신이 걸었던 길을 앞서 걸은 바 있다는 사실을 확인함으로써 고독감을 덜고도 싶어 한다. 메이지 유신 이후의 근대 일본이 그러했듯이, 현대 한국 역시 롤 모델을 필요로 하는 것이다. 적절한 롤 모델이 제시되지 못한 결과 '위대한 한국사'를 주장하는 허구적 민족주의가 시장에서 힘을 얻기도 하지만, 많은 시민은 문순득과 같은 역사상의 실존 인물을 호출해내고 있다.

 

231쪽

 

한반도 주민은 크리스트교라는 신앙체계를 자신들의 맥락에서 소화하여 기존 질서를 부정하고 유토피아를 구현하고자 했다. 그들이 꿈꾼 이상세계에서는 양반과 상놈이 평등하고, 국가나 집안의 일원으로서가 아니라 개개인이 자신의 신념을 자유롭게 따를 수 있었다. 그들이 목숨을 걸고 보여준 것은 봉건제도에 대한 부정이었다. 이런 맥락에서 18~19세기 한반도의 카톨릭 탄압을 '신주 대 십자가'라는 식의 문명 충돌로 단순화할 수는 없다. 이러한 이해는 어떤 부족의 식인 습관이나 여성에 대한 명예살인도 문화 다양성이므로 침해하면 안 된다는 식의 극단적인 문화상대주의일 뿐이다.

 

280쪽

 

이처럼 갑신정변 세력은 통설과 달리 단순히 '친일파'로 치부할 수 없다. (중략) 이 일화에서 두 가지 점을 짚고 넘어가야 한다. 하나는 "갑신정변 세력은 친일파인가"하는 것이고, 또 하나는 "친일파라면 연구할 필요가 없는가" 하는 것이다. 한국 학계가 친일파 문제를 냉철한 학문적 관점에 입각하여 정면에서 다루지 않은 결과, 한쪽에서는 아무에게나 친일파라는 낙인을 찍어대는 이들이, 또 한쪽에서는 "식민지 시기의 조선인들은 살아남기 위해 모두 친일했다"는 주장을 펼치는 이들이 탄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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